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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시조 영역의 태동과 성장
저자 강혜정 역자/편자
발행일 2024-08-15
ISBN 979-11-5905-935-3 (93810)
쪽수 460
판형 152*223 무선
가격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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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으로서의 형식이 아닌 문학적 감동으로서의 형식

시조는 그 내용과 형식이 함께 번역되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번역자가 외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형시로서 시조의 형식은 서정적 전환과 완결이 효과적으로 수행되도록 구조적으로 보장해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시조가 오랜 역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오며 문학적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초, 중장에서 율격적 반복을 통해 정서를 고양시키다가 종장에서 전환시키며 완결 짓는 독특한 형식 덕분이다. 따라서 번역시에서도 이러한 반복과 전환의 미적 구조가 드러나야 한다.

시조를 영시의 형태로 번역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 세기가 넘는 동안 많은 번역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창출해 냈지만, 서구인들에게 잘 읽히면서 시조의 특성까지 잘 드러내는 번역은 아직 찾기 어렵다. 많은 번역자들이 6행시를 선호하여 마치 6행시가 영역 시조의 전범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조의 3장 6구를 바탕으로 한 6행시는 각 행의 길이가 적당하여 영시로 볼 때도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6행시에는 시조의 형식적 특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영어권 독자들에게 시조를 6행시로 오해하게 만들 소지도 있기에 만족스러운 형태라고 보기 어렵다.

영어와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이 다르며, 시조와 영시의 형식이 다르기에 완벽한 번역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역 시조의 형식을 마련하는 것은 시조 번역의 시작이며 핵심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한국문학의 영역, 그 출발점에 있는 시조

영역 시조가 추구해야 할 형식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저자는 초창기의 번역으로 눈을 돌린다. 이 시기 번역자들은 실험하듯이 다양한 형태의 영역 시조를 선보였고, 심지어 1930년대에는 신문에서 영역 시조의 형식을 공론화하며 더 나은 형식을 모색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성찰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해 과거 번역자들의 고민을 계승하지 못하였다. 과거보다 더 나은 번역을 위해서는 과거의 번역을 돌아보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오늘날 영역 시조의 전범으로 불리는 형식이 등장하기 이전, 영역 시조가 밟아온 궤적을 추적한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한국문학의 본격적인 번역이 1980년대, 즉 문예진흥원을 통한 정부의 지원 이후에서야 시작되었다고 본다. 20세기 초반에 영역된 자료가 풍성하지 못하고 그 빈약한 자료조차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888년 선교사로 입국한 제임스 게일은 1895년 Korean Repository에 4편의 영역 시조를 발표하였고, 이후 다양한 지면에 100여 편을 추가적으로 소개하였다.

소설과 달리 길이가 짧은 시조의 경우, 번역이 되더라도 단행본의 형태가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짤막한 형태의 영역 시조는 잡지의 권두시로 놓이기도 했고, 신문의 여백을 메우기 위해 간간이 삽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소설이나 역사서와 같은 산문 속에 삽입시로 존재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지면에 존재하는 영역 시조 중 19세기 말부터 1950년 무렵까지 영역된 작품이 무려 414편이며, 이 중 거듭 인용된 163편을 제외하면 신출작이 251편이나 된다. 이 수치는 추정되는 원작과의 비료를 통해 시조를 번역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작품들만 계수한 것으로 추후 새로운 자료가 보강될 수 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영역 시조의 역사는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100년 이상을 앞당겨야 한다.

