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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11
저자 황정견 역자/편자 박종훈, 박민정, 이관성
발행일 2024-08-15
ISBN 979-11-5905-925-4 (94820)
쪽수 438
판형 152*223 양장
가격 3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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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후대까지 영향을 미친 황정견의 시론

황정견은 시를 지을 때 시의 표현을 다지고 시법을 엄격히 지켜 한 마디 한 글자도 가벼이 쓰지 않았다. 황정견은 수많은 대가들을 본받으려고 했지만, 그중에서도 두보(杜甫)를 가장 존중했다. 황정견은 두보 시의 예술적인 성취나 사회시(社會詩) 같은 내용 측면에서의 계승보다는, 엄정한 시율과 교묘(巧妙)한 표현 등 시의 형식적 측면을 본받으려 했다. 황정견 시론의 요점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시의 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 환골법(換骨法)과 탈태법(奪胎法)이다. 이에 대해 황정견은 “시의 의미는 무궁한데 사람의 재주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재주로 무궁한 의미를 좇으려고 하니, 비록 도잠과 두보라고 하더라도 공교롭기 어렵다. 원시의 의미를 바꾸지 않고 그 시어를 짓는 것을 환골법이라고 하고, 원시의 의미를 본떠서 형용하는 것을 탈태법이라고 한다[詩意無窮, 而人才有限. 以有限之才, 追無窮之意, 雖淵明少陵, 不得工也. 不易其意而造其語, 謂之換骨法. 規摹其意而形容之, 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 한 바 있다. 이로 보건대, 황정견이 언급한 환골법은 의경을 유사하게 하면서 어휘만 조금 바꾼 것을 일컫고, 탈태법은 의경을 변형하여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진부한 표현이나 속된 말을 배척하고 특이한 말과 기이한 표현을 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술어를 중심으로 평이한 글자를 기이하게 단련(鍛鍊)시켰고 조자(助字)의 사용에 힘을 특히 기울였으며, 매우 궁벽하고 어려운 글자를 사용했고 기이한 풍격을 형성하기 위해 전대(前代) 시에서 잘 쓰지 않던 비속(非俗)한 표현을 시어로 구사하여 참신한 의경을 만들어내곤 했다. 

셋째, 전고(典故)의 정밀한 사용을 추구했다. 이는 황정견 시론의 “한 글자도 유래가 없는 것은 없다[無一字無來處]”와 연관된다. 강서시파는 독서를 중시했는데, 이것은 구법의 차원에서 전대 시의 장점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는 전고의 교묘(巧妙)한 활용이라는 결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인의 전고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에 맞게 변용했다.

이와 같은 황정견의 창작법에 대해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황정견 시의 파급력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황정견을 중심으로 한 강서시파가 당대(當代)는 물론 후대 및 조선의 문인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황정견의 시를 세밀히 소개하다

황정견은 현존하는 가장 공신력 있는 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 따르면 총 1,916수의 시 작품을 남겼다. 북경(北京)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2007년에 출간한 전 5책의 『황정견시집주』에는 총 1,260제(題) 1,916수(首)의 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황정견 작품의 구절 및 시어(詩語) 하나하나가 갖는 전례와 창작배경 그리고 구절의 의미 및 전체적인 의미를 상세하게 주석을 통해 소개해, 황정견 작품의 세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에서는 『황정견시집주』에 소개된 모든 주석을 꼼꼼하게 번역하였으며, 주석의 내용을 시의 자구(字句) 해석에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황정견 시가 워낙 난해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주석이 시 본문과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이러한 경우에도 연결 관계를 최대한 찾아 시 본문 번역에 녹여내고자 노력하였다.

황정견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황정견 시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실상의 일면만을 위주로 하거나 혹은 피상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상세한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황정견시집주』에 대한 완역은, 부족하나마 후학들에게 황정견 시를 이해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외시집주

산곡외집시주권제십오(山谷外集詩注卷第十五)

1. 유곤중 군을 삼가 전송하며(奉送劉君昆仲)

2. 신노가 보내온 작품에 화답하여 답하다(和答莘老見贈)

3. 노공이 은혜롭게 간아를 공택에게 보내주었기에, 옛 작품의 운자에 차운하다(以潞公所惠揀芽送公擇次舊韻)

4. 이부 소상서와 우선 호시랑이 모두 보잘것없는 내 작품에 화운하기에, 차운하여 감사의 말을 전한다(吏部蘇尙書右選胡侍郎皆和鄙句, 次韻道謝)

5. 삼가 공택과 함께 간아를 읊는 노래를 짓다(奉同公擇作揀芽詠)

