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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차 문학나눔 선정(수필)

낙타의 눈
저자 서정 역자/편자
발행일 2022.11.30
ISBN 9791159057342
쪽수 320
판형 130*200 무선
가격 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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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지 않은 지역과 그곳의 음식과 사람들, 음악가와 화가들의 이야기……

낯선 세계에 발 들여놓기, 자기 안의 편견을 응시하며 경계 넘어서기……

“낯선 삶의 궤적이 그의 산문에 남기는 아름다운 사유의 흔적”


『낙타의 눈』은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풍경을 보여준다. 책의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낙타의 눈’. 흔히 ‘낙타’를 떠올리면 중동의 어느 사막 속 낙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동유럽의 낙타를 이야기한다. 러시아의 서쪽 끝과 남미, 그리고 노르웨이, 민스크와 페테르부르크, 카렐리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저자가 만난 풍경과 사람, 예술작품과 유적들의 이야기 속 저자의 아름다운 사유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추천사>

서정의 산문은 종횡무진 낯선 세계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벨라루스, 민스크, 페루,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마추픽추, 라파스, 우유니 소금사막, 메데인, 쿠바, 발람 섬, 헬싱키, 비푸리 도서관, 노르웨이……. 익숙지 않은 지역과 그곳의 음식과 사람들, 음악가와 화가들의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 모르는 영역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절로 겸손해진다. 서정의 산문을 읽는 일은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자 자기 안의 편견을 응시하며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작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그의 산문에 아름다운 사유의 흔적을 남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문득 낯선 도시의 이방인이 되어 따뜻한 음식과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밤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이토록 넓고 깊고 단단한 세계를 구축하기까지 그가 살아온 삶의 굽이와 곡절이 녹록치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잠시 숙연해진다. 오랫동안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이방인으로 살아온 작가가 터득한 삶의 지혜와 언어에 대한 감각,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물 안에서 살아가던 이들에게 우물 밖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고 마침내 우물 밖으로 나갈 용기를 갖게 한다.

 ― 이경수 (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


서정의 산문집 『낙타의 눈』은 여행의 기록이다. 여행은 관광과 다르다. 여행이 낯선 공간을 장소로 경험하면서 미처 몰랐던 ‘나’를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라면, 관광은 통과하는 공간을 소비하는 선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여행을 기록한다는 것은 여행자의 의식되지 못한/않은 욕망을 드러내는 행위이자 집단무의식에까지 사유의 추를 드리우는 모험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익숙한 장소감각을 뒤흔드는 풍경, 역사와 문화가 판이한 환경에서 성장한 타자들의 언어와 접속하면서 여행자-주체는 여행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를 발견한다. 여행의 순간을 존재 전환의 순간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벨라루스에서 시작해 러시아, 핀란드, 키프로스, 노르웨이, 볼리비아, 쿠바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저자가 만난 풍경들, 사람들, 그림들, 영화들, 유적들을 함께하면서 우리 또한 낯선 곳에서 낯선 ‘나’를 만나는 여행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정선태 (문학평론가, 국민대 교수)

이야기를 시작하며 _ 백야     3


1장 / 대포 소리와 불꽃놀이

낙타의 눈

니콜라이 카푸스틴의 세계

그라나트

칠월 삼일의 기록, 쥐로비치

카타리나와 함께

인간에 대한 예의


2장 / 노오란 꽃가루가 검은 원피스 위로

미아네 집

어떤 장례식

자장가

사드코

페트로프 보드킨의 정물화

아르히프 쿠인지의 아틀리에에서


3장 / 트라페자

키지

발람수도원

마슬레니차

헬레네 쉐르벡이 그린 북구의 얼굴들

알바 알토의 공간

비푸리도서관


4장 / 오늘만큼은 공중 도약을

쿠스코의 지진을 멈춘 검은 예수

잉카의 오래된 봉우리

계급과 고도高度 라파스

영원의 시각화 우유니

쿠스코의 크리스마스

불시착, 메데인


5장 / 남루한 폐허의 고향 신들

집에 얽힌 사연 소비에트 사회의 주거 공간과 영화 두 편

변혁의 불씨

혁명이 낳은 신산함

시가를 운동화와

불법이라던 곳 북키프로스에서 생긴 일


6장 / 자연의 비명

정말 아무렇지 않은 맛

코로나 시대 타자성의 체험

몸 없는 거인(Giant Without a Body)

냄새와 기억의 사회사

중고 시장

비외르비카의 람다, 그리고 뭉크


이야기를 끝내며 _ 다정히 마주 보고

“내 이름 뜻이 뭔지 알아? 듣고 나서 놀리지 않는다고 약속해.”


