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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3
저자 황정견 역자/편자 박종훈, 박민정, 이관성
발행일 2024-08-15
ISBN 979-11-5905-917-9 (94820)
쪽수 464
판형 152*223 양장
가격 3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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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후대까지 영향을 미친 황정견의 시론

황정견은 시를 지을 때 시의 표현을 다지고 시법을 엄격히 지켜 한 마디 한 글자도 가벼이 쓰지 않았다. 황정견은 수많은 대가들을 본받으려고 했지만, 그중에서도 두보(杜甫)를 가장 존중했다. 황정견은 두보 시의 예술적인 성취나 사회시(社會詩) 같은 내용 측면에서의 계승보다는, 엄정한 시율과 교묘(巧妙)한 표현 등 시의 형식적 측면을 본받으려 했다. 황정견 시론의 요점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시의 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 환골법(換骨法)과 탈태법(奪胎法)이다. 이에 대해 황정견은 “시의 의미는 무궁한데 사람의 재주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재주로 무궁한 의미를 좇으려고 하니, 비록 도잠과 두보라고 하더라도 공교롭기 어렵다. 원시의 의미를 바꾸지 않고 그 시어를 짓는 것을 환골법이라고 하고, 원시의 의미를 본떠서 형용하는 것을 탈태법이라고 한다[詩意無窮, 而人才有限. 以有限之才, 追無窮之意, 雖淵明少陵, 不得工也. 不易其意而造其語, 謂之換骨法. 規摹其意而形容之, 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 한 바 있다. 이로 보건대, 황정견이 언급한 환골법은 의경을 유사하게 하면서 어휘만 조금 바꾼 것을 일컫고, 탈태법은 의경을 변형하여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진부한 표현이나 속된 말을 배척하고 특이한 말과 기이한 표현을 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술어를 중심으로 평이한 글자를 기이하게 단련(鍛鍊)시켰고 조자(助字)의 사용에 힘을 특히 기울였으며, 매우 궁벽하고 어려운 글자를 사용했고 기이한 풍격을 형성하기 위해 전대(前代) 시에서 잘 쓰지 않던 비속(非俗)한 표현을 시어로 구사하여 참신한 의경을 만들어내곤 했다. 

셋째, 전고(典故)의 정밀한 사용을 추구했다. 이는 황정견 시론의 “한 글자도 유래가 없는 것은 없다[無一字無來處]”와 연관된다. 강서시파는 독서를 중시했는데, 이것은 구법의 차원에서 전대 시의 장점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는 전고의 교묘(巧妙)한 활용이라는 결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인의 전고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에 맞게 변용했다.

이와 같은 황정견의 창작법에 대해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황정견 시의 파급력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황정견을 중심으로 한 강서시파가 당대(當代)는 물론 후대 및 조선의 문인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황정견의 시를 세밀히 소개하다

황정견은 현존하는 가장 공신력 있는 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 따르면 총 1,916수의 시 작품을 남겼다. 북경(北京)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2007년에 출간한 전 5책의 『황정견시집주』에는 총 1,260제(題) 1,916수(首)의 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황정견 작품의 구절 및 시어(詩語) 하나하나가 갖는 전례와 창작배경 그리고 구절의 의미 및 전체적인 의미를 상세하게 주석을 통해 소개해, 황정견 작품의 세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에서는 『황정견시집주』에 소개된 모든 주석을 꼼꼼하게 번역하였으며, 주석의 내용을 시의 자구(字句) 해석에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황정견 시가 워낙 난해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주석이 시 본문과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이러한 경우에도 연결 관계를 최대한 찾아 시 본문 번역에 녹여내고자 노력하였다.