6. 올해 관차는 매우 오묘하여 맛을 표현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장난삼아 두 편의 작품을 지었는데, 앞 작품의 운자를 이용했다(今歲官茶極妙而難爲賞音者, 戲作兩詩, 用前韻)

7. 공택이 앞 작품의 운자를 사용해 작품을 지었기에, 웃으며 쌍정을 희롱하다(公擇用前韻, 嘲戲雙井)

8. 거듭 장난삼아 쌍정의 조롱을 해명하는 시를 짓다(又戲爲雙井解嘲)

9. 삼가 육구상서와 함께 차를 가는 맷돌과 차 끓이는 것을 읊조리다. 3수(奉同六舅尙書, 詠茶碾煎烹. 三首)

10. 이공택과 더불어 길을 가다가 두 길손이 베옷을 입고 마주앉아 바둑 두고 있는 것을 보고 그로 인해 칠언절구 한 수를 짓다(與李公擇, 道中見兩客布衣班荆而坐對戲奕秋, 因作一絶)

11. 육구가 시를 보내와 동서를 구하기에 장구를 써서 구씨에게 보내다. 옛 것을 배운 이후에 다시 선열을 맛보았기에【『유마경』에서 “비록 음식을 먹지만 선열로써 그 맛을 삼는다”라고 했다】 작품의 끝에서 이를 언급한 것이다(六舅以詩來, 覓銅犀, 用長句持送舅氏. 學古之餘, 復味禪悅,【維摩經曰, 雖復飲食, 而以禪悅爲味】故篇末及之)

12. 삼가 공택 구씨가 여도인에게 벼루를 보내주며 쓴 장편의 작품에 화운하다(奉和公擇舅氏送呂道人硏長韻)

13. 거듭 공택 구씨의 「잡언」이라는 작품에 화운하다(再和公擇舅氏雜言)

14. 차운하여 사왕에게 답하다(次韻答王四)

15. 구몽이 승제함을 얻었기에 장난삼아 답하다(戲答仇夢得承制)

16. 구몽이 승제함을 얻었기에 장난삼아 답하다. 2수(戲答仇夢得承制. 二首)

17. 임부인의 「오도」라는 작품에 화답하다(和任夫人悟道)

18. 저물녘 장씨의 정원에 도착하여 벽 사이에 적힌 옛 시에 화창하다(暮到張氏園, 和壁間舊題)

19. 사람 좇아 꽃을 구하다(從人求花)

20. 진사도에게 주다(贈陳師道)

21. 육십오 번째 동생인 분이 남쪽으로 돌아가기에 전송하다 (送六十五弟賁南歸)

22. 오도사에게 주다(贈吳道士)

23. 사공정과 함께 책을 가지고 욕실원에 갔는데, 문사가 밥을 차려 주기에 이 시를 짓다(同謝公定擕書浴室院, 汶師置飯作此)

24. 은혜롭게 차를 보내온 것에 사례하다(謝人惠茶)

25. 무종 봉의가 지은 좋은 시 중에 「영냉정수야거」라는 작품이 있다. 정견은 정수와 18년이나 벗으로 지냈기에, 차운하여 보낸다【정수에게는 아름다운 시녀가 있었는데, 이른 아침에 달아나 버렸다. 그 뒤에 산초나무로 울타리는 만들었는데, 대단히 엄밀했다】(懋宗奉議有佳句詠冷庭叟野居, 庭堅於庭叟有十八年之舊, 故次韻贈之【庭叟有佳侍兒, 因早朝而逸去, 乃挿椒藩甚嚴密】)

26. 고의로 팔음가를 지어 정언능에게 주다(古意贈鄭彦能八音歌)

27. 자첨이 적인이 받친 설림석병에 시를 쓰고 나에게 함께 쓰자고 요청했다(子瞻題狄引進雪林石屛, 要同作)

28. 장재옹이 진첨으로 가기에 전송하다(送張材翁赴秦簽)

29. 『양관도』에 쓰다. 2수(題陽關圖. 二首)

30. 『귀거래도』에 쓰다. 2수(題歸去來圖. 二首)

31. 거위와 기러기의 그림에 쓰다()

32. 노학만리심이라는 구절에 쓰다【두보의 「견흥」에서 “용은 한겨울에 칩거하며 누워 있고, 늙은 학은 만 리 날아갈 마음일세”라고 했다】(題老鶴萬里心【老杜遣興云, 蟄龍三冬臥, 老鶴萬里心】)

33. 위언의 말 그림에 쓰다(題韋偃馬)

34. 시승 왕도제가 허도녕의 산수 그림을 보고 쓴 작품에 답하다(答王道濟寺丞觀許道寜山水圖)

 

