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김환태평론문학상 수상
저자 | 박슬기 | 역자/편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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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4-06-15 | ||
ISBN | 979-11-5905-904-9 (93810) | ||
쪽수 | 316 | ||
판형 | 130 mm * 200 mm, 각양장 | ||
가격 | 24,000원 |
자유시의 기원이라는 곤경
한국의 근대시는 자유시이지만 자유시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정의하기 어렵다. 대개는 전통 시가의 엄격한 정형적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형식으로 창작된 시로 간주된다. 그런데 전통 시가에서 근대시의 이행이라는 보편적 발전 과정이 한국시사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자유시란 정형시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지만 우리의 전통 시가가 정형성을 확고하게 담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시를 자유시로 간주했던 최초의 입론자들이 마주했던 곤경은 이런 것이다.
자유시란 그 기원적인 면에서 늘 결여된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전통 시가에서 이탈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탈의 근원 또한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형시가 없었으므로 자유시는 출발할 지점을 출발하기 전부터 상실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유시 담론은 언제나 ‘자유시의 역사적 기원’을 창출할 수밖에 없다. 자유시의 역사적 기원이 외래적인 것에 있다는 것은 그 기원이 외래적인 것이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자유시의 역사적 기원을 시가사의 연속적 과정에서 놓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자유시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는 장르였기 때문이다.
자유시의 원천적 장으로서 개화기
이런 차원에서 이 책은 한국 근대 자유시의 기원을 탐구하기 위해 1900년-1920년까지의 통상 개화기로 불리는 시기를 다루었다. 이는 기왕의 한국 근대시 발전론을 재고하고 자유시로서의 근대시를 인식하고 실험하던 당시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근대시가 전통 시가의 인식과 새로운 시에 대한 인식이 교차하고 갈등하는 와중에 역동적으로 생성되어 온 과정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1919년의 자유시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개화기는 확실히 근대적 자유시가 발생한 원천적인 장(場)이다. 그것이 개화기가 ‘과도기적 시기’라고 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다. 그러나 이것은 개화기가 시간적으로 앞서 있거나 자유시를 성립시키기 위한 준비 기간이기 때문이 아니다. ‘새로운 문학’을 세우려는 지식인들의 의지가 ‘기왕의 문학’이 점유하고 있었던 토대와 마주치면서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고 생성되는 장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 자유시의 담론적 지평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근대시는 자유시라는 인식 자체를 점검하면서 당대 근대시 담론을 근대문학 및 근대성 담론의 지평에서 재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통상적으로 한국 근대시사 연구가 근대시 인식과 발생을 둘러싼 문학 개념의 변화나 매체적 변화 등을 다루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논의의 중심에는 언제나 근대 자유시를 근대시의 최종적 형태로 전제하는 의식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자유시는 시 창작과 수용을 둘러싼 모든 변혁적 조건들 속에서 그것의 구조적인 효과로서 출현한 것이며, 동시에 그 효과 안에 구조가 존재하는 내재성의 형식이다. 따라서 자유시는 당대의 조건들을 떠나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자유시의 선언과 지향, 완성에 관한 당대의 열망은 역설적으로 자유시 개념과 형식 자체가 완성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일테다. 이러한 차원에서 근대 자유시는 뛰어난 개인들의 성취에서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못한 실험들 속에서, 이상과 창작의 괴리 속에서 살펴져야 한다.
조잡한 성좌들, 최남선에서 김억까지
따라서 이 책에서는 최남선의 『소년』과 『청춘』이 보여준 문체적, 문학적 실험을 통해 근대 문학이라는 기존의 관념에 균열을 내는 지점을 포착하고자 했다. 한국 근대시 연구에서는 최남선과 이 잡지들이 만든 문학-장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는 이 장이야말로 근대 문학이 그리고 그 하위 범주로서의 근대시가 출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계기였다고 바라본다. 언문풍월이라는 유사 한시나, 산문도 시도 아닌 산문시들이 어떻게 자유시 인식 및 창출과 관련을 맺는지 또한 이러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조명하고자 했다. 조잡하고 실패한 것으로 간주된 이 실험들 속에 192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출현한 자유시의 원천이 발견된다. 김억과 황석우, 주요한 등 자유시론자들의 시와 시론은 내적으로는 개화기의 시적 실험들을 계승하고 외적으로는 서구와 일본의 자유시론과 견주면서 탄생한 것들이다. 비록 이들이 탁월한 자유시를 창작하지는 못했으며 이 때문에 한국 현대시사의 위대한 시인들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으나 이들의 자유시 인식과 미숙한 성취는 그 자체로 자유시가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자유시는 근대시의 한 하위 장르가 아니라, 한국의 근대시가 성립하고 발전해 온 원천적 개념이자 그 전체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책머리에
서론 자유시라는 기호, 기원의 은폐 혹은 상징화
1. 근대 자유시의 담론적 난국
2. 자유시 형식의 문제
3. 근대문학으로서의 자유시 규정
4. 자유시의 은폐된 혹은 결여된 기원을 찾아서
제1장 교호하는 장, 소년과 청춘의 장
1. 편집자 최남선과 『소년』이라는 매체-심급
2. 계몽의 빈틈, 근대적 주체성의 장소
3. 『청춘』의 문학, 근대문학의 전도된 기원
제2장 개화기의 신시 의식과 시적 실험의 양상
1. 근대시의 인식과 언문풍월
2. 최남선의 신시에서의 율의 문제
3.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 최남선의 산문시
제3장 자유시 인식과 한국 근대시의 새로운 리듬
1. 한국과 일본에서의 자유시론의 성립
2. 김억의 번역론, 조선적 운율의 정초 가능성
3. 한국 근대시의 새로운 리듬론, 리듬 음성중심주의를 넘어서
결론 자유시라는 이념과 그 실천적 과정의 시사적 의미
박슬기 Park, Seulki
연세대학교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림대학교 인문학부 국어국문학 전공 교수를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한국 근대 자유시의 기원에 대해 탐색한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 율(律)의 이념』(소명출판, 2014)을 출간하였으며, 비평가로서의 작업을 모은 비평집 『누보 바로크』(민음사, 2017)와 한국시에서의 리듬을 이론적 측면에서 조명한 『리듬의 이론』(서강대 출판부, 2018)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