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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토스
에즈라 파운드 시집
저자 에즈라 파운드 역자/편자 이일환 역
발행일 2023.02.20
ISBN 9791159057526
쪽수 1324
판형 152*223, 각양장
가격 9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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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엘리엇, 예이츠, 헤밍웨이 등에 영향을 준, 인류문명사를 시적 언어로 표현한 ‘시인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대작 『칸토스』 완역

에즈라 파운드

이전의 시들과는 다른 20세기 시의 시작을 알리는 ‘이미지즘’운동을 창시한 작가.

엘리엇의 『황무지』나 조이스의 『율리시스』 같은, 20세기 소위 ‘모더니즘’문학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가.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지지하며 조국인 미국을 비난하였고, 반유대주의의 기치를 내걸었던 작가.

종전 후 반역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지만 과대망상증 환자로 인정되어 정신병원에 12년간 갇혀 있었던 작가.

미군에 붙잡혀 임시로 만든 철창 같은, 비바람 다 들어오는 감옥에 구금되어 있으면서도 거의 기억에 의지해서만 만들어낸 (파시스트들과 내통할 수 있다는 의혹 아래 그 어떤 책들도 반입이 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보석 같은 『피사 칸토스』를 창작해 낸 작가.

『피사 칸토스』가 볼링엔 상의 첫 수상작이 되자 극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가. 엘리엇, 헤밍웨이 등 많은 유수한 문인들의 끈질긴 석방운동으로 12년 만에 정신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미국을 등지고 제2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날아간 작가. 죽어서도 베네치아 근처 산 미켈레 섬에 묻힌 작가.


현대문학의 주동자이면서도 그 가치가 외면당해 왔던 이 작가의 평생의 대작 『칸토스』가 드디어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게 되다.

시인은 이 시에서 역사와 신화, 음악과 회화, 동양과 서양, 현대와 고전, 자본주의의 폐해와 진보주의의 허구 등 인류와 인간이 쌓아올린 모든 문화적 사회적 유산들을 아우르면서, 현대 문명의 비극을 노래했다.


그는 자신을 보다 나은 세상을 추구해 가는 오디세우스로 보았고, 자신의 그런 여정을 ‘페리플룸’이라 불렀다. 그러면서 그는 동서양의 모든 역사의 흐름들을 훑어가고, 동서양의 모든 현인들의 사고들을 끌어다 자신의 여정에 동참시킨다. 특히 우리 동양인으로서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가 공자의 사상에 유독 천착했다는 것이다. 그가 그런 까닭은 공자의 사상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라는 것이었고, 죽음 이후의 더 나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현세에 두 발을 디딘 채 이 현세의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었다는 데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 칸토스』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을 쓸 정도로 중국의 역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 그가 한자에 매료를 느낀 것은, 그가 『이미지즘』이라는 운동을 창시한 데서 알 수 있듯, 한자가 의미적인 면과 시각적인 면을 절묘하게 배합시켜 놓고 있다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비록 조국인 미국에 등을 돌리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역시 미국의 역사가 그의 『칸토스』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고대 그리스부터 라틴 문학 등 거의 모든 서양의 문화적 전통을 훤히 꿰뚫고 있으면서도 『칸토스』의 두 중심축 중 하나가 중국 역사라고 한다면 서양을 대표해서는 미국 역사가 또 다른 중심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역사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중심이 되었던 좋은 시절과 그렇지 못한 지도자들 때문에 나쁜 세상이 되었던 시절 등을 죽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경제적인 측면이다. 그는 죽음 이후의 세상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이 현세의 세상에서 보다 더 나은 세상을 찾아가는 여정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돈의 역사와 돈의 본질 등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살펴보고 있다. 고리대금업(반유대주의의 배경)과 은행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그 어느 문학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례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그 찬란한 서정적인 순간들이다. 우리나라 시와 서양의 시와의 결정적인 차이점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 시들은 비교적 짧은 서정적인 시들이 다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반면, 서양의 시들은 서사적인 또는 서술적인 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 시의 출발이 『일리어드』나 『오디세이』 같은, 스토리 텔링이 기반이 된 서사적인 글이라는 데 기인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독자들이 『칸토스』 같은 시 작품들을 대하면, 시라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글’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칸토스』를 잘 읽어보시라. 그 안에는 소설과는 다른 리듬이 살아있다. 그리고 때로 떠져 나오는 그 찬란한 서정적인 순간들은 그 어떤 빼어난 서정시들을 능가한다.

역자서문



서른 편의 칸토들 초안 (1930)

열한 편의 새로운 칸토들 XXXI~XLI (1934)

다섯 번째 열 편의 칸토들 XLII~LI (1937)

칸토 LII~LXXI (1940)

칸토 LXXII~LXXIII (1945/1987)

피사 칸토스 LXXIV~LXXXIV (1948)

록 드릴 칸토스 LXXXV~XCV (1955)

스론즈 칸토스 XCVI~CIX (1959)

칸토 CX~CXVII 초고들과 단편들 (1969)

   


주석

에즈라 파운드 약력

추천사

에즈라 파운드는 아시아 시에도 관심이 많았던,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라고 하겠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T.S.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 토머스 제퍼슨, 무솔리니, 공자……. 모더니즘 시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손꼽히는 에즈라 파운드와 함께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황무지」의 완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편집자, 『율리시즈』의 출판을 가능케 한 비평가, 자유민주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한 정치평론가, 반유대주의 깃발을 치켜든 파시스트, 중국의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통해 타락한 서양 문명의 구원을 모색한 사상가였던 에즈라 파운드. 그는 무엇보다 이미지즘과 소용돌이주의를 실천한 예술가로 모더니즘 시학의 돌파구를 마련한 시인이었다.


