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정준영,김일환,조은진,강명숙,김필동,윤해동,이경숙,김근배,김정인,최은경,장신 | 역자/편자 | 정준영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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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11.20 | ||
ISBN | 9791159058141 | ||
쪽수 | 500 | ||
판형 | 152*223, 각양장 | ||
가격 | 38,000원 |
일제강점기의 고등교육, 경성제국대학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식민지에서 인정한 유일한 ‘대학’은 경성제국대학뿐이었다. ‘대학’에 가려면, 엄청난 경쟁을 뚫고 경성제국대학을 가던가, 일본 아니면 다른 해외 국가로 배움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등교육을 ‘대학’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식민지 조선에서도 또 다른 고등교육의 길은 존재했다. 전문학교가 그것이었다.
‘전문학교’는 정의상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라고 하겠다. 그중 ‘사립전문학교’는 일제강점기 내내 식민지의 위계적인 고등교육 구조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식민지조선에서 사립전문학교는 꼭 그런 실용적인 직업교육, 전문교육에 국한된, ‘열등한’ 기관만은 아니었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열망하며 이들 학교에 입학했고, 식민권력이 설립하고 운영했던 일본인 위주의 관립 고등교육과는 다른 이상과 열망을 여기서 꿈꾸었다. 일본인 주도의 아카데미즘 속에서 학술지식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던 조선인 지식인들에게도 사립전문학교는 그런 활동을 이어가게 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물론 사립전문학교가 후대의 신화처럼 마냥 ‘민족사학(民族私學)’으로서만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립전문학교가 식민권력의 자장(磁場)을 벗어나는 것은 용이하지 않았으며, 매 순간 ‘식민권력’과 ‘민족사학’ 사이에서 동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들이 직면한 엄연한 식민지의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 사립전문학교의 의미는 적지 않다. 해방 이후 이들을 모태로 유수의 사립대학교가 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남긴 인적, 제도적 유산이 한국 대학 전반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학, 사회학, 교육사 분야의 연구자들이 2019년부터 진행한 공동연구의 성과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일관된 체계나 관점을 미리 정하지 않았으며, 모든 사립전문학교를 다루지도 못했다. 사실 현재 우리 학계의 상황에서 식민지 고등교육 연구, 특히 사립전문학교에 관한 고찰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현재 우리 학계에 이 문제에 관해 도달한 지점을 보여주며, 사립전문학교의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 그것이 남긴 인적 유산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실마리를 던져보려는 시도라고 하겠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시야를 넓혀서, 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가 한국 대학이 출발했던 ‘또 하나의 기원’이었다는 것, 따라서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경험을 톺아보는 것이야말로 한국 대학의 역사를 읽는 새로운 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를 통해 본 한국 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 - 경성제국대학이 아닌 사립전문학교에서 출발한 한국 대학?
이 책은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를 한국 대학의 ‘또 다른 기원’으로서 주목하면서, 그와 관련된 전모를 세밀하게 검토하는 연구성과들을 묶은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식민지기 조선에는 식민권력이 직접 세운 경성제국대학 이외에 어떤 대학의 설립도 허락되지 않았다.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고등교육을 지향했던 여러 집단은 끊임없이 ‘대학’의 설립을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사립’의 ‘전문학교’ 설립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대학체제의 역사적 기원을 다루는 연구들이 1945년 해방 이후의 대학을 주를 다루던가, 그 이전이라 하더라도 경성제국대학 정도를 분석하는 데 그쳤던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는 미처 ‘대학’이 되지 못한 미발(未發)의 기관, 그 이상이었다. 이는 비단 사립전문학교가 오늘날 유수의 사립대학교의 전신(前身) 기관이었다는 점만을 지적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경성제국대학은 그 운영에서 한국인이 철저히 배제된 기관에 가까웠다. 제국대학을 나온 ‘조센진’은 많았어도 제국대학에서 가르치고 학사를 운영해본 한국인은 전무했다. 결국 해방 이후 한국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대학을 구상하고 운영하면서 참고했던 경험은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를 세우고, 가르치고, 운영하며 쌓아온 것들에 가까웠다. 저자들이 “한국의 대학은 경성제국대학이 아니라 차라리 사립전문학교의 후예는 아니었을까” 하는 다소 도발적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인, 교육경험을 통해 본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현실
식민지 조선의 사립전문학교는 여러모로 독특한 조직이었다. 우선 대만이나 만주 등 제국 일본의 지배권역 어디에도 조선만큼 사립전문학교의 설립과 운영이 활발했던 곳은 없었다. 사립전문학교는 분명 식민지 고등교육체제 내부에 있었으나, 조선인 학생만을 받았으며, 조선어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사립전문학교가 일본인 중심의 경성제국대학이나 관립전문학교에 맞섰던 ‘민족사학’으로 드높여진 것도 이를 배경으로 한다. 저자들은 각각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인, 전문교육 경험의 측면에서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독특한 경험과 그것이 해방 이후 한국 대학에 남긴 유산들을 세밀하게 검토한다.
