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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9
저자 황정견 역자/편자 박종훈, 박민정, 이관성
발행일 2024-08-15
ISBN 979-11-5905-923-0 (94820)
쪽수 517
판형 152*223 양장
가격 4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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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후대까지 영향을 미친 황정견의 시론

황정견은 시를 지을 때 시의 표현을 다지고 시법을 엄격히 지켜 한 마디 한 글자도 가벼이 쓰지 않았다. 황정견은 수많은 대가들을 본받으려고 했지만, 그중에서도 두보(杜甫)를 가장 존중했다. 황정견은 두보 시의 예술적인 성취나 사회시(社會詩) 같은 내용 측면에서의 계승보다는, 엄정한 시율과 교묘(巧妙)한 표현 등 시의 형식적 측면을 본받으려 했다. 황정견 시론의 요점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시의 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 환골법(換骨法)과 탈태법(奪胎法)이다. 이에 대해 황정견은 “시의 의미는 무궁한데 사람의 재주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재주로 무궁한 의미를 좇으려고 하니, 비록 도잠과 두보라고 하더라도 공교롭기 어렵다. 원시의 의미를 바꾸지 않고 그 시어를 짓는 것을 환골법이라고 하고, 원시의 의미를 본떠서 형용하는 것을 탈태법이라고 한다[詩意無窮, 而人才有限. 以有限之才, 追無窮之意, 雖淵明少陵, 不得工也. 不易其意而造其語, 謂之換骨法. 規摹其意而形容之, 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 한 바 있다. 이로 보건대, 황정견이 언급한 환골법은 의경을 유사하게 하면서 어휘만 조금 바꾼 것을 일컫고, 탈태법은 의경을 변형하여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진부한 표현이나 속된 말을 배척하고 특이한 말과 기이한 표현을 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술어를 중심으로 평이한 글자를 기이하게 단련(鍛鍊)시켰고 조자(助字)의 사용에 힘을 특히 기울였으며, 매우 궁벽하고 어려운 글자를 사용했고 기이한 풍격을 형성하기 위해 전대(前代) 시에서 잘 쓰지 않던 비속(非俗)한 표현을 시어로 구사하여 참신한 의경을 만들어내곤 했다. 

셋째, 전고(典故)의 정밀한 사용을 추구했다. 이는 황정견 시론의 “한 글자도 유래가 없는 것은 없다[無一字無來處]”와 연관된다. 강서시파는 독서를 중시했는데, 이것은 구법의 차원에서 전대 시의 장점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는 전고의 교묘(巧妙)한 활용이라는 결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인의 전고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에 맞게 변용했다.

이와 같은 황정견의 창작법에 대해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황정견 시의 파급력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황정견을 중심으로 한 강서시파가 당대(當代)는 물론 후대 및 조선의 문인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황정견의 시를 세밀히 소개하다

황정견은 현존하는 가장 공신력 있는 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 따르면 총 1,916수의 시 작품을 남겼다. 북경(北京)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2007년에 출간한 전 5책의 『황정견시집주』에는 총 1,260제(題) 1,916수(首)의 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황정견 작품의 구절 및 시어(詩語) 하나하나가 갖는 전례와 창작배경 그리고 구절의 의미 및 전체적인 의미를 상세하게 주석을 통해 소개해, 황정견 작품의 세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에서는 『황정견시집주』에 소개된 모든 주석을 꼼꼼하게 번역하였으며, 주석의 내용을 시의 자구(字句) 해석에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황정견 시가 워낙 난해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주석이 시 본문과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이러한 경우에도 연결 관계를 최대한 찾아 시 본문 번역에 녹여내고자 노력하였다.

