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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8
저자 황정견 역자/편자 박종훈, 박민정, 이관성
발행일 2024-08-15
ISBN 979-11-5905-922-3 (94820)
쪽수 495
판형 152*223 양장
가격 3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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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후대까지 영향을 미친 황정견의 시론

황정견은 시를 지을 때 시의 표현을 다지고 시법을 엄격히 지켜 한 마디 한 글자도 가벼이 쓰지 않았다. 황정견은 수많은 대가들을 본받으려고 했지만, 그중에서도 두보(杜甫)를 가장 존중했다. 황정견은 두보 시의 예술적인 성취나 사회시(社會詩) 같은 내용 측면에서의 계승보다는, 엄정한 시율과 교묘(巧妙)한 표현 등 시의 형식적 측면을 본받으려 했다. 황정견 시론의 요점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시의 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 환골법(換骨法)과 탈태법(奪胎法)이다. 이에 대해 황정견은 “시의 의미는 무궁한데 사람의 재주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재주로 무궁한 의미를 좇으려고 하니, 비록 도잠과 두보라고 하더라도 공교롭기 어렵다. 원시의 의미를 바꾸지 않고 그 시어를 짓는 것을 환골법이라고 하고, 원시의 의미를 본떠서 형용하는 것을 탈태법이라고 한다[詩意無窮, 而人才有限. 以有限之才, 追無窮之意, 雖淵明少陵, 不得工也. 不易其意而造其語, 謂之換骨法. 規摹其意而形容之, 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 한 바 있다. 이로 보건대, 황정견이 언급한 환골법은 의경을 유사하게 하면서 어휘만 조금 바꾼 것을 일컫고, 탈태법은 의경을 변형하여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진부한 표현이나 속된 말을 배척하고 특이한 말과 기이한 표현을 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술어를 중심으로 평이한 글자를 기이하게 단련(鍛鍊)시켰고 조자(助字)의 사용에 힘을 특히 기울였으며, 매우 궁벽하고 어려운 글자를 사용했고 기이한 풍격을 형성하기 위해 전대(前代) 시에서 잘 쓰지 않던 비속(非俗)한 표현을 시어로 구사하여 참신한 의경을 만들어내곤 했다. 

셋째, 전고(典故)의 정밀한 사용을 추구했다. 이는 황정견 시론의 “한 글자도 유래가 없는 것은 없다[無一字無來處]”와 연관된다. 강서시파는 독서를 중시했는데, 이것은 구법의 차원에서 전대 시의 장점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는 전고의 교묘(巧妙)한 활용이라는 결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인의 전고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에 맞게 변용했다.

이와 같은 황정견의 창작법에 대해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황정견 시의 파급력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황정견을 중심으로 한 강서시파가 당대(當代)는 물론 후대 및 조선의 문인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황정견의 시를 세밀히 소개하다

황정견은 현존하는 가장 공신력 있는 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 따르면 총 1,916수의 시 작품을 남겼다. 북경(北京)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2007년에 출간한 전 5책의 『황정견시집주』에는 총 1,260제(題) 1,916수(首)의 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황정견 작품의 구절 및 시어(詩語) 하나하나가 갖는 전례와 창작배경 그리고 구절의 의미 및 전체적인 의미를 상세하게 주석을 통해 소개해, 황정견 작품의 세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에서는 『황정견시집주』에 소개된 모든 주석을 꼼꼼하게 번역하였으며, 주석의 내용을 시의 자구(字句) 해석에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황정견 시가 워낙 난해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주석이 시 본문과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이러한 경우에도 연결 관계를 최대한 찾아 시 본문 번역에 녹여내고자 노력하였다.

