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사쿠라이 요시유키 | 역자/편자 | 류애림, 심희찬, 하영건 역/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 사업단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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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4.02.29 | ||
ISBN | 979-11-5905-751-9 | ||
쪽수 | 435 | ||
판형 | 152*223 양장 | ||
가격 | 33,000원 |
식민지 지배를 위한 토대로서의 연구
이 책은 1979년 10월 15일 일본 용계서사(龍溪書舍)에서 출판된 사쿠라이 요시유키(櫻井義之)의 『조선연구문헌지-메이지ㆍ다이쇼 편(朝鮮研究文献誌-明治ㆍ大正編)』을 번역한 것이다.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조선연구문헌지』는 경성제대에 근무했던 사쿠라이 요시유키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일본의 조선 관련 연구 문헌의 목록집이다.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사업단이 번역 작업을 주관하고 있으며, 상ㆍ중ㆍ하로 나누어 번역 중이다. 상권은 지난 2021년 5월 30일 소명출판에서 간행되었으며, 이번에 출판된 것은 중권이다. 하권도 조만간 번역 출판될 예정이다. 상권에는 전체 목차 중 ‘총기’, ‘철학ㆍ종교’, ‘역사ㆍ지지’ 부분이 실렸고, 중권에는 ‘사회과학’, ‘자연과학’ 부분을 실었다. 추후 출판될 하권에는 ‘공학ㆍ공업’, ‘산업’, ‘예술’, ‘어학’, ‘문학’, ‘조선지도’, 그리고 1992년에 별도로 간행된 ‘쇼와편 유고’와 ‘메이지·다이쇼 편 보유(補遺)’가 실리게 될 것이다.
제국의 식민지 지배는 무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식민지에 대한 방대한 조사와 학적 담화의 구축이야말로 지배의 토대를 형성한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국가로 탈바꿈한 일본은 같은 시기에 주변 지역에 대한 침략을 시도했고, 조선에 대해서도 19세기 중후반부터 다양한 조사 및 연구를 시작했다. 이 책은 상술한 바와 같이 메이지기(1868~1912년)에서 다이쇼기(1912~1926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간행된 일본의 조선 관련 문헌의 목록집이다. 그러나 이 목록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나열이 아니다. 현실과 무관한 진공 상태에서 작성된 목록이란 있을 수 없다. 지식은 정치와 분리되지 않는다. 이 책은 거대한 지식의 체계를 건설하고, 이를 통해 식민지의 역사, 언어, 문화, 관습, 사회, 생활, 종교 등 다양한 측면에 압박을 가하는 제국의 학지(學知)를 독자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상을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그 내용을 구성한 다음, 언어를 통해 전시하는 행위야말로 인식의 틀을 강제하는 원초적 폭력에 다름 아니다.
사쿠라이 요시유키의 생애
저자 사쿠라이 요시유키는 1904년에 태어났으며 주오대학(中央大学)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28년 경성제국대학 조수(助手)로 근무하게 되었고, 법문학부의 시카타 히로시(四方博)를 도와 ‘조선경제연구소’의 업무를 담당했다. 주로 조선 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에 진력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 소개된 서적들은 대부분 당시 연구소에서 서지 사항을 연구하면서 얻은 정보들에 기반하고 있다. 자료의 양과 질 어느 면으로 보아도 당시 조선경제연구소가 자료 수집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사쿠라이는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총독부의 보물고적명승기념물보존회, 조선박물관, 이왕가미술관 등에 관여했던 오쿠히라 다케히코(奥平武彦), 그리고 유진오와 매우 친하게 지냈다. 특히 자기보다 나이가 두 살 어린 유진오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또한 사쿠라이는 1937년 5월에 발족한 ‘경성서물동호회’의 간사를 맡아서 패전으로 중단될 때까지 참가했다. 그리고 소위 재야의 ‘조선전문가’들 사이에서 서지학적 연구의 본격적인 연습을 경험했다. 서물동호회의 참가 멤버는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이마무라 도모(今村鞆), 기쿠치 겐조(菊池謙讓) 등이었는데, 이들은 제국대학에서 아카데미즘 역사학의 훈련을 받은 관학자들은 아니었다. 사쿠라이는 그들로부터 ‘생생한 조선근대사’를 배웠다고 회상한다. 패전 이후에도 사쿠라이는 서물동호회를 지속시키기 위해 제국대학 출신의 역사학자들(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다가와 고조(田川孝三))과 함께 ‘도쿄서물동호회’의 재건을 시도하기도 했다.
