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조영복 | 역자/편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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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6-08-25 | ||
| ISBN | 979-11-7549-088-8 (03910) | ||
| 쪽수 | 613 | ||
| 판형 | 152*223, 각양장 | ||
| 가격 | 39,500원 | ||
역사에서 지워진 한 사람, 한국 근·현대사의 빈칸을 채우다
이육사의 백학학원부터 대한상이군인회 창설과 사라진 시온섬까지
구술의 증언은 역사적 영웅도 유명 인물도 아니었던 한 개인, 조만호의 생애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잊힌 시간을 복원한 책이다. 저자는 가족이 간직해 온 문건과 메모, 낡은 사진, 구술증언을 신문자료와 공적 기록에 비추어 살피며 공인된 역사에 담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되살린다.
한 개인의 삶에서 발견한 한국 근·현대사
조만호의 삶에는 식민지 교육과 광산 노동, 해방과 한국전쟁, 좌익혐의와 연좌제, 상이군인 문제와 산업개발의 역사가 겹쳐 있다. 경상북도 영천, 함경남도 이원 차호, 부산 하단동 시온섬을 따라 이어지는 그의 생애는 고향을 떠나고 가족을 잃으며 격동의 시대를 견뎌낸 우리 부모 세대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이 책은 한 가족의 사적인 회고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기억과 기록을 통해 거대한 역사가 평범한 사람의 직업과 생계, 가족관계와 삶의 터전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육사의 백학학원과 대한상이군인회의 새로운 기록
이 책은 이육사가 수학하고 교사로 근무했던 백학학원의 실질적 운영 주체인 '시온촌 동인'을 새롭게 조명한다. 기존에 기독교 단체로 규정되어 온 시온촌 동인의 성격을 조만호의 삶과 활동을 통해 다시 살피며 새로운 논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조만호가 남긴 「상이군인회 동래군분회 회칙」 등의 문건도 주목할 만하다. 초기 자료가 대부분 사라진 상황에서 이 기록들은 대한상이군인회의 창설 과정과 한국전쟁 이후 상이군인의 생계, 권익, 원호·복지제도의 출발점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지도에서 사라진 부산 시온섬을 기억하다
낙동강 하구에 있던 부산 하단동 시온섬은 하구언 개발과 함께 사라졌다. 이 책은 사진과 문건, 구술증언을 통해 사람들이 살고 농사를 지었던 시온섬의 생활사와 생태환경을 복원한다. 우장춘의 '씨 없는 수박' 시험재배와 관련된 기억도 함께 되살아난다.
구술의 증언은 이름 없는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면서, 역사에서 밀려난 수많은 사람의 삶을 현재로 불러내는 생활사이자 미시사다. 오래된 가족사진 속 인물의 삶을 궁금해한 독자, 부모와 조부모가 살아낸 시대를 제대로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에서 자신의 가족과 이웃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이름을 되찾는 순간, 우리가 알던 역사는 더 깊고 넓어진다.