황정견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황정견 시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실상의 일면만을 위주로 하거나 혹은 피상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상세한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황정견시집주』에 대한 완역은, 부족하나마 후학들에게 황정견 시를 이해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외시집주

산곡외집시주권제칠(山谷外集詩注卷第七)

1. 임위지가 붓을 보냈기에 장난삼아 시를 지어 주다(林爲之送筆戲贈)

2. 위지에게 다시 화답하다(再和答爲之)

3. 다시 운자를 써서 위지에게 화답하다(再和答爲之)

4. 조에게 주는 말(贈趙言)

5. 수노객정에 적힌 시에 차운하여 원시 뒤에 쓰다(次韻題粹老客亭詩後)

6. 장중모에게 주다(贈張仲謀)

7. 고양이를 요청하다【산곡이 손수 이 시를 썼는데, 「종수주부걸묘」라고 제목하였다】(乞貓【山谷手書此詩, 題云從隨主簿乞貓】)

8. 주문지가 새끼 고양이를 보낸 것에 사례하다(謝周文之送貓兒)

9. 장태백이 노란 참새 젓갈을 보내준 것에 사례하다(謝張泰伯惠黄雀鮓)

10. 조차응에게 답하여 주다(贈答晁次膺)

11. 양박의 묘(楊朴墓)

12. 공 저작랑의 「조행」에 차운하다(次韻孔著作早行)

13. 공 저작랑의 「북행호타」에 차운하다(次韻孔四著作北行滹沱)

14. 진군의가 「태진외전」을 읽고 쓴 시에 화운하다. 5수(和陳君儀讀太眞外傳. 五首)

15. 조공전을 읽고서【서문을 함께 싣다】(讀曹公傳【并序】)

16. 잡시(雜詩)

17. 위남에서【위남은 단주에 속하니, 북경과 이웃한다】(衛南【衛南屬澶州, 與北京爲鄰】)

18. 술(酒)

19. 유통수가 밭을 구하고 집을 묻는 시에 차운하여 답하다(次韻答柳通叟求田問舍之詩)

20. 부채에 쓰다(書扇)

21. 숙원이 적조방에 와서 치천에게 올린 시에 차운하여 답하다(次韻答叔原會寂照房呈稚川)

22. 왕치천, 안숙원과 적조방에서 함께 식사하다【방(房)자운으로 짓다】(同王稚川晏叔原飯寂照房【得房字】)

23. 적조방에서 만난 숙원이 지은 시에 차운하다【조照자 운으로 짓다】(次韻叔原會寂照房【得照字】)

24. 치천의 운자에 차운하다【‘적(寂)’자 운으로 짓다】(次韻稚川【得寂字】)

25. 서울에서 기쁘게도 여덟 번째 숙부를 뵙고서(都下喜見八叔父八)

26. 숙부 이중이 하군옥이 영릉의 주부로 가는 것을 전송한 시에 차운하다(次韻叔父夷仲送夏君玉赴零陵主簿)

27. 병에서 일어나 치천과 진숙이 수창한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다(病起次韻和稚川進叔倡酬之什)

28. 치천과 저물녘 진숙을 찾아가기로 약속하였는데, 전운에 차운하여 치천에게 주고 아울러 진숙에게 올리다(稚川約晚過進叔次前韻贈稚川并呈進叔)

29. 변경의 강가에 술을 차려놓고 황십칠에게 시를 지어 주다【다음 작품인 「효방변주」와 같은 때에 지은 작품이다. 황의 이름은 기복이다】(汴岸置酒贈黄十七【與後篇曉放汴舟同時作. 黄名幾復】)

 

산곡외집시주권제팔(山谷外集詩注卷第八)

1. 새벽에 변수에 배를 띄우며(曉放汴舟)

2. 우이에 머물며 앞의 운자를 사용하여 짓다(次盱眙同前韻)

3. 장인 손신노가 소주 자사로 있으면서 시를 두야정에 남겼는데, 경신년 10월에 정견은 화답하다(外舅孫莘老守蘇州留詩斗野亭 庚申十月庭堅和)

4. 10월 13일에 백사강구에 배를 정박하고【원주에서 “진주는 당나라 시기 영정현의 백사진이다】(十月十三日泊舟白沙江口【元注云, 眞州, 唐永正縣之白沙鎭也】)

5. 백사강구에서 출발하여 장로에 머무르며(發白沙口次長蘆)