황정견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황정견 시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실상의 일면만을 위주로 하거나 혹은 피상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상세한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황정견시집주』에 대한 완역은, 부족하나마 후학들에게 황정견 시를 이해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외시집주

산곡외집시주권제십(山谷外集詩注卷第十)

1. 나가서 사신을 맞이하였는데, 사신이 새벽에 배를 띄워 떠나자 와요에서 돌아오다(出迎使客質明放船自瓦窑歸)

2. 공의보의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다【의보는 일찍이 길주의 수령을 지냈다】(次韻和答孔毅甫【毅甫嘗爲吉倅】)

3. 다시 이전 운자를 사용하여 공의보에게 보내다(再用舊韻寄孔毅甫)

4. 2월 2일 새벽에 여릉의 서제에서 만나는 꿈을 꾸고서 진적용에게 기별을 보내다【진적용의 이름은 여기로, 당시 여릉현령으로 있었다】(二月二日曉夢會於廬陵西齋作寄陳適用【適用名汝器, 時知廬】)

5. 진적용이 오남웅이 준 종이를 보내준 것에 대해 장구를 지어 사례하다(長句謝陳適用惠送吳南雄所贈紙)

6. 진적용에게 부치다(寄陳適用)

7. 회원옹에게 보내다(寄懐元翁)

8. 술을 마주하고 앞의 시 운자에 차운하여 회원옹에게 보내다(對酒次前韻寄懐元翁)

9. 후위가 길수에 갔는데 3일 내린 진흙탕 비에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고서 장난삼아 지어서 보내다(侯尉之吉水覆按未歸三日泥雨戲成寄之)

10. 후위의 집에서 비파 연주를 듣다(侯尉家聽琵琶)

11. 원주 수령 료헌경에게 보내다(寄袁守廖獻卿)

12. 원주 자사 요헌경이 차운하여 답하면서 아울러 황정국의 『재생전』을 보내왔는데, 그 시에 차운하여 보내다(廖袁州次韻見答并寄黄靖國再生傳次韻寄之)

13. 원주 유 사법도 또한 나의 ‘마(摩)’자 운의 시에 화답하니, 인하여 다시 차운하여 보내다(袁州劉司法亦和予摩字詩因次韻寄之)

14. 앞 시에 차운하여 길노에게 답하고 아울러 하군용에게 보내다(次韻奉答吉老并寄何君庸)

15. 원주 자사 요헌경의 「회구은」의 시에 차운하다(次韻奉答廖袁州懐舊隱之詩)

16. 군수 손승의에게 올리다(上權郡孫承議)

17. 손봉의의 시에 화운하여 채소를 보낸 것에 사례하다(奉和孫奉議謝送菜)

18. 손공선과 이중동이 금빛 앵이를 읊은 것에 화운하다. 2수 (和孫公善李仲同金櫻餌唱酬. 二首)

19. 여홍범에게 답하다. 2수(答余洪範. 二首)

20. 삼월 을사일에 만세향에 와서 소금세를 징수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은 집을 징수하는데, 그 집에서 늦게 밥을 먹다가 마침내 유숙하였다. 이날 바람에 세게 불어 버들(국화) 싹을 따서 국수에 넣어 먹었다. 2수(三月乙巳來賦鹽萬歲鄕 且蒐獮匿賦之家 晏飯此舍遂留宿 是日大自采菊苖薦湯餅. 二首)

21. 고군의 정적헌에 쓰다(題高君正適軒)

22. 이차옹에게 보내다(寄李次翁)

23. 4월 무신에 만세산에서 소금세를 부과하다가 우러러 외숙 사사후를 그리워하다(四月戊申賦鹽萬歲山中 仰懷外舅謝師厚)

24. 계축일에 조화도의 절간에서 유숙하다【임술년 4월 계축일부터 신유일까지 만세산과 금도갱에서 소금세를 거두면서 모두 열 편을 지었다】(癸丑宿早禾渡僧舍【壬戌四月癸丑至辛酉, 賦鹽萬嵗山及金刀坑凡十篇】)

25. 관산에서 유숙하다(宿觀山)

26. 대몽롱에 오르다【을묘년 새벽에 일어나다】(上大蒙籠【乙卯晨起】)

27. 노강에서 앞성으로 들어가다【을묘 식사 후에】(勞坑入前城【乙卯飯後】)

28. 을묘일에 청천사에서 묵다(乙卯宿淸泉寺)