차례
서문을 대신하여
제1부 '반토막의 말'이 들려주는 사적 개인의 생애사 - 주류역사의 허무를 넘어서
제1장 한국 근·현대사의 무게를 진 ‘아틀라스’, ‘카리아티드’ -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
제2장 구술자료, 사적자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도서관 - 구술자료의 ‘역사세계’로의 틈입
제2부 함경남도 이원으로의 이거와 해방공간의 사상운동(일제시대~해방공간까지)
제1장 1921년 ‘근대’의 거대한 파고를 타고 이거하기 - 경상북도 영천 용계리에서 함경남도 이원 차호까지
제2장 1921년 영천에 백학학원 설립되다 - 이육사의 백학학원 수학과 영천지역 근대교육운동
제3장 조삼봉, 근대라는 빛을 본 자, 근대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 자 - ‘장자(長子)’, ‘장손(長孫)’의 근대를 향한 탈향
제4장 1918년 이원철산주식회사 설립되다 - 이원철산의 식민지 광업 진출과 차호근역의 활황
제5장 1934년 함경남도 이원군 차호공보에 입학하다 - 공보입학난과 ‘일본화교육’의 본질
제6장 1937년 권양기 사고 발생하다 - 근대의 대낮과 어둠, 광산사고의 비극과 한 가족의 참혹
제7장 1919년 3·1운동의 불꽃 한가운데 - 중요한 세 가지 사건, 유교가문의 근대식 법령 체제에 대한 미숙과 혼돈
제8장 1937년 7월 24일 나카타신이치 재학증명서를 써주다 - 영천으로의 귀향의 불가능과 고등과 실업교육의 전말
제9장 1942년 이원철산광업회사에 취직하다 - 이원철산의 사업확장과 그 부조화
제10장 1944년 이원철산광업회사를 사직하다 - 지식인 강제징용과 도피 혹은 공백의 시간들
제11장 1945년 해방되다 - ‘사회적 학교’로서의 야학강습과 지역공동체 활동
제12장 1946~1949년 영천10월항쟁, 보도연맹사건의 포승줄 - ‘좌익사상범’의 사슬에 구속된 시대의 망명객
제3부 구포지역의 근대화와 실명의 연대기(일제 말기~1950년대)
제1장 낙동강이 낳은 자식들, 구포가 키운 인간들 - ‘무서운 규모’의 낙동강의 장엄
제2장 1937·1949·1958년, 세 번 죽다 - ‘조만호’, ‘조만석’, ‘조만식’의 실명(實名)과 실명(失名)
제3장 1937년 미나카이백화점 부산점 설립되다 - 구포인들의 근대적 일상의 생활세계
제4장 1944년 조선총독부 처녀공출 강제하다 - 산 자와 죽은 자의 교환, 실명(失名)과 실명(失命)
제5장 1945년 해방 되다 - 봉건여성과 근대여성의 ‘사이’
제6장 1950년 10월 13일 한국군 5사단 36연대에 입대하다 - 중공군 3차 공세와 한국군 5사단 36연대의 전황
제7장 1951년 7월 15일 상이군인으로 명예제대하다 - 상이군인들의 제거되지 않은 총탄의 상흔과 ‘사회적 이물질’로서의 삶
제8장 1951년 사단법인 대한상이군인회 경상남도지부 동래군분회 조직결성의 전후 - 조만호가 남긴 필사본 문건들이 말하고 있는 것
제9장 1952년 단오날그들이 결혼하다 - 지아비 잃은 가모장 여성의 선택, 아비들이 사라진 시대 남성의 ‘이중·삼중 가장’ 되기
제10장 1956년 병풍사 이주, 칼빈총 강도 들어 전재산 강탈당하다 - 떼강도들의 시대, 1950년대의 무법?(無法)의 민생경제
제4부 시온섬 이주와 무인도 갈대숲의 개척자(1960~1970년대)
제1장 시온섬, 시온섬, 정신의 시온촌으로 돌아가다 - 시온섬과, 이문열의 강진(江盡 )혹은 하단(下壇)
제2장 1957년 이 세상의 끝으로 밀려나다 - ‘시온섬’ 지명의 기원과 ‘을숙도’와의 혼동
제3장 1959년 사라호, 1963년 셜리호 태풍이 덮치다 - 시온섬의 역사, 지리, 문화적 위치와 미디어적 표상
제4장 1950년 우장춘 ‘신코마루호’를 타고 조선으로 귀국하다 - 우장춘의 ‘씨 없는 수박’과 시온섬에서의 시험재배
제5장 1960년 최인규, 임대홍, 임채홍, 장학엽을 만나다 - 권력자들, 기업인들, 밀항자들, 사냥꾼들에 대한 기억
제6장 1952년 양한나 혹은 ‘양할라’ 여성 구호사업 하다 - 나혜석, 김우영, 그리고 시온섬의 ‘자매여숙’
제7장 1952년 영연방 ‘아동구호재단’ 부산병원 설립되다 - 1950·1960년대생 ‘바리데기 딸들’의 격전
제8장 1958(?)년 ‘똥할매’, 앉은뱅이가 되다 - ‘돌팔이들’의 의료사(醫療史)와 사고사(事故死)
제9장 1960년 ‘금성라디오’를 사고 『부산일보』, 『동아일보』를 구독하다 - 라디오, 신문을 통한 시온섬 바깥 세상과의 대화
제10장 1974년 『동아일보』 백지광고사태가 나다 - 자유시민의 이름으로
제5부 온전한 한 개인, ‘시민’의 이름을 되찾기 위하여(1980~2020년대)