황정견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황정견 시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실상의 일면만을 위주로 하거나 혹은 피상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상세한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황정견시집주』에 대한 완역은, 부족하나마 후학들에게 황정견 시를 이해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시집주

산곡시집주권제팔(山谷詩集注卷第八)

1. 왕병지가 보내준 옥판지에 차운하다(次韻王炳之惠玉版紙)

2. 왕병지가 석향정을 준 것에 사례하다(謝王炳之惠石香鼎)

3. 유통수가 왕문통에게 보낸 시에 차운하다(次韻柳通叟寄王文通)

4. 장천각을 전송하며 등자 운으로 짓다(送張天覺得登字)

5. 서문장이 도성문에 이르러 보낸 시에 차운하다. 2수(次韻徐文將至國門見寄. 二首)

6. 박사 왕양휴가 밀운룡을 갈아 보내니 동료 열세 명과 마시면서 장난삼아 짓다(博士王揚休碾密雲龍同事十三人飮之戲作)

7. 황면중이 달인 쌍정차를 찾기에 답하면서 아울러 양휴에게 편지삼아 보내다(答黃冕仲索煎雙井并簡揚休)

8. 다시 면중에게 답하다(再答冕仲)

9. 장난스레 진원여에게 답하다(戲答陳元輿)

10. 원여에게 다시 답하다(再答元輿)

11. 면중의 진사 시권에 차운하다(次韻冕仲考進士試卷)

12. 왕성미의 세 아들이 광문생에 들어가다(王聖美三子補中廣文生)

13. 유경숙의 「문조하첩보기제장」에 차운하다. 4수(次韻游景叔聞洮河捷報寄諸將. 四首)

14. 유경숙의 「월보삼첩」에 화답하다(和游景叔月報三捷)

15. 최백이가 잔치 자리에서 지어서 인하여 떠나는 이에게 준 시에 차운하다. 2수(次韻崔伯易席上所賦因以贈行. 二首)16. 자첨의 운자와 같은 운자로 단련사(團練使) 조백충에 화답하다(同子瞻韻和趙伯充團練)

17. 조백충이 글쓰기를 배우지 말라고 권한 것에 장난스레 답하며 아울러 석자택의 조롱에 변명하다(戲答趙伯充勸莫學書及爲席子澤解嘲)

18. 사경숙이 겨울 죽순과 옹 땅의 연유와 향수리 세 물건을 보내준 것에 사례하다(景叔惠冬笋雍酥水梨三物)

19. 다시 경숙에게 답하다(再答景叔)

20. 황기복의 시에 차운하여 보내준 시에 화답하다(次韻㡬復和答所寄)

21. 숙부 이중에게 올리다. 3수(寄上叔父夷仲. 三首)

 

산곡시집주권제구(山谷詩集注卷第九)

1. 고시국에서 손원충 박사와 대숲 사이에서 창을 마주하고 있다가 밤에 원충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니 성조가 비장하였다. 이에 「죽지사」 세 장을 지어 화답하였다(考試局與孫元忠博士竹間對窗, 夜聞元忠誦書, 聲調悲壯. 戲作竹枝歌三章, 和之)

2. 백시 이공린이 예부시원에서 말 그리는 것을 보고 짓다(觀伯時畫馬禮部試院作)

3. 백시가 그린 가려운 곳 긁어대는 호랑이 그림에 쓰다(題伯時畫揩痒虎)

4. 백시가 그린 물고기를 바라보는 승려 그림에 쓰다(題伯時畫觀魚僧)

5. 백시가 그린 흙먼지 속에 넘어진 말 그림에 쓰다(題伯時畫頓塵馬)

6. 백시가 그린 엄자릉이 여울에서 낚시하는 그림에 쓰다(題伯時畫嚴子陵釣灘)

7. 백시가 그린 소나무 아래의 도연명의 그림에 쓰다(題伯時畫松下淵明)

8. 예부시원을 나오니 왕 재원이 고맙게도 매화 세 종을 보내왔는데 모두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이에 장난스레 화답하였다. 3수(出禮部試院, 王才元惠梅花三種, 皆妙絶, 戲答. 三首)

9. 왕립지가 보낸 시를 받고서 매화꽃이 이미 다 졌다고 알려왔기에 그 운자에 차운하여 장난스레 답하다(王立之承奉詩, 報梅花已落盡, 次韻戲答)

10. 요화를 달라고 요청하다. 2수(乞姚花. 二首)

11. 왕중지 소감이 요화를 읊은 것을 본떠서 그 운자를 사용하여 짓다. 4수(效王仲至少監詠姚花, 用其韻. 四首)