29. 병진일에도 계속 청천사에 머물다(丙辰仍宿清泉寺)

30. 정사일에 보석사에서 묵다(丁巳宿寳石寺)

 

산곡외집시주권제십일(山谷外集詩注卷第十一)

1. 기미일에 태호의 사원을 지나다가 종여위의 편지와 산마로 만든 백주를 받고서 장편시를 읊어 화답시를 보내다(己未過太湖僧寺得宗汝爲書寄山蕷白酒長韻詩寄答)

2. 경신일에 관음원에서 묵다(庚申宿觀音院)

3. 신유일에 도갱구에서 쉬다(辛酉憇刀坑口)

4. 금도갱의 객관에서 추장갱의 10여 가구 산농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자, 인하여 그 벽에 쓰다(金刀坑迎將家待追漿坑十餘戶山農不至因題其壁)

5. 한공의 「초칠형」에 차운하다(次韻漢公招七兄)

6. 안복 이 수령의 적헌을 읊어 보내다【안복현은 길주에 속한다】(寄題安福李令適軒【安福縣隸吉州】)

7. 안복 이령의 선춘각을 읊어 보내다(寄題安福李令先春閣)

8. 안복 이령의 애죽당을 읊어 보내다(寄題安福李令愛竹堂)

9. 안복 이령의 조화정을 읊다(題安福李令朝華亭)

10. 쾌각에 오르다(登快閣)

11. 이재보 선배의 「쾌각」에 화답하다. 5수(和李才甫先軰快閣. 五首)

12. 8월 14일 밤에 도갱구에서 달을 마주하고 왕자난과 왕자문, 그리고 진적용(陳適用)에게 보내다(八月十四日夜刀坑口對月奉寄王子難子聞適用)

13. 조피에서(彫陂)

14. 기복이 빈랑을 부치고 또한 답시를 보내와 나에게 같은 종류의 빈랑을 권하니 그 시에 차운하여 보내다(幾復寄檳榔且答詩勸予同種次韻寄之)

15. 황기복이 바닷길로 고맙게도 금물 30냥을 보내주면서 “이것은 덕이 있는 선비가 마땅히 복용하여 장차 음사를 물리치고 진화를 지켜야 하니 바라건대 평범한 약물로 건강을 기르지 말라”라고 하니, 장난스럽게 답하였다(黄幾復自海上寄惠金液三十兩 且曰此有德之士宜享 將以排蕩陰邪守衛眞火幸不以凡物畜之戲 答)

16. 기복에게 말하여 빈량을 요구하다(道復覓㯽榔)

17. 기복이 내가 준 세 물건에 대해 답한 시에 차운하다. 3수(韻幾復答予所贈三物. 三首)

18. 술을 보내 필 대부에게 주다(酒與畢大夫)

19. 태수 필이 조산대부로 벼슬에서 물러난 것을 기뻐하다(太守畢朝散致政)

20. 위도보(魏道輔)가 쌍령에서 보낸 삼첩시에 차운하다(次韻道輔雙嶺見寄三疊)

21. 장우직과 위도보의 증답시에 차운하다(次韻章禹直魏道輔贈答之詩)

22. 도보가 나그네 회포를 읊어 보낸 시에 차운하다(次韻道輔旅懷見寄)

23. 위도보의 「기회」에 화답하다. 10수(和答魏道輔寄懷. 十首)

24. 창고 뒤 주정청은 옛날 임부가 폄적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11월 기묘일에 내가 가을 세금을 바치러 왔는데, 담장 너머 부용꽃이 만발하였다(倉後酒正㕔 昔日林夫謫官所作 十一月己卯 余納秋租隔牆芙蓉盛開)

25. 길노가 가을 세금을 걷기에 곧바로 장구를 짓다(吉老受秋租輙成長句)

26. 길노의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다(次韻和吉老)

27. 길노 자범을 초대하여 매화를 보다(招吉老子範觀梅花)