신화시대와 현대를 가로지르고,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면서 인류문명사를 압축적인 언어로 표현한 『칸토스』는 에즈라 파운드의 시학과 사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930년부터 1969년까지 약 40년에 걸쳐 출판된 117편부록 및 노트 포함의 ‘칸토, 노래 또는 시’로 이루어진 『칸토스』는 시 형식의 실험장이자 종교, 정치, 경제, 예술 등을 아우르고 있는 밀도 높은 인류문명의 축소판이다. 요령을 붙들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고 난해한, 동시에 치명적일 정도로 모험적이고 매력적인 시편들은 사유의 시적 실험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을 펼쳐 보인다.


『칸토스』가 마침내 한 영문학자의 끈질긴 노력과 수고로 우리 앞에 도착했다. 1990년 초역이 간행된 후 30년이 훌쩍 지난 시점,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한국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번역에 들인 물리적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칸토스』와 함께한 심리적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200쪽에 육박하는 5,221개의 각주가 번역 과정의 궤적의 고통을 생생하게 반증한다. 『칸토스』의 완역은 1918년 『태서문예신보』를 통해 본격적으로 출발한 서양문학 번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남을 것임에 틀림없다.

정선태 문학평론가

지은이

에즈라 파운드 Ezra Pound

1885년 아이다호주 헤일리 출생. 

1901년 15세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입학. 중도에 뉴욕에 있는 해밀턴 대학으로 옮겨서 학부 졸업. 다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들어가 1906년 로망스어문학으로 석사 취득하고 계속 박사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그만둠(로페 데 베가로 박사학위를 쓸 예정이었다고 함.).

1908년 미국을 떠나 스페인을 거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도착. 거기서 자비로 그의 첫 시집인 『꺼진 촛불을 들고』(그의 평생의 문학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단테에서 빌려온 표현)를 출판. 

그후 런던으로 거처를 옮겨 예이츠를 비롯한 많은 영국 문인들과 만나고 교류를 시작함. 그리고 그곳에서 소설가 올리비아 셰익스피어의 딸인 도로시 셰익스피어를 만나 1914년 결혼하게 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영국에 점점 싫증과 혐오를 느낀 그는 1921년 파리로 거처를 옮김. 그곳에서도 프랑스 문인들뿐 아니라 조이스, 헤밍웨이 등과 교류를 하며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엘리엇이 보내온 『황무지』 원고를 대폭 수정해 우리가 읽고 있는 지금의 시로 만들었다.

1922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올가 럿지를 만나 서로 평생의 연인으로 지냈다(정부인인 도로시와 오랫동안 소위 ‘삼각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는데, 말년에 도로시가 빠지고 런던으로 돌아갔고, 그후로는 파운드가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올가가 지켰다).

1924년 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그렇지 않아도 그의 정신적 고향이라 할 이탈리아로 갔고, 라팔로에 평생의 거처를 마련하게 된다. 그동안 파운드는 꾸준히 『칸토스』를 쓰고 있었는데, 이 지상에 낙원을 건설하려는 자신의 꿈을 이 시들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신념들을 확고하게 정착시켜 가기 시작했는데,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대한 애호, 은행과 고리대금업에 대한 반감, 반유대주의적 정서 등이 표출되었고, 중국(특히 공자)과 일본의 문화에 대한 애호도 나타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시 조국인 미국과 그 당시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에 대한 비판 방송을 하던 그는 미군에 붙잡혀 피사 감옥에 갇혀 있다가 미국으로 송환되어 반역죄로 재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가 재판을 받기에는 과대망상증적 편집증으로 인해 적합하지 않다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이 받아들여져 사형까지 가능했던 정식 재판을 피하고 대신 정신병원에 감금되게 된다. 그 이후 엘리엇과 헤밍웨이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나서 계속 파운드 석방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했고, 결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인 1958년 그는 석방되게 된다.

1945년 말부터 1958년까지 무려 12년이 넘는 세월을 엘리자베스 정신병원에 있었던 셈이다. 그 사이에도 그는 꾸준히 『칸토스』를 썼었고, 1948년 출판된 『피사 칸토스』는 그해 생긴 볼링엔 문학상의 첫 수상작이 되기도 했다(반유대주의적 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반역죄로 기소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에 대한 논란이 엄청 컸다). 1958년 석방된 그는 바로 미국을 떠나 이탈리아 라팔로로 돌아갔고, 그 이후는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1972년 87세 생일을 막 넘기고 죽었고, 베네치아 근처 산미켈레섬의 묘지에 묻혔다.

그의 『칸토스』는 1917년(또는 1915년)부터 1962년까지의 꾸준한 작업의 결과물로, 현대시의 한 이정표라 아니할 수 없다.


옮긴이

이일환 李一煥, Lee Il-Hwan

서울중·고,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예일대학교 방문교수. 문학박사. 에즈라 파운드 및 미국시 전공. 후즈후 사전 등재. 국민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1982~2020). 현재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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