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민혜숙 | 역자/편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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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4.03.15 | ||
ISBN | 979-11-5905-865-3 | ||
쪽수 | 261 | ||
판형 | 130*200 | ||
가격 | 19,000원 |
안견의 역작 〈몽유도원도〉, 그 뒤에 가려진 존재 ‘안평대군’
조선의 많은 화가들 중 안견의 이름이 21세기까지 진하게 남는 것은 단순히 그의 실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세종부터 세조 집권기까지 활동하며 네 명의 왕조를 살아낸 안견. 그의 짧지 않았으리라 짐작되는 생애와 명성에 비해, 그의 공식적인 이름을 달고 지금까지 현존하는 작품은 두세 점뿐이다. 〈몽유도원도〉는 그 중 가장 압도적인 작품이자, 그의 역작이다. 비단 바탕에 일 미터가 넘는 크기, 꿈속의 장면을 완벽히 구현해냈다는 평을 받는 〈몽유도원도〉는 현재 한반도가 아닌 바다 건너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몹시도 환상적이라 눈을 떠도, 다시 감아도 선명히 떠오를 정도로 완벽했다던 그 도원의 꿈. 그 꿈을 그려낸 안견과 〈몽유도원도〉 뒤로는 가려진 이름, 안평대군이 있다.
세종의 아들, 단종의 숙부, 세조의 동생
〈몽유도원도〉의 배경이 된 꿈의 주인, 안평대군. 우리에게 안평대군은 〈몽유도원도〉의 모티프를 제공한 존재이자 세종의 셋째 아들, 단종의 숙부, 세조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학문과 예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예술가이자 그들의 후원자였고, 세조의 야심에 의해 희생된 불운한 왕자로 알려진 안평대군. 어느 날 그가 몹시도 선명한 도원의 꿈을 꾸었고, 이를 새겨내기 위해 평소 가까이 지내며 후원했던 안견에게 그 정취를 그리게 했다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몽유도원도〉의 탄생비화이다. 그렇게 탄생한 〈몽유도원도〉를 아끼고 아꼈다는 안평대군의 남겨진 행적은 서예 작품 몇 개와 세조에 의해 사사(賜死)당했다는 문장이 전부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안평대군과 〈몽유도원도〉, 그 너머의 지점을 상상하다
어째서 〈몽유도원도〉는 한반도가 아닌 일본에 있는가? 소설의 문을 여는 질문이다. 안견이 그리고 안평대군이 사랑한 그림이 역사의 풍랑에 휩쓸리다가 일본의 바다에 닿은 것인가? 안견이 그렇게 많은 작품을 그렸는데, 이 땅에 안견의 작품 하나 남지 않았다는 것에 의문을 품은 ‘상재’는 〈몽유도원도〉의 행적을 좇고, 그 과정에서 그의 시선은 그림 뒤에 있었던 안평대군에게 머물게 된다.
성군이라 칭송받는 아버지 세종의 셋째 대군. 하나여도 좋을 왕자가 대군으로만 여덟이었다. 그 중 셋째의 운명을 타고난 안평대군은 날 때부터 왕좌 근처로는 시선을 돌릴 수 없음을 알았다. 그 운명을 깨닫고 지은 그의 당호, 안평. 평안하게 사는 것만을 바라기엔 그에게는 재주도, 능력도, 따르는 사람도 너무나 많았다.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며 사는 안평대군의 눈과 입을 통해 바라보는 조선 초기는 가벼운 평화 속 쉴 새 없는 암투와 풍랑의 연속이었다. 그 소용돌이로부터 한 발짝, 한 발짝 더 멀어지기 위해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당호같은 삶에 몰두한다. 그렇게 가진 〈몽유도원도〉. 비록 이를 그려준 안견과는 멀어졌지만, 그에게는 그의 어떤 것보다 소중했던 그림이 남았다. 그 그림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다 안평대군은 한 가지 결심을 한다. 그림 안에만 있던 자신의 도원을 현실에 완성하기로.