급격한 서구화 속에서 전근대적 유산인 고시조가 영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하지만 19세기 말 서구와의 접촉 이후, 가장 먼저 서구사회에 번역 소개된 것은 고전문학이었으며, 20세기 초반까지도 한국문학의 영역은 고전문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에 진면목을 드러내는 시조

처음 시조 번역을 담당했던 집단은 모두 외국인 선교사였다. 19세기 말 타자에 의한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시조 번역 역시 외국인들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졌다. 당시 선교사들은 한국을 미개한 국가로 바라보았으며, 설령 그들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지녔더라도 서구 중심의 시각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따라서 그들의 번역에서 시조의 독특한 특성은 감춰졌고, 시조는 그들에게 익숙한 형식에 담겨 소개되었다. 그들은 시조와 영시의 차이를 목도하며 시조의 낯설음을 거세시키고 마치 그들의 문화 배경에서 탄생한 열매인 양 탈바꿈시켰다. 다만 게일의 경우, 국내에 40년을 체류하며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번역시의 형태 또한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초기에는 영시의 규범을 갖춘 형태로 번역하였고, 1920년대에 시조의 특성을 반영한 번역시를 선보였다.

1930년 무렵이 되자, 국내외의 한국인들이 시조 영역의 담당층으로 부상하였다. 이 무렵에는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선교사들은 더 이상 내한하지 않았다. 이 시기 번역자들은 모두 식민지 역사를 경험하며 문화 민족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시조를 번역하였다. 이들은 음악으로든 문학으로든 원작인 시조에 익숙하였기에 다수의 작품을 번역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선교사들이 남겨놓은 번역의 선례를 돌아보며 영역 시조의 형식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었다. 이들은 영역 시조를 신문이라는 공론의 장으로 가져와서 본격적인 논의를 이어갔으며, 이러한 모색의 결과, 20세기 후반기에는 6행시가 일반화되었다.

이처럼 20세기 전반기 고시조 영역은 1930년을 기점으로 번역 담당층이 바뀌면서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저자는 이 변화를 따라가며 분석할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고전문학을 바탕으로 한 한국문화가 참모습을 드러내며 다른 문화와 소통할 수 있길 소망한다.

서문

 

제1장/ 들어가며

1. 왜 고시조(古時調)의 영역(英譯)을 살펴야 하는가

2. 어떤 영역시조를 다룰 것인가

3. 영역시조에 대해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제2장/ 영역시조의 등장과 다양한 형식의 실험-1895~1920년대

1. 고시조 영역의 선구자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2. 의미와 감흥을 부각한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3. 심미적 가치에 주목한 조앤 그릭스비(Joan S. Grigsby)

4. 시조의 특수성을 보여준 마크 트롤로프(Mark N. Trollope)

 

제3장/ 시조 영역의 확대와 번역 모형의 정립-1930~1950년대 이전

1. 보편성과 특수성 간 균형을 추구한 강용흘(姜鏞訖)

2. 영역시조를 공론화한 변영로(卞榮魯)

3. 영역시조의 형식을 논한 정인섭(鄭寅燮)

4. 정형시로 구조화한 변영태(卞榮泰)

 

제4장/ 20세기 전기 고시조 영역의 특징과 의의

1. 20세기 전기 고시조 영역의 특징

2. 번역의 양상별 특징과 후대에 미친 영향

3. 시조 번역의 방향과 가능성

 

제5장/ 나가며

 

부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영문초록


강혜정 姜惠貞, Kang Hye-jung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에서 고전문학 전공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부터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한국 고전시가를 공부하면서, 조선 후기 가집의 편찬 양상과 20세기 초 정재 창사의 변화, 그리고 20세기 초 고전시가의 영어 번역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 왔다. 2014년 박사논문 「20세기 전반기 고시조 영역의 전개양상」으로 제1회 한민족어문학회 학술상을 받았고, 2021년 논문 「일제강점기, 전통 정재 창사의 계승과 변용-박순호 소장 이계향 홀기를 중심으로」로 제1회 한국시가학회 우수 논문상을 수상하였다. 『백제가요 정읍사 논총』(사단법인 정읍사문화제 제전위원회, 2021), 『선교사와 한국학』(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2022)에 공동저자로 참여하였고, Tale of Student Ju, Tale of Wi Gyeongcheon, Tale of Choe Cheok(Kong&Park, 2023)에 전임연구원으로 참여하였다. 현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문학적 관점에서 본 게일의 A History of the Korean People(『한국민족사』)’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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