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역자/편자 | 조형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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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12-31 | ||
ISBN | 979-11-5905-551-5 (93910) | ||
쪽수 | 760 | ||
판형 | 152*223 무선 | ||
가격 | 55,000원 |
『식민지 조선학계와 조선연구 2』의 구성
『식민지 조선학계와 조선연구 2-1930년대 민간 한글신문의 연구자 소개와 논저 서평 기사 자료집』은 사람에 대해 다룬 1부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된 2부로 나눠 구성하였다. 1부에는 ‘조선학계 연구자들의 이력과 연구 주제’라는 제목으로 65편의 기사를 수록했다. 민간 한글신문은 1930년대 이후 연재나 특별기획을 통해 조선학계를 이끌어갈 연구자들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1부는 바로 이러한 기획 가운데 인문·사회 계열 연구자들의 자기소개 또는 인터뷰를 거친 기자의 소개, 또는 심도 있는 연구자 비평,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추도문 등을 담았다. 지면의 제약상 의학·과학·예술 분야 연구자를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1부에서는 관련 기사를 발행일순으로 배치하면서 기획의 변화과정을 엿볼 수 있었는데, 1930년대 초반의 기획이 경성제국대학이나 각종 사립전문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조선학계의 중추로 세워내고자 하는 목적 아래 추진되었다면, 1930년대 말에는 연구자들이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취지가 강조되기도 했다. 시기마다 학문을 요청하고 조선연구를 진흥하려는 의도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2부는 ‘논저 서평을 통한 조선연구의 진흥과 논쟁’이라는 제목 아래 70편의 글을 담았다. 논저 서평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나 그 가운데에는 연구동향에 대한 검토, 전문 연구자의 후학들을 대상으로 한 도서 추천, 사료 현황에 대한 조사 등의 기사도 함께 담았다. 한마디로 2부는 식민지시기 조선연구의 레퍼런스reference를 확인하기 위한 기초자료의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료집을 구성하면서 2부도 1부와 마찬가지로 게재일 순으로 기사를 배열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서평, 연구동향, 도서 추천과 자료 소개 등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살펴보고자 한다.
『식민지 조선학계와 조선연구 2』의 의의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된 옛 신문을 누구나 검색해서 볼 수 있는데 힘들게 정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기소침해지는 순간이 있었지만, 그러한 기분을 상쇄시켜준 것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중요 기사를 발견하는 기쁨과 기사들에 질서를 부여하면서 민간 한글신문 학예면이라는 지면의 의미에 대해서 더욱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1권의 해제를 통해 이 자료집의 출간이 학예면에 대한 독해 방법을 함께 모색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한바 있는데, 이러한 희망은 2권 작업을 마무리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일러두기
해제:연구자 소개와 논저 서평을 통한 조선연구의 진흥
기사 본문
1부 조선학계 연구자들의 이력과 연구 주제
01 「조선어문 공로자 소개 창간 10주년 기념사업」(전5회)
-『동아일보』, 1930.9.2~6
02 「(선생평판기 기1) 연전의 ‘골동품’ 백남운 교수, 경제사료 수집에 몰두」
-『동아일보』, 1930.9.7
03 「(선생평판기 기3) 대리석상 같은 옥선진 교수, 샌님도 연단에서 서면 사자」
-『동아일보』, 1930.9.19
