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개벽사 | 역자/편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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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5.11.10 | ||
ISBN | 9791159050152 | ||
쪽수 | 권1 664쪽 / 권2 538쪽 / 권3 456쪽 / 권4 530쪽 | ||
판형 | 신국판 양장 | ||
가격 | 400,000원 |
1976년 간행된 영인본 이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던 34개호 중 미공개본 28개호가 기존 영인본과 차별화된 사진판급 영인본으로 출간
잡지 『어린이』는 1923년 3월 20일 자로 개벽사에서 창간호가 나온 이래 1935년 3월 제122호까지 발행되었다. 일제강점기 개벽사에서 나온 9종의 잡지 중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많은 호수가 발행된 잡지였다. 그런데 1976년에 간행된 『어린이』 영인본에는 122개호 중에 88개호만이 수록되어서 지금까지 이를 제외한 34개호는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2015년, 소명출판에서 미공개 상태였던 34개호 중 28개호를 새로 발견하여 영인하게 되었다.
창간호부터 제122호까지 발행되는 동안 『어린이』의 판형은 ‘4․6배판(188x257mm) → 4․6판(127x188mm) → 국판(148x210)’으로 바뀌었다. 창간호부터 제3호까지 4․6배판 12면으로 편집․발행되었고, 제4호부터 제7호까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아 형태를 직접 확인할 수 없다. 제8호(1923.9)부터는 4․6판 책자 형식으로 간행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영인된 『미공개 『어린이』』에 포함된 제92호(1932.1)부터 체재를 국판으로 개정하여 발행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동문학의 보급 및 아동보호운동의 선구자인 소파 방정환을 중심으로 편집․발행된 잡지
『어린이』의 편집 겸 발행인은 당시 천도교청년회의 주요 임원 중 한사람이었던 ‘김옥빈’을 시작으로 방정환, 이정호 등이 그 역할을 맡았다. 특히 『어린이』 창간호부터 편집을 책임졌던 방정환은 1925년 8월호(제31호)부터 직접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아 명실상부한 『어린이』의 편집 책임자가 되었고, 『어린이』는 방정환의 사상과 경영에 따라 운영되었다. 방정환의 사망 이후에는 『어린이』 창간 당시부터 방정환을 도와 제반 업무를 처리하였던 이정호가 편집을 책임졌다.
『어린이』는 동요․동화․동극 등의 구분을 확실히 하여 장르의식을 확립하는 한편, 최초로 창작 동요․동화를 게재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아동문학의 본격적인 출발선을 그었다.
또한, 마해송․정인섭(鄭寅燮)․한정동(韓晶東)․윤석중․이원수․박목월(朴木月)․이구조(李龜祚) 등 우수한 아동문학가를 배출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영인본 『미공개 『어린이』』는 그동안 전체적인 실상을 명확하게 알 수 없었던 1931년 이후에 간행된 『어린이』의 내용과 편집 방향 등을 전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자료들이다. 새로 발견된 『어린이』가 영인되는 것을 기회로 일제강점기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간행된 제반 잡지들에 대한 연구와 소년․어린이운동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권1 664쪽
제3권 제1호 1925.1
제5권 제5호 1927.6
제9권 제1호 1931.1
제9권 제3호 1931.3
제9권 제4호 1931.5
제9권 제6호 1931.7
제9권 제9호 1931.10
제9권 제10호 1931.11
권2 538쪽
제10권 제1호 1932.1
제10권 제2호 1932.2
제10권 제3호 1932.3
제10권 제4호 1932.4
제10권 제10호 1932.10
제10권 제11호 1932.11
제10권 제12호 1932.12
권3 456쪽
제11권 제3호 1933.3
제11권 제6호 1933.6
제11권 제7호 1933.7
제11권 제8호 1933.8
제11권 제9호 1933.9
제11권 제10호 1933.10
권4 530쪽
제11권 제11호 1933.11
제11권 제12호 1933.12
제12권 제3호 1934.3
제12권 제4호 1934.4
제12권 제5호 1934.5
제12권 제6호 1934.6
제13권 제1호 19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