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예진 | 역자/편자 | |
|---|---|---|---|
| 발행일 | 2026-02-25 | ||
| ISBN | 979-11-7549-046-8 (93650) | ||
| 쪽수 | 472 | ||
| 판형 | 152*223 무선 | ||
| 가격 | 35,000원 | ||
이도영, 한국 근대미술의 창
2009년 한국만화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위원회가 발족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대규모 기획전시를 개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만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큐멘터리 ‘만화 100년, 시대에서 숨쉬다’를 제작·방영했다. 한국만화 100주년은 1909년 6월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이도영의 시사만화가 게재된 것을 기점으로 한 것이었고, 전시와 다큐멘터리는 이도영의 만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서두를 열었다. 이로부터 약 15년이 지나면서 각 기관과 개인에게 비장(秘藏)되었던 이도영의 서화 작품이 활발하게 소개되었고 이도영과 그의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도 축적되었다. 출판미술에 대한 연구성과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화단과 서화가에 대한 연구가 풍성해졌고, 활발해진 미술시장을 통해 이도영의 다양한 서화가 발굴되면서 서화가로서 그의 위상도 비교적 선명해졌다. 이제 이도영은 더 이상 ‘한국 최초의 만화가’라는 수식어에 가둘 수 없는 미술가가 되었다.
시대가 필요로 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개척한 결과로 이도영은 ‘한국 최초의 만화가’가 되었다. 이도영은 신문 만평과 교과서 삽화 제작, 소설책 장정, 미술 교과서 집필, 관변 미술전람회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미술가 단체서화협회 대표, 고미술 감평가, 수출용 공예품 도안가 등 근대미술 제도와 관련하여 이도영이 관여하지 않은 부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화가로서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화와 기명절지화가 재조명되고 새로운 그림들이 발굴되면서 화가로서의 위상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만화’는 이도영이 개창(開創)한 많은 것들 가운데에 하나에 불과하다. 20세기 초 근대국가로의 이행, 식민 통치의 체제 개편, 문화 제도의 신설이 추진되던 시기에 미술가 이도영의 활약은 전방위에 걸쳤고 그 방향은 지식 창달, 민족의식 고양으로 일관(一貫)하였다.
이도영이 20세기 초 미술계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학계의 평가는 인색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화원 안중식과 조석진, 그리고 동양화 1세대 이상범과 노수현처럼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개창한 유명 화가들 틈에 끼어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오랫동안, 서화가로서 이도영은 온건한 화풍, 개량적이고 절충적인 화풍을 구사한 화가라는 것이 통설로 이어졌고, 만평가이면서 삽화가로서 보여준 선구적인 이미지는 미온적이고 보수적이기까지 한 서화 활동과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일제 통치와 관료집단을 신랄하게 풍자한 최초의 만평가라는 위상에도 회화작품에서 뚜렷한 혁신을 보여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20대에 일찌감치 국민국가의 형성, 대중의 등장, 미술시장의 재편 등 시대 변화를 통찰하고 다양한 분야의 미술을 개척하였지만 서화 창작에 있어서는 조선말 서화가들의 구습을 ‘답습’한 이유는 무엇일까. 계몽운동이라는 해석 틀로 이도영의 행적과 작품을 분석하면 이 불협화음은 해결하기 어렵다. 이도영의 서화가 보수적이고 봉건적이라는 평가 또한 그의 사후에 전개된 한국화단의 흐름 위에서 이루어진 단편적인 해석이라는 의구심 속에서, 그의 새로운 면모를 찾아가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서문_ 이도영, 다양한 ‘근대미술’을 보여주는 프리즘
제1부 ‘최초의 만화가’라는 수식에 가려진 이도영
제1장 ‘이야기 그림’의 힘을 아는 계몽운동가
부친 이인승과 이도영의 계몽운동
근대기술 숙련과 출판미술
제2장 ‘도화(圖畵)’의 방향을 제시한 미술교육가
스승 안중식과 경묵당(耕墨堂)
근대식 도화(圖畵) 교육과 서화가 양성
제3장 ‘조선 미술’을 탐구한 서화가
고미술 연구자 오세창의 영향
전통과 고전의 탐구
제2부 계몽운동기, 출판미술의 장을 열다
제1장 한국 최초의 신문만평 『대한민보』 삽화
삽화의 제작자 문제
삽화의 종류와 성격
판화기법의 발전과 삽화형식의 구축
제2장 편집사무 활동과 교과서 삽화
보성관의 교과서들 『초등소학』과 『몽학필독』
국민교육회의 『초등소학』
제3장 대중소설을 장식한 그림