6. 거센 바람에 막혀 장로사에 들어가다【장로사는 진주에 있다】(阻風入長蘆寺【長蘆寺, 屬眞州】)

7. 큰 형님의 「장로사하」에 차운하다(次韻伯氏長蘆寺下)

8. 금릉(金陵)

9. 이단숙과 이별하며 주다(贈别李端叔)

10. 동릉에서 바람에 막혀【동릉현은 또한 예지주에 속한다. 당나라 때는 동관현이었고 오대 때에는 동릉으로 고쳤다】(阻風銅陵【銅陵縣亦隸池州, 唐爲銅官縣, 五代改銅陵】)

11. 물에 막혀서 죽산 아래에 배를 정박하다(阻水泊舟竹山下)

12. 지구에서 비바람에 사흘을 머물다(池口風雨留三日)

13. 귀지(貴池)

14. 대뢰구에서 바람에 막혀【경인년. 살펴보건대 『동안지』에서 “대뢰구는 서주 망강현에 속하니, 현에서 30리 떨어져 있다”라고 했다】(大雷口阻風【庚寅. 按同安志云, 大雷口屬舒州望江縣, 去縣三十里】)

15. 경인, 을미일에도 여전히 대뢰구에 정박하며【『국사』를 살펴보니, 원풍 3년 12월은 기축일이 초하루이다. 경인일은 초이틀이다】(庚寅乙未猶泊大雷口【按國史, 元豊三年十二月己丑朔. 庚寅, 蓋初二日也】)

16. 을미일에 배를 저어서 나오다(乙未移舟出)

17. 병신일에 동류현에 정박하다(丙申泊東流縣)

18. 석우계 옆의 큰 바위 위에 쓰다(書石牛溪旁大石上)

19. 산곡의 큰 바위에 쓰다(題山谷大石)

20. 소자평, 이덕수와 함께 탁수각에 오르다(同蘇子平李德叟登擢秀閣)

21. 영귀천에서(靈龜泉上)

22. 구십사에게 한유의 책을 빌리다. 2수(從丘十四借韓文. 二首)

23. 서주를 떠나 환구로 가는 도중에 지어서 이덕수에게 보내다【『동안지』에서 “환구진은 주에서 80리 떨어져 있다”라고 했다】(發舒州向皖口道中作寄李德叟【同安志云, 皖口鎭去州八】)

24. 정견이 태화 고을의 수령이 되었으며 여섯 번째 외숙이 안절사로 동안에 나가다가 환공의 시내 입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비바람에 머물며 열흘 동안 책상을 마주하고 밤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하여 “누가 알랴! 비바람 치는 밤에, 다시 이렇게 침상에서 마주하며 잘 줄을([誰知風雨夜復此對牀眠])”이란 시를 읊었다. 이별한 뒤에 이 시어가 더욱 생각이 나서 10글자를 배치하여 운자로 삼아 여덟 구의 열 수를 지어 외숙에게 보내다(庭堅得邑太和 六舅按節出同安 邂逅於皖公溪口 風雨阻留 十日對榻夜語 因詠誰知風雨夜復此 對牀眠 别後更覺斯言可念 列置十字 字爲八句 寄呈十首)

25. 마당산 노망정에 쓰다. 4수【원주에서 “팽택의 옛날 치소이다”라고 했다】(題馬當山魯望亭 四首【元注云, 彭澤舊治所】)

26. 대고산에 정박하며 짓다(泊大孤山作)

27. 낙성사에 쓰다. 4수(題落星寺. 四首)

 

산곡외집시주권제구(山谷外集詩注卷第九)

1. 옥경헌(玉京軒)

2. 치정둔전의 유공이 은거하던 집을 지나며(過致政屯田劉公隱廬)

3. 수성관 도사 황지명이 소은헌을 열어주니 태수 서공이 쾌헌이라고 썼다. 정견은 구를 모아 읊었다(夀聖觀道士黄至明開小隱軒 太守徐公爲題曰快軒 庭堅集句詠)