꿈같은 비극, 꿈보다 큰 환상, ‘꿈’에 대하여
모든 것이 안평대군의 꿈만 같으면 좋으련만, 그가 꿈속의 도원을 좇고 있는 동안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자들은 다른 꿈을 좇기 시작했다. 어린 왕 단종과 김종서, 바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꿈을 품었던 수양대군과 그를 알아챈 한명회 등 역사 속의 인물들이 가벼운 행복 같은 〈몽유도원도〉 막하에서 누군가는 방향을 돌려 다른 쪽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죽음을 향한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몽유도원도〉가 덮어준 하늘 아래에서 선택을 마친 모두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때, 안평대군은 그의 ‘몽유도원’을 향해 그저 날아오를 뿐이었다.
〈몽유도원도〉를 가지게 된 안평대군과 그의 주변, 그리고 그를 좇는 현대의 ‘상재’. 각자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배경으로 자리하는 꿈속의 꿈 〈몽유도원도〉. 그 중심에서 흩어지지 않는 가장 단단한 ‘꿈’. 눈을 감고 꾸는 꿈조차 꿀 여유가 없는 21세기에 『몽유도원』이 보여줄 세계는 꿈같은 비극, 꿈보다 더 큰 환상, ‘꿈’과 같을 것이다.
제1장 맨 인 골드
제2장 대왕의 콤플렉스
제3장 무계정사 뜰에서
제4장 여백의 소리
제5장 팔자소관
제6장 무너진 울타리
제7장 사나이의 울음
제8장 죽음보다 더한 고통
제9장 나비야 청산가자
제10장 연, 깨끗한 벗이여!
제11장 기러기의 울음
제12장 금빛 찬란한 꽃술로 날다
작가의 말 |
꿈에 본 도원을 간직해 두고 싶어서 그는 안견을 불렀다. 안견이라면 그가 설명하는 바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안견이라면 그가 말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62쪽)
“작은 낙원을 만들고 싶다는 말일세. 뜻이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시도 짓고. 세상의 속된 걱정 근심이 없는 곳. 인간의 추악한 욕심이 침입하지 못하는 곳 말일세.”(68쪽)
그렇다면 그다음 차례는 안평이 될 수도 있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나도 임금이 되고 싶지 않다.’
최고의 자리이기는 해도 평생 그렇게 살기는 싫었다. 그래서 버릴 자격은 없지만 ‘나도 임금이 되고 싶지 않다’고 가만히 마음속으로 뇌어보는 것이다.(73쪽)
상재 자신이 프랑스에 잠시 도피했던 것도, 안평대군이 무계정사를 짓고 그 정원을 가꾼 것도 따지고 보면 안견 산수화의 여백처럼, 생의 여백이었다. 그것은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지만, 그러기에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왕자가 현실적인 삶과는 별개의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무계정사는 분명 안평대군의 빈 곳 즉 마음의 여백을 드러내고 있었다. (93쪽)
금빛 나비들이 동산을 가득 채우자 도원은 온통 금빛으로 일렁거렸다.
아! 노랑나비, 오! 꿈에 보았던 도원, 그곳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259쪽)
민혜숙 閔惠淑, Min Hyesook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ㆍ박사로 대원여고와 외고에서 불어교사를 역임했다. 광주로 이주 후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다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 『문학사상』 중편소설에 당선되어 소설가로 활동하여 『서울대 시지푸스』, 『황강 가는 길』, 『사막의 강』, 『목욕하는 남자』 등의 소설집을 펴냈다. 『조와』, 『문학으로 여는 종교』, 『한국문학 속에 내재된 서사의 불안』 등의 저서와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를 비롯한 여러 권의 역서가 있다. 전남대학교,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호남신학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현재는 기독간호대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광주 새길교회를 개척하여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