사쿠라이 요시유키의 수집
1941년부터 조선총독부 관방문서과로 옮겨 기관지 『조선』의 편집을 담당하기도 했던 사쿠라이는 일본의 패전과 함께 부인과 둘이서 현해탄을 다시 건너갔고, 1989년 9월 12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반도에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관료나 학자들이 그렇듯이 패전 이후 그의 삶을 지탱해준 것은 식민지에서 만들어둔 인적 네트워크였다. 경성제대교수였던 우에노 나오데루(上野直昭)의 소개로 1950년부터 도쿄도립대학 도서관 사무장을 맡았고, 1968년에 도쿄도립대학에서 정년을 맞은 이후에는 마찬가지로 경성제국대학에서 인연을 맺었던 후나다 교지(船田享二)의 초청으로 작신여자단기대학 주임교수 자리를 얻었다. 그리고 여기서 번역하는 책의 토대를 이루는 『조선연구문헌지-메이지 다이쇼편』을 1979년에 간행한다.
시카타와 사쿠라이는 패전 이후 자신들이 수집했던 책을 그대로 조선에 둔 채 일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시카타가 수집했던 책은 서울대학교 도서관 ‘경제문고’로 이관되었다. 현재 일본의 도쿄경제대학에는 ‘시카타 히로시 조선문고’와 ‘사쿠라이 요시유키 문고’가 있는데, 시카타 문고에는 약 4천 점이, 사쿠라이 문고에는 약 1천 8백 점의 서적 및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시카타와 사쿠라이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일본으로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관련 서적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 작업이 오늘날 방대한 문고로 이어졌다. 자료에 대한 그들의 무서운 집념을 엿볼 수 있다. 1974년에 설립된 사쿠라이 문고(1984년에 남은 자료 추가 기증)에는 강만길, 신용하, 안병직 등 한국의 저명한 연구자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지식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폭력
이처럼 사쿠라이는 20대부터 조선에 건너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젊은 사쿠라이는 경성제대 연구실 한편에 수집한 조선관련 연구문헌을 쌓아 놓고 이를 하나하나 펼쳐보며 그 서지 사항과 중요한 특성을 원고지에 옮겨 적는 작업을 매일 같이 행하지 않았을까? 또한 패전 이후 일본에 돌아가서도 그는 죽을 때까지 같은 작업을 기계적으로 지속했다. 『조선연구문헌지』는 그 자체로 사쿠라이의 신체성을 보존하는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느리지만 삶 속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원고지의 무게야말로 지금도 여전히 식민지를 짓누르는 제국의 학문적 권위일 것이다. 제국이 구축한 지식의 그물망, 『조선연구문헌지』는 그 음험하고 폭력적인 욕망을 현시하는 서적이다. 우리는 지식이라는 이름 아래 심어진 문헌의 숲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저자 서문
저자 범례
역자 범례
四/ 사회과학
五/ 자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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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간행사
지은이
사쿠라이 요시유키 櫻井義之 1904년 후쿠시마현 출생. 경성제국대학 조선경제연구소, 조선총독부 관방문서과 근무. 도쿄도립대학 교수.
엮은이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단
옮긴이
류애림 柳愛林, Ryu Ae-rim 규슈대학 법학부 준교수.
심희찬 沈熙燦, Shim Hee-chan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교수.
하영건 河瑛乾, Ha Young-gurn 연세대학교 대학원 동양사 전공 석사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