제1부에 수록된 연구들은 식민지 교육체제에 편입되어 있지만, 그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던 사립전문학교의 모순적 존재 방식을 다룬다. 이를 통해 때로는 식민권력에 저항하며 독자적 교육을 지향했으나, 빈번히 그에 순응, 포섭되기도 하고, 심지어 교세 확장을 명분으로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던 사립전문학교의 복합성이 드러난다. 제1장에서 정준영은 식민지 전문학교체제의 특징을 개괄하는 한편, 중앙불교전문학교의 사례를 통해 ‘민족사학’(民族私學)의 신화를 해부한다. 2장에서 김일환은 보성전문학교 사례를 통해 그리고 재단법인이 사립대학 설립․경영의 주체가 되는 한국 사립대학제도의 기원을 확인하는 한편, 식민지 사회에서 사립학교재단이 공공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의 의미를 규명한다. 3장에서 조은진은 주로 관립전문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전문학교의 입학자격과 내선공학(內鮮共學) 문제를 다룬다. 4장에서 강명숙은 1938년 이후 전시체제하의 조선총독부의 전문학교 정책을 분석하는 한편, 전문학교의 교육이 전쟁 준비의 와중에 형해화되는 양상을 분석한다.
제2부에서는 식민지에서 지식인이 된다는 것, 학문을 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사립전문학교라는 렌즈를 통해 보여준다. 사립전문학교는 끝내 ‘대학’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식민지 사회에서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을 위한” 학문하기가 제도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거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았다. 5장에서 김필동은 사립전문학교가 조선인 사회학자가 조선인 학생을 대상으로 조선어로 사회학을 교육하는 장소가 될 수 있었음을 방대한 사료를 통해 세밀하게 보여준다. 6장에서 윤해동은 전통적 지식체계이자 종교였던 유교가 전문학교에서 교육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체계로 재편되는 양상을 명륜학원, 명륜전문학교로 이어지는 유교 고등교육기관을 통해 규명한다. 7장에서 이경숙은 숭실전문학교의 사례로 교수채용의 경로와 교수진의 구성, 이를 통해 구성된 지식인 네트워크의 특징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제3부에서는 식민지 전문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따져본다. 사립전문학교에서 교육되었던 전문적 지식은 제국대학에 비해 낮은 위상이었다고 하더라도 많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접근 가능했던 최고 수준의 지식이었다. 여기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해방 이후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 대학의 초기 형성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열쇠다. 8장에서 김근배는 숭실전문학교의 이학과와 농학과를 통해 배출된 조선인 과학기술자들의 행보를 규명한다. 9장에서 김정인은 식민지 여성교육의 지향점 중 하나가 ‘교사 양성’이었던 것이 의미했던 바를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10장에서 최은경은 경성여자전문학교의 설립을 주도했던 – 하지만 완성할 수는 없었던 – 4인의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 출신 여의사들의 활동을 통해 식민지에서 여자 의사로 양성되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질문한다. 마지막으로 11장에서 장신은 해방 이후 한국 의학교육이 일본식도 아니고 미국식도 아닌, 독특한 형식의 의예과 형태로 제도화된 것의 배경을 추적하고 있다.