제1장 ‘똥다리’ 아래 ‘똥’은 흐르고 ‘사랑’, ‘낭만’은 흐르지 않고 - 낙동강 오염과 똥의 문제
제2장 1983년 낙동강 하구언 공사 시작되다 - ‘시온섬의 역사’ 곧 ‘조만호-이분연의 생애사’
제3장 시온섬의 길, 차호의 길, 음식으로 통일되다 - 욕심이 없어 희어진 자
제4장 1998년 7월 29일 상이확인신청서 육군참모총장에게 제출하다 - 이명, 익명, 실명의 혼란의 삶을 끝내고
제5장 2001·2020년, 운명이 역사를 이기다 |- ‘작은인간’의 생애사의 새로운 시작
제6부 에필로그 나머지 ‘반토막의 말’
제1장 ‘작은인간’의 ‘복수주의’의 역사와 영혼의 봉헌
조만호 생애사 연표
한국 근·현대사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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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적 행정체계나 봉건적 질서에 익숙했던 가문들은 한일합병 이후로는 일제가 새로 구축한 행정체계나 근대 법체계에 익숙하지 않아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조만호의 선조들은 조우환의 조부 때부터 이미 영천지역에 삼림을 조성했다고 한다. 조우환이 남긴 그의 서명이 담긴 문서는 「 국유삼림양여원」 3건 및 관련 도면으로, 「 국유삼림양여원」은 조부 때부터 길러온 소나무 2천 그루가 국유삼림에 편입돼 버리자 그것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보호해달라는 취지로 올린 일종의 민원문서이다. (154쪽)
큰아들뿐 아니라 종손마저 전장통에 끌려나간 뒤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병풍사 절에 다니는 옆집 김 씨 할매는 이미 자식의 전사통지서를 받아들고 오열했지만 시신은 귀향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이분연은 그런 엄마가 너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쓰린 마음을 가다듬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찬바람을 맞고 산성에 나무를 하러 갔다 온 탓인지 피곤하고 피로하기 이를 데 없었던 하루였다. (267쪽)
조만호가 시온섬을 찾아 홀로 이주했을 즈음 양한나가 시온섬의 개간된 갈대밭에 사회복지시설 ‘ 자매여숙’을 지었다. 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지적으로 다소 문제가 있는 여성들 중 노동이 가능한 여성들이 그곳에 거주하면서 과채류 경작을 했다. 경작된 과채는 괴정에 있는 자매여숙 원생들에게 먹거리로 제공되었을 것이다. 양한나와 조만호의 관계에 대해서는 증언자 간 다소 차이가 있는데, 김윤금과, 양한나의 친척이 구포지역에서 서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친척의 소개로 양한나와 조만호가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424쪽)
조영복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북 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2002), 『1920년대 초기 시의 이념과 미학』(2004), 『문인기자 김기림과 1930년대 '활자-도서관'의 꿈』(2007), 『원형 도상의 언어적 기원과 현대시의 심연』(2012), 『듣다 보다 읽다-1930년대 문학의 '경계넘기'와 '개방성'의 시학』(2013), 『이것은 글쓰기가 아니다』(2016), 『지의 황혼-1940년, 누가 시를 보았는가?』(2020), 『지인의 말법-전설의 사랑시에서 건져낸 울림과 리듬』(2020), 『한국 근대시와 말·문자·노래의 프랙탈 - 문자화, 기사법(記寫法) 그리고 조선어구어한글문장체 시가 있었다』(2022), 『한국 근대시와 '철미디어'의 거울 - '전기' '전자', '전파', '전신'의 개념에 반사된 시적 상상력과 리듬』(2023), 『깨어진 거울의 눈 -문학이란 무엇인가』(2000, 공저), 『디체, 철학의 주사위』(1993, 공역), 『달개』(2011, 편저) 외에도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제25회 김환태평론문학상(2014), 제10회 김준오시학상(2023), 제2회 김윤식학술상(2023), 제8회 난정학술상(2024) 등의 학술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