안나가 보타에게 이름 뜻을 물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매번 다른 화제로 말을 돌리곤 하더니 고향 마을에 다녀온 후 보타는 스스로 입을 열었다.


“응? 놀리기는. 뭔데?”

“보타고즈…… 어린 낙타의 눈이란 뜻인데…….”


카자흐스탄의 초원에서 어린 낙타의 눈만큼 예쁜 것은 없다고 한다. 까맣고 동그란, 반짝이는 눈. 가장 빛나는 아이가 되리라는 부모의 염원이 담긴, 시원적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이름. 탄생의 빛과 죽음의 통곡이 묻어나는 이름. 뜨겁게 머물다 차갑게 떠나가는 방랑자의 이름. 이제 다시 찾은 오래된 새 이름.

 ― 「낙타의 눈」 중에서


“예술이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 자체가 정치적 견해”라고 조지 오웰은 말한다. 그와 비슷하게 여행도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정치적 견해를 가지지 않고 여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어디로 갈까’에서부터 찾아간 그 장소에서 ‘무엇을 최우선으로 볼까’ 하는 문제까지. ‘어떤 사람에게 말을 걸까’ 하는 것에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돈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그러니까 ‘영화 보기’도 정치적이고 ‘골프 치기’나 ‘요가 하기’도 정치적이다.)

 ― 「계급과 고도(高度)」 중에서


‘다만’이라는 말을 자주 등장시키는 사람이 있다. 한 문장을 말하고 나면 다음 문장을 항시 ‘다만’으로 시작하는 그런 사람. 단정한 다음 그것이 단정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 늘 퇴로를 즉각 마련해 놓는 그런 사람. ‘물론’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앞 문장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 예외적 상황에 대해 부연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방점은 늘 앞 문장에 가서 찍힌다.

 ― 「변혁의 불씨」 중에서


바닷가에서 음료수를 나르는 일을 하던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럼 살래? 시가 안 필요해? (외국인이 구매할 수 있는 럼과 시가의 수량은 제한되어 있다.) 내가 고개를 저어도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돈은 필요 없어. 네가 지금 신고 있는 것 같은 슬리퍼 여분 더 없어? 운동화 같은 거라도. 지금 당장 없으면 나중에 우편으로 보내주는 방법도 있어. 아, 물자 부족의 나라여. 나는 베네수엘라에서 왔도다.

 ― 「시가를 운동화와」 중에서


그 운전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숙련자로 둔갑해 운전대 앞에 앉아 곤욕을 치렀지만, 목소리를 통해 짐작하기로 그 택시 회사 사장이라는 자는 자신의 편법을 뉘우치기는커녕 모든 잘못을 이 운전수에게 돌릴 판이었고, 이 운전자 자신도 러시아어로 욕을 내뱉던 호기는 다 어디로 내팽개치고 이제 막 자신의 밥줄을 쥔 깡패 두목의 처분만 바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건들거리는 어깨, 되는 대로 쏟아내는 거친 말, 진지하고 사려 깊다고는 결코 할 수 없는 눈을 가진 그였지만 하루하루를 되는 대로 살아온 자의 대담한 살가죽 뒤로 언뜻 비치는 겁먹은 표정에 결국 마음이 쓰이는 쪽은 우리였다.

 ― 「불법이라던 곳」 중에서

서정

서울에서 노문학과 영문학을, 모스크바에서 정치문화를 공부했다. 러시아, 그리스, 벨라루스, 베네수엘라, 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관심이 있다. 다양한 매체에 산문을 싣고 외국어로 된 글을 우리말로 옮긴다. 지은 책으로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옮긴 책으로 『행복한 장례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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