왜 지금, 사립전문학교인가? ‘대학 위기’의 시대에 읽는 사립전문학교의 역사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식민지기 사립전문학교의 역사적 경험이 해방 이후 한국 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사립전문학교의 역사를 다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사실 한국 대학의 ‘위기론’이 범람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게다가 산적한 위기에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그 방법론을 찾는 것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고등교육이 지나치게 사립대학에 의존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사립대학은 이미 대학기관 전체의 80%, 재적 대학생 수의 약 70%를 차지한다. 해방 이래 국공립 대학이 사립대학의 우위에 섰던 적은 없었으며, 갈수록 지방 국공립대학과 수도권 사립대학 사이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대학은 누구라도 그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 공물(公物)처럼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사적으로 소유되고 운영되며 관리되는 사물(私物)로서 존재한다. 한국 대학의 대부분이 사립대학이라는 사실은 공적 개입을 통해 대학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원천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 연원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한국 사립대학의 역사는 너무나 쉽게 ‘민족사학’의 신화를 통해 윤색되거나, 일부 사립학교 교주(校主)의 전횡을 들어 ‘후진성’과 ‘퇴행성’의 역사로 단정되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말 필요한 것은 한국 사립대학체제를 구성하는 이질적 요소들의 다양한 유래와 원천을 추적하고, 그로 말미암은 효과를 세밀하게 이해하는 작업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본 저작이 한국 사립대학 문제의 기원을 ‘사립전문학교’를 통해 추적한 것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보다 발본적으로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서문_한국대학의 출발, 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를 통해 다시 생각하기
제1부
민족사학(民族私學)이라는 신화, 식민지 전문학교라는 현실
정준영 | 식민지 전문학교체제 혹은 ‘민족사학’의 이면(裏面) - 중앙불교전문학교의 사례
김일환 | 사립전문학교의 재단법인화와 공공성 - 보성전문학교의 사례
조은진 | 관립전문학교의 학제와 내선공학(內鮮共學)
강명숙 | 전쟁과 식민지 전문학교 - 1938년 이후의 전문학교 정책
제2부
전문학교에서 학문하기와 식민지에서 지식인 되기
김필동 | 일제하 전문학교와 사회학 교육
윤해동 | 식민지 시기 유교와 고등교육 - 명륜전문학교의 사례
이경숙 | 전문학교 교수, 식민지 지식인들의 거처 - 숭실전문학교의 사례
제3부
전문학교에서 배운다는 것 - 식민지 현실과 길항하는 전문지(專門知)
김근배 | 숭실전문학교의 과학기술자들 - 이학과, 농학과, 그리고 졸업생들
김정인 | 교사양성, 식민지 여성교육의 지향점 -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사례
최은경 | 일제강점기의 조선 여의사들 -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 졸업부터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창설까지
장신 | 한국형 의예과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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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민족사학’은 비록 식민지 교육체제의 ‘체제 내 교육기관’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식민지관학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들이 조선인의 고등교육을 사실상 도맡게 된 것도 당연했다. 식민당국의 입장에서는 이들 전문학교가 식민체제에 순응하는 한에서는 굳이 조선인 사회의 반감을 살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립전문학교가 ‘민족사학’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식민체제에 순응하는 한도 내에서였던 것이다.
(1장, 33쪽)
재단법인 설립 이후 보성전문학교의 역사는 공기(公器)로서의 사립학교 재단이 어떻게 운영도어야 하는지, 특히 사적 재산을 출연한 기부자의 영향력 속에서 재단의 공적 운영을 어떻게 제도화할지의 문제를 둘러싼 지속적 논쟁과 갈등을 수반했다. 물론 학교 경비가 관(官)으로부터 조달되지 않은 사립학교에서, 더구나 자산 출연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강한 재단법인 조직에서 기부자의 영향력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힘은 1920년대 재단구조에서 평의원회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이나, 학교 관계자의 개입, 여론의 기대와 같은 또 다른 힘과 지속적인 긴장 관계 속에 놓여 있었다.
(2장, 86쪽)
처음 공학을 실시하던 당시에는 학무당국에서는 ‘전문학교는 조선인 자제의 편익’을 위한 곳이며, ‘편의상 일본인 학생을 수용하기로 하나 배정되는 입학정원은 조선인 학생의 3분의 1 이내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하였으나, 실제로 나타난 양상은 오히려 조선인 입학생이 일본인 입학생의 3분의 1 정도에 그치는 수준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조선인 사이에서는 ‘전문, 대학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하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조선인 학생들에게 ‘전문학교 입학 지옥’이라는 공포스러운 시련을 가져오게 되었다.
(3장, 136쪽)
기형적 전문교육 기회 제공으로 인해 주로 문과계 사립학교 학생이었던 식민지 조선인 학생들은 지원병으로 전장에 나가거나 생산현장으로 동원되었지만 실업계 관립전문학교, 의학계열, 교원양성계열의 일본인 학생들에게 전문교육 기회는 징집 면제와 유예의 통로로 활용될 수 있었다. 식민지 조선의 전문학교에서 전시기에 이루어진 일본학 교과의 도입과 입학정원확대, 교(敎)와 연성을 강조하는 ‘일본적’ 교학체제 정립은 일본인에게는 양지에 설 기회를, 조선인에게는 음지로 내몰리는 위기를 늘리는 이율배반의 장치로 기능하였다.