4. 수레를 세우고 사람을 보내 후산의 진덕방 집을 찾아보게 하다(駐輿遣人尋訪後山陳德方家)

5. 이부인이 그린 「언죽」에 쓰다(題李夫人偃竹)

6. 장우직이 개원사에서 벽에 그린 그림을 보고 지은 시에 차운하며, 아울러 이덕소에게 편지 삼아 보내다(次韻章禹直開元寺觀畫壁兼簡李德素)

7. 풍성에서(豊城)

8. 소가협을 올라가다(上蕭家峽)

9. 하씨와 소씨 두 집안(何蕭二族)

10. 위부인의 제단(魏夫人壇)

11. 매복이 은거하던 곳(隱梅福處)

12. 소자운의 집(蕭子雲宅)

13. 진나라를 피한 열 사람(避秦十人)

14. 노란 참새(黄雀)

15. 관사에 도착하니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 깊이 일어. 2수【관사에 도착했다는 것은 태화에 막 도착한 것을 이른다. 이후의 작품은 모두 태화에서 지은 것이다】(到官歸志浩然二絶句【到官盖初至太和也, 此後皆太和所作】)

16. 길주의 승천원 청량헌에 쓰다(題吉州承天院淸涼軒)

17. 양자의 「문견증」에 차운하여 답하다(次韻答楊子聞見贈)

18. 치정 호조청이 장서를 많이 지니고 있음을 듣고서 시를 지어 서목을 빌리다(聞致政胡朝請多藏書以詩借書目)

19. 남안 수령 유조산에게 희롱하여 주다(戲贈南安倅柳朝散)

20. 괴안각에 쓰다【서문을 함께 싣다. 동선은 건주에 속한다. 산곡이 태화에서 남안에 시험을 감독하러 갈 때 건주를 지나면서 지은 작품이다】(題槐安閣【并序. 東禪屬虔州, 山谷自太和考試南安過䖍州】)

21. 여홍범이 「불합속인」으로 청사의 벽에 두 절구를 써 놓으니, 그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다(洪範以不合俗人題廳壁二絶句 次韻和之)

22. 공상을 떠나면서 여홍범에게 부치다(發贛上寄余洪範)

23. 원명의 운자에 차운하여 자유에게 보내다(次元明韻寄子由)

24. 다시 차운하여 자유에게 답하다(再次韻奉答子由)

25. 다시 차운하여 자유에게 보내다(再次韻寄子由)

26. 앞의 시에 차운하여 일곱 번째 형에게 올리다(次韻寄上七兄)

27. 일곱 번째 형의 「산여탕」에 화운하다(和七兄山蕷湯)

28. 원명 형과 지명 아우의 「구일상억」에 같은 운자를 써서 화답하다. 2수(同韻和元明兄知命弟九日相憶. 二首)

29. 대신 짓다(代書)

30. 쌍간사. 2수【절은 태화현의 안에 있다】(雙澗寺. 二首【寺在太和境內】)

31. 잠에서 깨어(睡起)

32. 주원옹이 길주 사법청을 닫고 예부의 시험에 가는 것을 전송하다(奉送周元翁鎻吉州司法㕔赴禮部試)

33. 윤보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飲潤父家)

34. 앞의 시에 차운하여 윤보에게 보내다(次韻寄潤父)

35. 술을 보내며 주법조에게 앞의 운자를 사용하여 지은 시를 주다【길주사법 주원옹이다】(酒與周法曺用前韻【吉州司法周元翁也】)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


역자

박종훈 朴鍾勳, Park Chong-hoon

지곡서당(芝谷書堂)에서 한학(漢學)을 연수했으며,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고전번역전공)에 재직 중이다.

박민정 朴玟貞, Park Min-jung

고려대학교에서 중국고전시 박사학위를, 중국저장대학(浙江大學)에서 대외한어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관성 李灌成, Lee Kwan-sung

곡부서당에서 서암 김희진 선생에게 한문을 배웠다. 현재 퇴계학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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