28. 자범이 순제향포를 맞이하여 군도를 쫓아내니 도둑이 거의 사라졌다. 이에 장구를 지어 여행의 노고를 위로하였다(範徼廵諸鄕捕 逐羣盗幾盡 輙作長句 勞苦行李)

29. 서은보가 여간의 수령으로 가는 것을 전송하다(送徐隱父宰餘干)

 

산곡외집시주권제십이(山谷外集詩注卷第十二)

1. 군용이 자운사에 우거하면서 소혜전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자 읊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君庸寓慈雲寺待韶惠錢不至)

2. 차운하여 도존 주부에게 받들어 답하다(次韻奉答存道主簿)

3. 시중에게 포단을 달라고 하다(從時中乞蒲團)

4. 동조옥연을 맡게 된 시중을 전송하다(奉送時中攝東曹獄掾)

5. 무형이 종이를 보내주면서 지은 장구에 받들어 화답하다(奉答茂衡惠紙長句)

6. 잡다한 말을 읊어 나무형에게 주다(雜言贈羅茂衡)

7. 조원충에게 보내다. 10수(寄晁元忠. 十首)

8. 조원충의 「서귀」에 차운하다. 10수(次韻晁元忠西歸. 十首)

9. 죽순을 먹다(食筍十韻)

10. 소손과 갈민수 두 학자가 나의 「식순시」에 화답하니, 그 시에 차운하여 답하다(蕭巽葛敏修二學子和予食筍詩次韻答之)

11. 호조청이 화운시를 보내오자 다시 그 시에 차운하다(胡朝請見和復次韻)

12. 입춘(立春)

13. 호조의 서신지에게 보내다(寄舒申之户曹)

14. 두중관의 시에 차운하다(次韻杜仲觀二絶)

15. 다시 두중관의 시에 차운하다(再次韻杜仲觀二絶)

16. 사일에 군용 주부에게 받들어 보내다(社日奉寄君庸主簿)

17. 왕주부의 집에서 도미화를 보다(觀王主簿家酴醿)

18. 도미화(酴醿)

19. 공사가 왕기옥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지은 장운에 내가 화답하여 보내었는데, 그 시를 보고 원옹이 좌중에서 다시 차운하였다. 인하여 내가 다시 그 시에 차운하면서 원옹을 이끌어 함께 지어서 분성으로 보내다(元翁坐中見次元寄到和孔四飲王䕫玉家長韻因次韻率元翁同作寄湓城)

20. 공사의 운에 다시 차운하여 화원옹 형제에게 보내고 아울러 의보에게 안부 삼아 묻다(再次孔四韻寄懷元翁兄弟幷致問毅甫)

21. 원옹이 왕기옥에게서 책을 빌리면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元翁從王䕫玉借書)

22. 원옹을 본받아 「여아포구시」를 짓다(學元翁作女兒浦口詩)

23. 지난해 원옹이 거듭 쌍간사에 가서 내 형제가 지은 시편을 보고 지은 시에 화답하였는데, 수록하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다가 병중에 기억하고 이 시를 짓다(去歲和元翁重到雙澗寺觀余兄弟題詩之篇總忘收錄病中記憶成此詩)

24. 주법조가 청원사에서 노닌 시에 차운하다(次韻周法曹遊靑原寺)

25. 증도조의 「희우」에 차운하다(次韻曾都曹喜雨)

26. 증처선의 위청에 장난스레 제하다. 2수(戲題曾處善尉廳 二首)

27. 상고의 이회도 공에게 부치다【상고는 균주에 속한다】(寄上高李令懷道【上高, 隸筠州】)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


역자

박종훈 朴鍾勳, Park Chong-hoon

지곡서당(芝谷書堂)에서 한학(漢學)을 연수했으며,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고전번역전공)에 재직 중이다.

박민정 朴玟貞, Park Min-jung

고려대학교에서 중국고전시 박사학위를, 중국저장대학(浙江大學)에서 대외한어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관성 李灌成, Lee Kwan-sung

곡부서당에서 서암 김희진 선생에게 한문을 배웠다. 현재 퇴계학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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