산곡외집시주권제십육(山谷外集詩注卷第十六)

1. 유경문에게 화답하다(和劉景文)

2. 유경문이 단차를 보내왔기에 삼가 사례하다(奉謝劉景文送團茶)

3. 경문이 은혜롭게 호연이 만든 정규먹을 보내왔기에 사례하다(謝景文惠浩然所作廷珪墨)

4. 경문 어른과 함께 연당을 읊조리다(同景文丈詠蓮塘)

5. 유도순을 전송하다(送劉道純)

6. 설도락이 운향에 벼슬살이하러 가기에 전송하다(送薛樂道知鄖鄕)

7. 주낙중에게 부치다(寄朱樂仲)

8. 사부 진원여에게 보내다(贈陳元輿祠部)

9. 소나무 아래에 있는 도연명(松下淵明)

10. 두보의 완화계도에 쓰다(老杜浣花谿圖引)

11. 장난삼아 집안 동생의 「선장탐춘」이라는 작품에 화답하다. 2수(戲和舍弟船場探春. 二首)

12. 집안 동생이 우씨의 정원에 쓴 작품에 차운하다. 2수(次韻舍弟題牛氏園. 二首)

13. 갑자기 눈이 날리자 왕립지에게 보내어 매화에 대해 묻다 (急雪寄王立之問梅花)

14. 또 왕립지에게 부치다(又寄王立之)

15. 왕립지가 짧은 시와 더불어 한 떨기 목단을 보내왔기에 장난삼아 답하다. 2수(王立之以小詩送竝蒂牡丹戲答. 二首)

16. 왕도위에게 천엽매를 구하였는데 이미 다 떨어졌다고 한다. 이에 장난삼아 지어 젓대 부를 시아를 놀린다(從王都尉覓千葉梅, 云已落盡. 戲作嘲吹笛侍兒)

17. 이사웅 자비가 홀로 서원에서 노닐면서 목단을 꺾었는데 아우 자기를 그리워한 작품에 차운하다. 2수(次韻李士雄子飛, 獨遊西園, 折牡丹, 憶弟子奇. 二首)

18. 조자방의 잡언에 화답하다(和曹子方雜言)

19. 조자방이 은혜롭게 두 물건을 보내주었기에 사례하다. 2수 (謝曹子方惠二物. 二首)

20. 고사돈이 성도의 검할로 부임하기에 전송하다. 2수【『동파집』 가운데도 또한 이 작품이 있는데, 원우 3년이 지은 것이다】(送高士敦赴成都鈐轄. 二首【東坡集中亦有此詩, 乃元祐三年也】)

21. 자첨이 목보를 전송하며 지은 작품에 차운하다. 2절(次韻子瞻送穆父. 二絶)

22. 내한 자첨이 외숙 공택 승승의 산방에 쓴 작품에 화답하다(和子瞻內翰題公擇舅中丞山房)

23. 자첨이 쓴 시작품 뒤에 쓰다(題子瞻書詩後)

24. 고술에게 장난삼아 지어주다. 육언(戲贈高述. 六言)

25. 방어사 대년이 그린 노안도에 장난삼아 쓰다(戲題大年防禦蘆鴈)

26. 이 씨의 정원에서 더위를 피하다. 2수(避暑李氏園. 二首)

27. 같은 해에 과거급제한 호언명이 경사에 나그네로 있다가 이자비에게 세 편의 작품을 보냈는데, 첫 번째 작품에서는 그 곤궁함을 말했고 두 번째 작품에서는 돌아감을 권면해고 세 번째 작품에서는 나 또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을 한 작품에 차운한다. 호언명과 이자비는 서로 생질의 관계였기에 빈랑이라는 구절이 있게 된 것이다(次韻胡彦明同年, 羇旅京師, 寄李子飛三章, 一章道其困窮, 二章勸之歸, 三章言我亦欲 歸耳. 胡李相甥也, 故有檳榔之句)

28. 호언명과 길을 가다 융사의 죽헌에서 술을 마시다(與胡彦明處道, 飲融師竹軒)

29. 선성의 붓을 보내왔기에 사례하다(謝送宣城筆)

30. 왕언조의 할아버지인 황주지주 왕우칭이 쓴 초서를 왕언조가 보내왔기에 그 뒤에 쓰다【왕언조의 할아버지인 왕우칭(王禹偁)은 자가 원지(元之)로 함평(咸平) 연간에 서액(西掖)으로 있다가 황주지주(黃州知州)로 폄직되었다】(王彦祖惠其祖黃州制草, 書其後【其祖禹偁, 字元之, 咸平中, 自西掖謫知黃州】)