12. 두가보에게 보내다. 2수(寄杜家父. 二首)

13. 왕재원 사인이 모란을 주면서 시를 요구하다(王才元舍人許牡丹求詩)

14. 왕사인에 상원홍을 꺾어서 보내준 것에 사례하다(謝王舍人翦狀元紅)

15. 진계상이 황주 산중의 연리송을 보내준 것에 장난스레 답하다. 2수(戲答陳季常寄黃州山中連理松枝. 二首)

16. 자첨이 이치를 전송하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子瞻送李豸)

17. 송 무종이 3월 14일 서지에 행차하니 도성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였다. 한림공도 나가서 놀았는데, 그 때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宋楙宗三月十四日到西池, 都人盛觀, 翰林公出遨)

18. 한 헌숙공 만시. 3수(韓獻肅公挽詞. 三首)

19. 자첨이 붉은 혁대를 왕선의에게 보내면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子瞻以紅帶寄王宣義)

20. 송종유의 「적완가」를 듣고서(聽宋宗儒摘阮歌)

21. 문하후성에서 포지사로 돌아와 누워 노홍초당도를 구경하다(自門下後省歸臥酺池寺, 觀盧鴻草堂圖)

22. 자첨이 포지사 벽에 작은 산과 마른 나무를 그린 그림에 쓰다. 2수(題子瞻 寺壁小山枯木. 二首)

23. 자첨이 그린 메마른 나무 그림에 쓰다(題子瞻枯木)

24. 자첨의 「백시가 그린 호두적에 장난스레 글을 쓰다」란 작품에 화답하다(和子瞻戲書伯時畫好頭赤)

25. 태초 연간에 잡은 대완의 호랑이 등뼈의 천마를 백시가 그린 것에 대해 읊다(詠伯時畫太初所獲大宛虎脊天馬圖)

26. 풍봉세가 잡은 대완의 상룡을 백시가 그린 것에 대해 읊다(詠伯時畫馮奉世所獲大宛象龍圖)

27. 죽석과 목우를 그린 그림에 쓰다【서문을 함께 싣다】 (題竹石牧牛【并引】)

28. 백시의 천육표기도에 쓰다. 2수(題伯時天育驃騎圖. 二首)

29. 이모 이부인의 묵죽. 2수(姨母李夫人墨竹. 二首)

30. 자첨과 자유가 「게적도」에 쓴 시에 차운하다. 2수(次韻子瞻子由題憩寂圖. 二首)

 

산곡시집주권제십(山谷詩集注卷第十)

1. 조자방의 「잡언」에 차운하여 답하다(次韻答曹子方雜言)

2. 자첨이 왕자립에게 화답한 「풍우패서옥유감」이란 작품에 차운하다(次韻子瞻和王子立風雨敗書屋有感)

3. 소덕을 희롱하며(嘲小德)

4. 장 비감이 양을 보내준 것에 장난삼아 답하다(戲答張秘監饋羊)

5. 왕정국이 문에 쓴 두 절구에 장난삼아 답하다(戲答王定國題門兩絶句)

6. 서릉과 유신의 만체를 장난삼아 본 떠 ‘청인의 원망’을 짓다. 3수(淸人怨戲效徐庾慢體. 三首)

7. 장인 손신노에게 바치다. 2수(呈外舅孫莘老. 二首)

8. 천단의 영수장을 신노에게 보내다(以天壇靈壽杖送莘老)

9. 유청노 도인의 「한야」에 장난삼아 답하다. 3수(戲答俞淸老道人寒夜. 三首)

10. 비서성에서 겨울 밤 숙직하며 이덕소를 그리며(祕書省冬夜宿直寄懷李徳素)

11. 추워진 뒤에야 송백을 안다(歲寒知松柏)

12. 동관에서 보지 못한 책을 읽다(東觀讀未見書)

13. 갈옷을 입고 주옥을 품었다(被褐懷珠玉)

14. 변방 관문을 두들겨 와서 공물을 바치다(欵塞來享)

15. 형돈부를 그리며(憶邢惇夫)