04 「(선생평판기 기6) 불전의 ‘모던’ 중 김태흡 강사, 불교의 사회화에 노력
-『동아일보』, 1930.9.23
05 「(선생평판기 기7) 누렁지 같은 신의경 강사, 독서삼매에 늙는 줄 몰라」
-『동아일보』, 1930.9.24
06 「(선생평판기 기10) 소인회 회장 이긍종 강사, 조선화폐사를 불원 완성」
-『동아일보』, 1930.10.15
07 「(선생평판기 기11) ‘새우젓 장사’ 홍성하 교수, 이론경제에 제1인」
-『동아일보』, 1930.10.16
08 「(선생평판기 기12) 극문학에 조예 깊은 조희순 교수, 양복감 파는 노국인」
-『동아일보』,』1930.10.17
09 「(선생평판기 기13) 미인 투표 당선된 채필근 교수, 교육과 전도에 일의 전력」
-『동아일보』, 1930.10.19
10 「(선생평판기 기14) 퉁퉁한 술부대 윤태동 강사, 낭만철학을 특히 연구」
-『동아일보』, 1930.10.21
11 「조선의 역사 대가 단재 옥중 회견기」(전7회)
-신영우, 『조선일보』, 1931.12.19~30
12 「석농 선생의 역사 언어」(전9회)
-애류생, 『조선일보』, 1932.3.26~4.6
13 「(연구실을 찾아서) 박제된 학문」
-유진오, 『조선일보』, 1932.11.26
14 「(연구실을 찾아서) 연중硏中 일제一題」
-천태산인, 『조선일보』, 1932.11.30
15 「(연구실을 찾아서) 역사성을 부인하는 역사성, 현실의 긍정적 이해와 부정적 고찰」
-최용달, 『조선일보』, 1932.12.2
16 「(연구실을 찾아서) 굶어 죽는 취미」
-고유섭, 『조선일보』, 1932.12.3
17 「(연구실을 찾아서) 파르메니데스적 방법과 헤라클레이토스적 방법」
-신남철, 『조선일보』, 1932.12.6
18 「(연구실을 찾아서) 자아를 알자」
-신석호, 『조선일보』, 1932.12.7
19 「(연구실을 찾아서) 학자의 생활은 모순에서 모순에」
-조윤제, 『조선일보』, 1932.12.9
20 「(연구실을 찾아서) 천사만사는 객관자의 정서」
-박동일, 『조선일보』, 1932.12.11
21 「(연구실을 찾아서) 몰각된 자기」
-조용욱, 『조선일보』, 1932.12.15
22 「(연구실을 찾아서) 제 것을 멸시」
-이희승, 『조선일보』, 1932.12.20
23 「(연구실을 찾아서) 무기로써의 경제학」
-김광진, 『조선일보』, 1932.12.21
24 「(연구실을 찾아서) 내방來房 속에서」
-서두수, 『조선일보』, 1932.12.27
25 「(연구실을 찾아서) 비‘스콜라’적 태도」
-한치진, 『조선일보』. 1932.12.28
26 「고 노정 김재철 군을 조吊함」
-김태준, 『조선일보』, 1933.1.31
27 「고 노정 김재철 군-회보 제6호를 추도호로 내면서」
-이희승, 『동아일보』, 1933.3.5
28 「(교수·강사타령 보성전문학교 편) 법과 과장 옥선진 씨」
-『조선일보』, 1933.4.26
29 「(교수·강사타령 보성전문학교 편) 법과 교수 최태영 씨」
-『조선일보』, 1933.4.27
30 「(교수·강사타령 보성전문학교 편) 전임강사 유진오 씨」
-『조선일보』, 1933.4.28
31 「(교수·강사타령 보성전문학교 편) 상과 과장 김영주 씨」
-『조선일보』, 1933.5.1
32 「(교수·강사타령 보성전문학교 편) 상과 교수 홍성하 씨」
-『조선일보』, 1933.5.2
33 「(교수·강사타령 보성전문학교 편) 교수 백상규 씨」
-『조선일보』, 1933.5.5
34 「(교수·강사타령 보성전문학교 편) 상과 교수 김광진 씨」
-『조선일보』, 1933.5.11
35 「(교수·강사타령 보성전문학교 편) 제제다사」
-『조선일보』, 1933.5.13
36 「고 노정 김재철 군의 생애와 그 유저」(전2회)
-성재학인, 『조선중앙일보』, 1933.8.4~5
37 「일성 선생을 곡함」
-홍기문, 『조선일보』, 1933.8.26
38 「(명랑! 가을의 연구실에 문명의 자장가를 엿듣는다) 철학은 미소한다, 초월하는 하이데거-성대 교수 박종홍 씨」
-『조선일보』, 1933.9.17
39 「(명랑! 가을의 연구실에 문명의 자장가를 엿듣는다) 우리들도 군혼을 지내왔단다-연전 상과연구실 백남운 교수」
-『조선일보』, 1933.9.22
40 「(명랑! 가을의 연구실에 문명의 자장가를 엿듣는다) 철학의 대도를 걷는 젊은 파우스트-독일 철학박사 안호상 씨」
-『조선일보』, 1933.9.26
41 「(우문현답 상아탑 방문기 2) 최용달 씨를 찾아서」
-『동아일보』, 1936.1.3
42 「(우문현답 상아탑 방문기 3) 이훈구 씨를 찾아서」
-『동아일보』, 1936.1.4
43 「오호 단재를 곡함」
-안재홍, 『조선일보』. 1936.2.27
44 「조선 역사학의 선구자인 신단재 학설의 비판」(전8회)
-홍기문, 『조선일보』, 1936.2.29~3.8
45 「곡 단재」
-벽초, 『조선일보』, 1936.2.28
46 「(인물춘추) 백남운론」(전5회)
-서강백, 『조선중앙일보』, 1936.4.28.~5.5
47 「(인물춘추) 정인보론」(전4회)