신소설에서 번안소설까지
이해조의 『옥중화』와 이도영의 표지화
제3부 도제식 전수를 넘어, 새로운 미술교육
제1장 이도영의 도화교과서, 『모필화임본』과 『연필화임본』
『모필화임본(毛筆畵臨本)』
『연필화임본(鉛筆畵臨本)』
제2장 서화가 양성과 ‘동양화’ 교육
서화미술회의 임화(臨畵) 교육
서화학원의 ‘동양화’ 교육
제4부 전람회, ‘민족’과 ‘미술’의 방향을 묻다
제1장 서화협회전람회와 조선미술전람회
서화협회전람회
조선미술전람회
제2장 고서화전람회와 고서화 감평
고서화전람회 운영
고서화 감평
제5부 경계 위에 선 그림들
제1장 화조화와 기명절지도 사계절의 정취와 고고학적 관심
사계절의 정취를 담은 화조화
고고(考古) 유물을 담은 기명절지도
제2장 고사인물화와 역사인물화 한국식 고사인물화의 등장
한국적 고사인물화의 모색
근대 역사화의 출현과 이도영의 한국사 인식
제3장 산수화와 풍경화 ‘문사(文士)’의 거처에서 ‘국토’로
탈속의 공간으로서의 산수화
금강산도와 나전가구 도안
제6부 신구 문명의 교차기, 이도영의 비전
제1장 이도영의 자리
제2장 식민지하 ‘민족 미술’의 가능성
이도영 연보
도판목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초기에는 비유적이고 암시적이던 풍자는 점차 노골적으로 변하였다. 화제의 글씨 가운데 친일 관료의 이름 석 자 혹은 이와 동일한 음을 가진 한자를 크고 굵게 써서 독자는 시사 만화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을 한눈에 인지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인물의 초상과 악행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과감한 풍자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풍자화는 『대한민보』 삽화에서 가장 많이 시도되었는데, 일제 침략 의도가 노골화되던 상황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그림은 좀 더 해학적으로 발전하며 골계미를 띠기 시작하였고 오늘날의 만평과 유사한 그림 형식을 보여주었다. (95쪽)
한편, 연필을 이용해 일상 기물과 주변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연필화임본』의 그림들은 본격적으로 서양화가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에 정물화와 풍경화가 유입되는 창구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 『연필화임본』의 연필 소묘들은 이도영이 명암법, 투시도법, 원근법에 대한 이해를 갖추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도영의 『연필화임본』은 학생들에게 실물을 보고 그리는 사생화를 지도하면서 동시에 교과서 그림을 보고 그리는 임화 교육도 절충하였다. (211쪽)
주지하다시피 1920년대 후반부터 경매를 통해 서화를 수집, 매매하는 전문적인 서화수장가들이 등장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도영이 이들 전문적인 서화수장가들의 소장품을 감정하고 배관기를 남긴 사실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이도영이 조선미술관의 고서화전람회 운영에 관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오세창과 더불어 서화감식가로서의 위상도 갖추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도영의 활동 이력을 살펴볼 때 그가 고서화 매매에 관여하거나 전문적으로 서화 수장가나 서화 감정가로 활약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303쪽)
이도영은 1900년대 애국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며 대중 계몽에 대한 투철한 의식을 갖게 되었고, 일제강점 후에는 대중 출판물에 그림을 그리고 서화가를 양성하며 잠시 침잠하는 듯 하였지만, 1920년대 민족주의가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서화협회를 이끌며 조선인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모색하였다. 그가 세 차례나 간사장을 하면서 심혈을 기울인 것은 서화협회전람회 운영이었고, 1920년대 후반에 이르면 서화협회전람회를 조선총독부가 운영하는 조선미술전람회에 대척하는 “조선인의 유일한 전람회”로 우뚝하게 세워놓았고 김용준, 이태준, 윤희순 등의 비평적 지원을 받았다. (423쪽)
김예진 金芮辰, Kim, Ye-jin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 「관재 이도영의 미술활동과 회화세계」(2014)를 시작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한국화단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간을 건너온 그림들』(2023), 『한국미술, 세계와 만나다』(2020, 공저)가 있으며, 주요 논저로는 「20세기 초 일본 ‘살롱문화’의 한국 유입과 화조·화훼도의 변화」(2025), 「이도영의 정물화 수용과 그 성격-사생과 내셔널리즘을 통한 새로운 회화 모색」(2017), 「일제강점기 詩社활동과 書畵合璧圖 연구」(2010) 등이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