16. 진소장과 조적도의 증답시에 차운하다(次韻秦少章晁適道贈答詩)

17. 진소장이 술을 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차운하여 답하다 (次韻答秦少章乞酒)

 

산곡시집주권제십일(山谷詩集注卷第十一)

1. 이헌시. 6수【서문을 붙이다】(頤軒詩. 六首【幷序】)

2. 사찰에서 자고 일어나다. 2수(寺齋睡起. 二首)

3. 꿈을 기록하다(記夢)

4. 원명과 함께 홍복사를 지나다가 장난스레 쓰다(同元明, 過洪福寺, 戲題)

5. 조심도가 소매를 구하기에 장난스레 답하다. 2수(戲答晁深道乞消梅. 二首)

6. 매화를 조심도에게 보내며 장난스레 지어 보내다. 2수(以梅餽晁深道戲贈. 二首)

7. 손자실이 소장에게 쓴 작품에 차운하여 적재에게 부치다 (次韻孫子實題少章, 寄寂齋)

8. 손자실에 차운하여 소유에게 보내다【다른 판본에는 ‘용기적재운’이라고 되어 있다. 〇 진관의 자는 소유이고 고우의 군인이다】(次韻孫子實, 寄少游【一本云, 用寄寂齋韻. 〇 秦觀, 字少游, 高郵軍人】)

9. 장난스레 진소유의 벽의 쓰다(戲書秦少游壁)

10. 진소의에게 보내다(贈秦少儀)

11. 소장이 한림 소공을 따라 여항에 가기에 전송하다(送少章從翰林蘇公餘杭)

12. 정인의 벽에 적다. 2수(題淨因壁. 二首)

13. 6월 17일 낮잠을 자다(六月十七日晝寢)

14. 북창에서(北窓)

15. 조자충이 죽부인시를 보여주었다. 죽부인은 시원하게 잠을 자게 해주는 대나무로 만든 물건으로, 팔과 다리로 껴안으니 부인의 일과는 같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내가 ‘청노’라고 이름 붙였고 더불어 짧은 시를 지었다. 2수(趙子充示竹夫人詩, 蓋涼寢竹器, 憩臂休膝, 似非夫人之職. 予爲名曰靑奴, 幷以小詩取之. 二首)

16. 범촉공에 대한 만사. 2수【촉공의 휘는 진이고 자는 경인이다. 동파 소식이 그를 위해 묘지명을 지었는데, 지금 그 묘지명의 내용을 가져다가 이 시의 의미를 밝힌다】(范蜀公挽詞. 二首【蜀公諱鎭, 字景仁, 東坡爲作墓誌, 今采掇以證此詩】)

17. 종실 공수에 대한 만사. 2수(宗室公壽挽詞. 二首)

18. 성을 나와 나그네를 전송하고 옛 벗인 동평후 조경진의 무덤을 지나다(出城送客, 過故人東平侯趙景珍墓)

19. 황영주에 대한 만사. 3수(黃潁州挽詞. 三首)

20. 낙수현군 여 씨에 대한 만사. 2수(樂壽縣君呂氏挽詞. 二首)

21. 숙부 급사에 대한 만사. 10수【급사의 이름은 염이고 자는 이중이다. 『실록』에 전이 있다】(叔父給事挽詞. 十首【給事名廉, 字夷仲. 實錄有傳】)

22. 적주각【원주에서 “예전에 진류에 있으면서 일찬당에서 잠을 잤는데, 이때 ‘적주각’이라는 글씨를 써서 적주각으로 삼게 되었다”라고 했다】(寂住閣【元注云, 陳留宿一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

역자

박종훈 朴鍾勳, Park Chong-hoon

지곡서당(芝谷書堂)에서 한학(漢學)을 연수했으며,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고전번역전공)에 재직 중이다.

박민정 朴玟貞, Park Min-jung

고려대학교에서 중국고전시 박사학위를, 중국저장대학(浙江大學)에서 대외한어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관성 李灌成, Lee Kwan-sung

곡부서당에서 서암 김희진 선생에게 한문을 배웠다. 현재 퇴계학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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