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미진 | 역자/편자 | |
|---|---|---|---|
| 발행일 | 2026-03-25 | ||
| ISBN | 979-11-7549-044-4 (93800) | ||
| 쪽수 | 372 | ||
| 판형 | 152*223 무선 | ||
| 가격 | 27,000원 | ||
설을 통하여 옛 사람들의 의식과 문예관을 재구하다
설은 논설류(論說類) 한문산문 문체의 일종이다. 설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 또한 다채롭다. 위(魏)나라 조식(曹植, 192~232)이 처음으로 설을 지은 뒤, 한동안 지어지지 않다가 당(唐)나라 한유(韓愈, 768~824)와 유종원(柳宗元, 773~819)부터 비로소 설이 활발하게 창작되기 시작했다. 한유의 「사설(師說)」은 논설문 형태의 글로, 스승을 섬기는 도가 사라지는 세태를 비판했고, 「잡설(雜說)」의 네 번째 기사는 우언의 서술 방식을 이용해 인재를 등용하려면 인재를 알아보는 뛰어난 위정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종원의 「포사자설(捕蛇者說)」은 문답식 기사(記事)를 통해 가혹한 부세로 백성이 고통을 받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설이 다양한 형태로 꾸준히 창작된 것은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설은 고려 후기부터 구한말까지 지어졌으며, 설명과 논증을 본령으로 삼으면서 구체적인 묘사와 서사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 특정 시기나 작가에 따라 새로운 양상을 보이는 작품들도 존재한다.
설의 발전 과정이 시사하는 바
제목에 '설(說)'이라는 이름이 붙은 한국의 한문산문은 주제와 목적, 구성과 제재 면에서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다기한 양상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한국 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본고에서 설에 주목하려는 이유다. 많은 작품이 설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도 이러한 설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이 두 가지 의문은 곧 한국 한문산문의 문체로서 설의 범위를 정하고 설을 작가별·시기별·제재별로 살펴보는 작업과, 문학 작품으로서 설을 읽는 재미와 그 효과를 고찰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설은 본래 성현의 이치를 자기 견해에 맞게 풀어 설명하는 문체였으나, 후대로 갈수록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하고 싶은 말을 설명하는 문체로 발전했다.
이와 같은 위상에도 불구하고 설 연구는 우언이나 서사가 등장하는 작품만 연구 대상이 되고, 한문산문으로서 설의 특징과 가치는 크게 주목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양한 방법으로 설을 조명한 연구들이 등장했고, 본고 또한 그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의 설 전체를 다루었다.
본고에서는 한국 설을 다른 문체와 비교하여 그 범주를 정하고, 그것의 구성을 설리와 기사의 조합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설 작가를 시기별로 개관하고, 제재별·시대별로 설의 창작 양상을 분석했으며, 끝으로 문학적으로 감상할 만한 작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결국 설의 발원과 그 발전을 살펴봄으로써 한문산문의 한 문체를 심도 있게 살펴보고, 아울러 설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설'이라는 기록의 이유
설은 조선 후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주제를 설명하는 문체로 창작되고 향유되었다. 따라서 다른 문체로 변용되기가 쉽다. 그런데 이는 모순으로 보일 수 있다. 문체란 글의 특징적 체재인데, 설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속성이 약하다면 한문산문의 일종으로서 설을 연구할 필요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이 '설'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됐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설은 창작 동기와 서술 방식이 후대로 갈수록 점차 다양해져 많은 스펙트럼을 가진 문체가 되었다. 즉, 설은 이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체다. 그러나 이 점을 설 연구의 한계라고 인식하기보다, 설의 큰 특징으로 인식하기로 했다. 한국 설 전반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실제 작품들을 비교하여 그 특징들을 하나씩 정립해 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본고에서는 실제 작품들을 비교하여 설과 인접 문체와의 연관성을 검토하고, 경계선을 정했다.
책머리에
제1장 설(說)을 바라보는 시선
제2장 설(說)의 개념과 범주
설의 연원과 정의
설의 외연과 범위
설의 구성과 조직
제3장 작가 및 시기별 설(說) 개관
작가별 설 개관
17세기 이후 설 개관
제4장 설(說)의 제재와 변모 양상
설의 제재 분류
17세기 이후 실존 인물을 제재로 한 설
17~18세기 지명 및 지역을 제재로 한 설
제5장 설(說)에 나타난 모티프의 활용과 변주
가정맹어호
의국론
부재지재
천리마와 백락
한유와 구양수의 「잡설」
제6장 한국 설(說) 작품 감상
강희맹, 「훈자오설」
홍성민, 「마환우설」·「무염판속설」
윤광계, 「역려설」
김창흡, 「낙치설」
권재운, 「반시아설」
최천익, 「예토자설」
김귀주, 「마사설」
제7장 설을 통해 본 한국 한문산문사
참고문헌
부록_한국 설 작품 목록
찾아보기
한국의 설은 이후 공백 기 없이 수많은 문인들에 의해서 창작되면서 논이나 해와 같은 논설류 산문뿐 아니라 전 기 증서 서발 등 다양한 한문산문과도 접점이 생겼다. 설리가 본령이 아닌 문체들과도 이러한 접점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설의 기능과 활용도가 매우 넓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25쪽)
이규보 의 「기명 설」은 불우하다 는 명성 을 얻은 오 세 재와의 대화 를 삽입 하여, 오세 재의 겸손함을 부각하고 헛된 소문만 듣고 남을 평가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완격탐신설」은 용감하고 강직한 최홍렬의 일화를 통해 탐욕스러운 신하 를 경계했다. 권근의 「김공경험 설」은 전 판사 김공이 소신껏 의술을 발휘해 백성을 치료한 사례를 제시하며, 사익을 위해 효과가 있는 처방을 알리지 않는 당대 의원을 비판한다. (129쪽)
한문학 연구에서 잡설을 본격적으로 다룬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아마도 '잡'이라는 글자가 내포하는 '잡박'하고 '번잡'한 특성 때문일 것이다. 잡설은 설의 하위 항으로서 창작되기도 했지만, 문집 체재의 분류 항목으로서 존재하기도 하며 다양한 정보를 집적한 필기잡록류의 저술에도 붙이던 명칭이었다. 광의와 협의의 의미로 광범위하게 사용된 잡설은 정의와 분류가 애매한 저술에 주로 붙이던 이름이었기에 자연히 연구대상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233쪽)
특히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는 실존했던 중인이나 하층민을 제재로 한 설이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다양한 계급의 실존 인물을 제재로 썼다는 것은 한국 설 전체에서 새로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인물의 행적을 재구하거나 단순한 흥미로 지었다기보다, 유가적 규범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한계로 볼 수 있다. 특정 대상이 설에 동원될 때는,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그 대상을 보조관념으로 활용하는 경우다. (321쪽)
이미진 李美珍, Lee Mi-jin
고려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문산문 說의 제재와 주제 구현 양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 「17세기 이후 실존 인물을 제재로 한 說의 특징」, 「雪峯 姜栢年의 表를 통해 본 조선시대 月課 창작의 일단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