31. 서경도가 무녕위로 기에 전송하다(送徐景道尉武寜)

32. 두보처럼 관청에서 읊조리다. 2수(杜似吟院. 二首)

33. 추워진 뒤에야 송백을 안다【이 작품은 진사체進士體를 본받아, 원우 연간에 쓴 것이다. 두 수의 작품이 있는데 한 편은 『전집』에 보인다】(歲寒知松柏【此詩效進士體, 元祐間作. 有兩篇, 其一見前集】)

34. 진사체를 흉내내어 성도의 석경을 살피다(效進士作觀成都石經)

35. 조자방이 복건로전운판관으로 가기에 전송하고 더불어 운판사 장중모에게 편지 삼아 보내다(送曹子方福建路運判, 兼簡運使張仲謀)

 

산곡외집시주권제십칠(山谷外集詩注卷第十七)

1. 조자방의 집안 봉아에게 장난삼아 주다(戲贈曹子方家鳯兒)

2. 자첨이 『황정경』 끝에 써서 건도사에게 준 작품에 차운하다(次韻子瞻書黃庭經尾付蹇道士)

3. 하 씨의 열정에서 잣나무를 노래하다(何氏悅亭詠柏)

4. 소장이 기러기와 닭 울음소리를 듣고 지은 작품에 차운하여 답하다. 2수(次韻答少章聞雁聽雞. 二首)

5. 백부 조선은 노년을 즐기며 배우기를 좋아했다. 거처하던 자양계의 뒤편 작은 마안산에 방은재를 지어놓고 멀리서 시구를 보내왔는데, 그 의도는 내가 화답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다행히 사우들과 함께 시를 지어 급히 올렸다(伯父祖善耆老好學, 於所居紫陽溪後小馬鞍山爲放隱齋, 遠寄詩句, 意欲庭堅和之. 幸師友同賦, 率爾上呈)

6. 이십팔의 지상헌에 쓰다(題李十八知常軒)

7. 차운하여 길린 기의에게 삼가 답하다(次韻奉答吉鄰機宜)

8. 유 씨가 소장하고 있는 전자건의 「감응관음」 그림에 쓰다. 2수(題劉氏所藏展子虔感應觀音. 二首)

9. 이호주에 대한 만사. 2수(李濠州挽詞. 二首)

10. 제형 충옥에게 부치다(寄忠玉提刑)

11. 원일이란 작품에 차운하다(次韻元日)

12. 대운창의 달관대에 쓰다. 2수(題大雲倉逹觀臺. 二首)

13. 조검남을 전송하며 곧바로 읊조리다(送曹黔南口號)

14. 십사제가 홍주로 돌아가기에 ‘막여형제’로 각각 운자를 삼아 네 편을 지어 가는 길에 준다(十四弟歸洪州, 賦莫如兄弟四章, 贈行)

15. 호비장을 주면서 이임도를 전송하다. 2수(以虎臂杖送李任道. 二首)

16. 왕거사가 소장하고 있는 왕우가 그린 복사꽃과 살구꽃 그림에 쓰다. 2수(題王居士所藏王友畫桃杏花. 二首)

17. 연건계의 첫 번째 지역에서 봉의 서천은을 초청하여 더불어 건제체를 흉내내어 짓다(碾建溪第一, 奉邀徐天隱奉議, 幷效建除體)

18. 거듭 지어 서천은에게 답하다(再作答徐天隱)

19. 거듭 서천은에게 주다(重贈徐天隱)

20. 열 개의 부채를 주면서 서천은을 전송하다(以十扇送徐天隱)

21. 장난하며 전자평에게 올리다. 육언(戲呈田子平. 六言)

22. 형주에서 본대로 읊조리다. 약명시. 8수(荊州卽事. 藥名詩. 八首)

23. 태평주에서 짓다. 2수(太平州作. 二首)

24. 창 상좌가 성도로 돌아가기에 전송하다(送昌上座歸成都)

25. 장사에서 헤어지다(長沙留別)

26. 화광 노인에게 주다(贈花光老)

27. 화광노인이 증공권을 위해 그려준 수변매의 그림에 쓰다 (題花光老爲曾公卷作水邊梅)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


역자

박종훈 朴鍾勳, Park Chong-hoon

지곡서당(芝谷書堂)에서 한학(漢學)을 연수했으며,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고전번역전공)에 재직 중이다.

박민정 朴玟貞, Park Min-jung

고려대학교에서 중국고전시 박사학위를, 중국저장대학(浙江大學)에서 대외한어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관성 李灌成, Lee Kwan-sung

곡부서당에서 서암 김희진 선생에게 한문을 배웠다. 현재 퇴계학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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