(4장, 183쪽)
이처럼 조선인 또는 외국인 선교사가 설립한 대부분의 전문학교에서는 사회학 강의가 개설되었다. 그러나 관립전문학교와 일본계 사립전문학교에서는 사회학 강의가 개설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것은 조선인 또는 선교사가 설립한 전문학교는 원래 일반 대학을 지향했던 데다가, 사회학을 통해 세계와 사회, 나아가 민족에 대한 문제의식을 함양하려는 교육 목적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5장, 251쪽)
이런 상황에서 유교 전문 고등교육기관 설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었는데, 이런 움직임에 불을 붙인 것은 황도유학의 대두와 전시체제 구축이라는 체제적 요구였다. 1942년 승격된 명륜전문학교는 유학, 법률, 경제의 3개 고등학과로 편성되었다. 구체적인 교육과정이나 교직원 구성 등은 아직 미상이다. 하지만 전쟁이 깊어감에 따라 1944년 학교는 폐교되었고 새로 명륜연성소가 설치되었다. 이로써 졸업생 한 명 내지 못한 채 식민지의 유교 전문학교는 짧은 운명을 마감하고 말았다.
(6장, 304쪽)
식민지 지식인들의 거처는 사립전문학교와 중등학교, 신문사 혹은 언제 감시에 노출될지 모를 다양한 형태의 사회단체 그 사이 어디였다. 그들은 어느 한 곳에 정주한다기보다 그 어디나 있었다. 특히 식민권력이 정해준 전문학교 교수의 일이란 고등한 학술기예를 ‘교수’하는데 그치지만 식민지 전문학교의 교수들은 박치우의 표현대로 ‘아카데믹’에 머물지 않고 ‘오늘’ ‘이 땅에서’ 새로운 지식의 장을 만들어 공적 연구활동을 부지런히 모색하였다.
(7장, 316쪽)
이 시기에 숭실전문이 과학기술에서 행한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학과로 이학과와 농학과가 설치 운영된 덕분에 과학기술을 전공한 조선인 졸업생이 다수 배출되었다. 또한 고등교육을 받은 조선인 과학기술자들이 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이들 상당수에게 교육연구 기회가 주어졌다. 이들 중에는 두드러진 과학기술자로 성장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이렇게 숭실전문은 문학계 분야 못지않게 이학계 분야도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었다.
(8장, 372-373쪽)
이화여전은 여성에게 한정된 직업으로 인식된 유치원 교사, 학교는 물론 선교 활동을 위해 필요한 음악 교사, 여성의 가정 내 역할을 근대식으로 가르치는 가사 교사, 서구적 교양인으로서의 영어 교사를 키워냈다 이화여전이 배출한 졸업생들은 전국의 유치원과 사립여자고등보통학교 등에서 교사로 활약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극히 제한되었던 시절, 교사로 살아가던 이화여전 출신 졸업생들은 스스로를 여성 지식인으로 자부했고 사회도 그렇게 대우했다. 또한 여성고등교육의 실현과 졸업생의 교사로서의 진출은 여성들이 사회 진출의 발판으로서 고등교육을 선택하게 만드는 계기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갔다.
(9장, 432-433쪽)
식민지 조선에서 여자 의사로 양성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서양의학을 익힐 수 있는 의사양성기관 숫자도 미미하였다. 특히 여성으로서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은 유학의 길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영숙을 시작으로 해방 직전까지 100명에 가까운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고된 일’이라는 시선을 마다하지 않고 도쿄여의전을 비롯한 일본 의사 유학을 택하였다. 신여성이자 여류명사, 새로운 여성 지식인이라는 당대의 주목을 받았던 것 한편으로 시대적으로 부여되었던 여성운동, 여성위생운동, 여성의학운동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였다.
(10장, 462쪽)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는 미군정은 왜 한국에서 4+4의 8년제가 아닌 2+4의 6년제로 결정했으며, 다른 하나는 한국은 위이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유형인데도 왜 의과대학에 의예과를 두지 않고 이과대학(자연과학대학)에 두었는가 하는 점이다. 곧 미국식도 일본식도 아닌 한국형 의예과의 기원은 무엇인가다. (중략) 한국형 의예과의 기원 중 첫 번째 의문은 해방 이전 한국 의학교육의 특수성, 달리 말해 식민지 조선인이 체험했던 일본의 의학교육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의문은 해방 이후 단일 단과대학에서 종합대학의 한 학부로 된 의과대학의 상황에서 찾아야 한다.
