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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기 조선 영화에 대한 연구와 비평
저자 양인실 역자/편자 양인실 역
발행일 2026-10-30
ISBN 979-11-7549-034-5 (93800)
쪽수 263
판형 152*223 무선
가격 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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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나든 조선 영화,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에서 다시 쓰는 영화사

식민지시기 제국 일본(내지)에서 조선 영화는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조선 영화의 주요 관객은 재일조선인들이었다. 당시 조선 영화는 한반도 안에서만 만들어지고 소비된 것이 아니었다. 조선의 영화인들은 일본을 오가며 영화 제작에 참여했고, 일본의 자본과 기술은 조선의 영화산업에 깊숙이 관여했다. 조선에서 제작된 영화는 일본의 극장에서 상영되었으며,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 속에도 조선과 조선인이 등장했다. 식민지 조선의 영화사는 처음부터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복잡한 문화적 관계 속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이동과 교류의 역사에 주목하여 식민지시기 조선 영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다. 조선 영화가 제국 일본 안에서 어떻게 제작되고 유통되었으며, 일본인과 조선인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추적한다. 조선 영화는 제국 일본의 문화산업에 편입되면서도 완전히 동화되지 않았고, 조선적인 특수성을 요구받으면서도 그 특수성 때문에 배제되었다. 이러한 모순과 긴장 속에서 식민지시기 조선 영화의 복합적인 성격이 형성되었다.

이 “문화교류” 과정을 밝히기 위해, 조선이나 제국 일본에 관한 연구, 영화연구, 사회사연구 등의 시점을 교차시키면서 하나의 학문적 접근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학제적이고 복합적인 시점을 제시한다. 조선과 내지에 관한 연구에서는 당시의 사회상이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영화연구와 사회사연구에서는 영화분석이나 영화수용의 역사나 관객의 수용과정, 그리고 영화관 연구 등을 참조했다.

1차자료로는 영화인들이 남긴 수기나 영화평, 그리고 현존 필름이나 영화잡지의 기사, 신문기사 등을 참고했다. 그리고 당시의 문헌자료로는 일본어 자료는 물론이고 조선어 신문이나 잡지, 평론 등도 참고했으며 재일조선인, 재조일본인들이 남긴 매체들도 1차자료로 사용했다.

또한 이 책은 조선 영화를 관람하는 조선인 관객들을 수동적으로 영화를 소비하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식민지적 자본주의와 관객의 근대적 욕망이 혼합된 장소인 영화관에서 능동적으로 무슨 작품을 어느 장소에서 볼지 선택하는 문화적 주체로 바라보며 기존 연구의 시야와 차별점을 두고 있다.

 

스크린 속의 조선은 누가 만들었는가

제국 일본의 영화인들에게 조선은 낯선 풍경과 풍습, 의상과 언어를 지닌 이국적인 공간이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이러한 차이를 강조하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이를 ‘로컬리티’, ‘향토색’, ‘지방색’ 등의 말로 표현했다. 그러나 조선적인 특수성은 단순히 흥행을 위한 소재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 일본이 식민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재현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제였다.

제국 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조선이 일본의 지배 아래 근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 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는 일본과 구별되는 조선만의 풍경과 생활상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근대화된 조선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이국적인 조선을 보여줄 것인가. 이러한 모순은 조선 영화를 제작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조선의 언어와 의상, 풍습은 영화의 매력이면서 동시에 제국의 동화 정책과 충돌하는 요소였다.

이 책은 1925년 일본의 주요 영화사들이 경쟁적으로 제작한 〈대지는 미소짓는다〉를 비롯해 〈춘향전〉, 〈나그네〉, 〈군용열차〉 등의 작품을 통해 스크린 속 조선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특히 〈대지는 미소짓는다〉의 신문 연재와 영화화 과정을 추적하면서, 작품을 둘러싼 독자와 관객의 반응까지 함께 분석한다. 신문에 실린 삽화와 독자의 투고, 영화잡지의 비평은 당시 사람들이 조선과 조선인을 어떤 모습으로 상상했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서장 조선 영화와 조선스러움

 

제1장  1920년대 〈대지는 미소짓는다(大地は微笑む)〉의 ‘조선’과 그 주변

제2장  1930년대 영화 〈춘향전〉의 경계와 번역의 불 / 가능성

제3장 인터내셔널한 조선 영화를 찾아서

제4장 경성 영화관에서의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교차’ 

제5장 아동 영화에서 ‘소국민(少国民)’의 이야기로

제6장 재일조선인과 영화의 접합-영화계 배제와 포섭 

종장 제국 일본에서 조선 / 영화를 상상하고 만들기 

 

후기 

초출일람 

나가며 

미주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라디오 중계가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과도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보기를 들어 1937년 2월 25일 자 『도쿄아사히』에는 “밤 8시 30분 경성에서 조선가극 〈춘향전〉이 중계된다”며, 『춘향전』은 “조선의 소설 중 백미로, 때로는 연극으로, 때로는 영화로 만들어져 일반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인데, 이번에는 신임사또 도착 장면을 선택해 전후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첨부해 둔다”고 했다. 라디오는 현해탄을 넘어 사람들이 같은 시간대에 『춘향전』을 공유하게 했다. (67쪽)

 

〈암살〉의 무대가 된 메이지마치의 중심에는 메이지좌가 있었다. 1936년 준공한 이 건물은 경성의 영화 흥행계에 큰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1930년대 초까지 “경성은 조선의 수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감상하기 좋은 극장이 하나도 없는 것은 경성부민의 수치”라고 할 정도로 문화적인 시설이 거의 없었다. (135쪽)

 

도쿄의 이 시사회에는 오쓰키 이외에도 재일조선인 소설가 장혁주가 있었다. “경성에서 수많은 식사대접을 받았고 유쾌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기차 안에서 저 구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제 더이상 앞으로는 경성에서 더 이상 기분 좋게 즐거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장혁주는 영화 〈집없는 천사〉를 보고 나서는 경성의 “부랑소년浮浪少年”에 대한 신문기사를 주의 깊게 읽게 되었고 “방 목사의 소년원 경영이나 제주도에 개척전사로 송출한다는 기사”를 읽는 정도의 지식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182쪽)

양인실 梁仁實, YANG IN-SIL
한국 제주 출생. 리쓰메이칸대학교(立命館大学) 대학원 사회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사회학 박사). 현 이와테대학교(岩手大学)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2019년 10월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 2024년 3월 서울대학교 규장각국제한국학연구소 펠로를 역임했다. 대학원에서는 일본 영화 속 재일조선인 재현에 관한 연구를, 박사 후 과정에서는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에서 조선 영화가 어떻게 상상되었는지를, 그리고 현재는 한일 양국의 문화교류사에 재일코리안이 미친 영향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업적으로 「1960년대 한국 영화와 재일조선인-냉전이데올로기 재현과 주일공보관」(한국영화학회, 『영화연구』 106, 2024.12), 「トランス / ローカルシネマとしての済州4·3映画(트랜스 / 로컬시네마로서의 제주4·3영화)」(『年報朝鮮学(연보 조선학)』 26, 2023.12); 「K와 한류 사이에서」(가천대 아시아대중문화연구소 편, 『세계 속의 한류』, 역락, 2022) 「영화관객으로 재조일본인을 상상하기-일본어신문 『부산일보』를 중심으로」(김효순 외편, 『식민지 문화정치와 「경성일보」-월경적 일본문학·문화론의 가능성을 묻다』, 역락, 2020) 「복합영화상영관 메이지좌의 사회사」(한국학중앙연구소 편, 『명동 길거리문화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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