(11장, 466-467쪽)
정준영 鄭駿永, Jung Joon-Young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교토대학 외국인 공동연구자,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역사사회학과 지식사회사가 전공이며, 한국에서 근대학문이 어떻게 제도화된 형태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피의 인종주의와 식민지의학」, 「제국 일본의 도서관체제와 경성제대 도서관」, 「한국전쟁과 냉전의 사회과학자들」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연구』, 공저로는 『식민권력과 근대지식』, 『팬데믹 너머 대학의 미래를 묻다』 등이 있다.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한국 대학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김일환 金日煥, Kim Il-Hwan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인문사회교양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한국 사립대학체제의 형성과 재단법인의 정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절멸과 갱생 사이-형제복지원의 사회학』(공저)이, 논문으로는 「‘부재지주’, ‘영리기업’에서 ‘기생적 존재’로-1950년대 문교재단의 경제적 실천과 한국 사립대학」 등이 있다.
조은진 趙慇珍, Cho Eun-Jin
서울대학교 역사학부 강사. 근대 식민지기 관립전문학교의 형성에 대한 연구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식민지기 전문학교 및 근현대 한국의 고등교육과 관련하여 연구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1920년대 관립전문학교 대학 승격 운동의 추이와 성격」이 있다.
강명숙 姜明淑, Kang Myung-Sook
배재대학교 교직부 교수. 교육학 박사. 한국근현대교육사 전공자로 대학에서 교육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논저는 『대학과 대학생의 시대』(서해문집, 2018), 『사립학교의 기원』(학이시습, 2015) 등이 있고 일제 침탈사 자료총서 가운데 『교육정책 (1), (2)』(동북아역사재단, 2021)를 공동 편역하였다.
김필동 金弼東, Kim Pil-Dong
충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사회 신분, 사회 조직, 마을연구, 비교사회학, 고등교육, 사회학사 등의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왔다. 주요 저서로 『한국사회조직사연구』(1992), 『한국사회사의 이해』(공편저, 1995), 『차별과 연대』(1998), 『충남지역 마을연구-비교와 종합』(편저, 2011) 등이 있고, 마을연구단의 공동연구원들과 함께 「충남지역 마을지총서」(전 14권)를 펴낸 바 있다. 최근에는 주로 한국사회학사에 관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윤해동 尹海東, Yun Hae-Dong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현재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이다. 한국사와 동아시아사를 대상으로 한 저작으로 『식민지의 회색지대』(역사비평사, 2003), 『지배와 자치』(역사비평사, 2006), 『植民地がつくった近代』(三元社, 2017), 『동아시아사로 가는 길』(책과함께, 2018), 『식민국가와 대칭국가』(소명출판, 2022) 등이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평화와 생태를 중심으로 한 융합인문학 연구이다.
이경숙 李暻叔, Lee Kyung-Sook
경북대학교 교육학과 강사로, 근현대 교육, 지역,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시험국민의 탄생』(2017), 「모범인간의 탄생과 유통-일제시대 학적부 분석」(2007) 등을 쓰고, 『프레이리의 교사론』(공역, 2000), 『교사는 지성인이다』(2001) 등을 번역하였다.
김근배 金根培, Kim Geun-Bae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 과학기술사 전공자로 현대 과학기술의 사회사와 남북한 과학기술 비교연구에 관심이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 과학기술혁명의 구조』, 『황우석 신화와 대한민국 과학』, 『한국 근대 과학기술인력의 출현』, 『근현대 한국사회의 과학』(공편) 등이 있다.
김정인 金正仁, Kim Jeong-In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이자 전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이다. 주요 저서는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2015, 책과함께),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2017, +책과함께), 『오늘과 마주한 3·1운동』(2019, 책과함께), 『역사전쟁, 과거를 해석하는 싸움』(2016, 책세상), 『대학과 권력』(2018, 휴머니스트)가 있다.
최은경 崔銀暻, Choi Eun-Kyung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문의학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연구교수,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선임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의료의 역사, 윤리, 인문학에 관하여 쓰고 가르친다. 지은 책으로 『감염병과 인문학』(공저),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공저) 등이 있다.
장신 張信, Jang Shin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서 「1930·40년대 조선총독부의 사상전향정책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원대 한국교육박물관 한국근대교육사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을 거쳐 2020년 9월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 근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최근의 관심은 한국 근대의 요시찰 제도 등 국가의 개인 감시와 통제, 그리고 한국 근현대 교육사를 제도 중심으로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