-천태산인, 『조선중앙일보』, 1936.5.15~19
48 「한글 표준 사정에는 으뜸 되는 수훈자, 조선어사전 편찬에 혈한노심, 조선어학회 이극로 씨」
-『조선일보』, 1937.1.1
49 「우리 토속 연구의 처녀지를 개척, 연중휴대 비망록과 연필, 민속학의 권위 손진태 씨」
-『조선일보』, 1937.1.1
50 「경제 조선의 입체적 연구, 후진에게 들려주는 연학의 오훈, 『조선사회경제사』 저자 백남운 씨」
-『조선일보』, 1937.1.1
51 「향가 연구에 혁명아! 오구라 학설을 전면적으로 분쇄, 학계 주시의 그의 업적, 향가 연구가 양주동 씨」
-『조선일보』, 1937.1.1
52 「(초창의 학문 순방기) 위창 오세창 선생을 찾아」
-『조선일보』, 1938.3.18
53 「(초창의 학문 순방기) 30년 하루 같은 황의돈 씨」
-『조선일보』, 1938.3.19
54 「(나의 연구테마) 조선문화사상으로 본 조선불교사의 연구」
-불전 교수 강유문, 『조선일보』, 1939.3.12
55 「(나의 연구테마) 비교음성학 연구」
-연전 교수 김선기, 『조선일보』, 1939.3.14
56 「(나의 연구테마) 여요·향가의 주석·기타-상대 어법사의 일 도정」
-양주동, 『조선일보』, 1939.3.17
57 「(나의 연구테마) 사료만 남아있는 조선사-특히 북방개척에 치중하여」
-성대 조선사연구실 이인영, 『조선일보』, 1939.3.18
58 「(조선학의 외인부대 1) 고고학자의 꿈을 담은 두만강안의 고문화, 지멜만 박사 편」(전2회)
-『조선일보』, 1939.4.9~11
59 「(조선학의 외인부대 3) 사라져가는 자료 조선 고선박의 연구, 원한경 박사 편」
-『조선일보』, 1939.4.12
60 「(조선학의 외인부대 4・5) 조선학의 개척자 헐버트 씨」(전2회)
-『조선일보』, 1939.4.13~14
61 「(조선학의 외인부대 7) 쇄국의 금령 하 전율하는 ‘개화’ 전야의 정신사, 한말 종교사의 연구가 피숀 씨」
-『조선일보』, 1939.4.18
62 「(여명기의 회상록 4) 권덕규 씨에게 조선어학 발달사를 묻는다」
-『조선일보』, 1939.6.20
63 「(여명기의 회상록 6) 최규동 씨에게 수학 발달사를 묻는다」
-『조선일보』, 1939.6.22
64 「(새 시대에 학술도 동원, 사변과목을 찾아서) 고어학자 양주동 씨」
-『조선일보』, 1939.12.5
65 「(새 시대에 학술도 동원, 사변과목을 찾아서) 전 젊은 법학자 서재원 강사」
-『조선일보』, 1939.12.6
2부 논저 서평을 통한 조선연구의 진흥과 논쟁
66 「최육당의 『백두산근참기』를 읽음」(전3회)
-안민세, 『조선일보』, 1927.10.13~18
67 「『조선어철자법강좌』 장지영 씨의 신저를 읽고」(전4회)
-염상섭, 『조선일보』, 1930.11.1~7
68 「(내외신간평) 손진태 씨 편, 『조선신가유편』」
-이은상, 『동아일보』, 1931.2.23
69 「(내외신간평) 동예 이중화 씨 저 『조선의 궁술』」
-석성인, 『동아일보』, 1931.5.11
70 「이선근 저 『조선최근세사』 독후감」(전4회)
-고영환, 『조선일보』, 1931.5.13~16
71 「이여성 김세용 공저 『수자조선연구』」(전3회)
-김우평, 『동아일보』, 1931.12.19~24
72 「『수자조선연구』 독후감을 읽고」(전6회)
-동서 저자 양인, 『동아일보』, 1932.1.17~24
73 「(독후감) 크레인 여사의 『조선 화초와 및 그 민요의 연구』」
-하성생, 『조선일보』, 1932.3.10
74 「이여성, 김세용 저 『수자조선연구』 제3집」(전2회)
-함상훈, 『동아일보』, 1932.5.28
75 「(독서란) 『조선민속』을 독함」
-함대훈, 『조선일보』, 1933.2.2
76 「(독서란) 김소운 씨 편저, 『조선구전민요집(조선문)』 제1서방판」
-함대훈, 『조선일보』, 1933.2.17
77 「(독서실) 김태준 저, 『조선소설사』」
-최창규, 『조선일보』, 1933.6.11
78 「(신간평) 이·김 양씨 공저 『수자조선연구』 제4집을 읽고」
-홍효민, 『동아일보』, 1933.6.14
79 「(신간평) 노정 김재철 저 『조선연극사』」
-서항석, 『동아일보』, 1933.6.24
80 「(신간서 독후유감) 『간도소사』 기타」(전2회)
-여수학인, 『조선중앙일보』, 1933.7.2~5
81 「(신간평) 잡지 『철학』의 창간을 보고」
-서항석, 『동아일보』, 1933.8.4
82 「경제사 연구의 주초柱礎, 백남운 교수의 대저 『조선사회경제사』 전 5권 중 제1권 출판」
-R생, 『조선중앙일보』, 1933.
83 「백남운 교수의 신저 『조선사회경제사』」
-김광진, 『동아일보』, 1933.9.21
84 「(Book Review) 『조선사회경제사』」(전2회)
-이천진, 『조선일보』, 1933.11.30.~12.1
85 「독사만록-조선학에 관한 구문歐文 저서의 미친 영향, 일역본을 중심으로 하여」(전4회)
-홍순혁, 『조선일보』, 1934.2
86 「독사만록의 보유」
-홍순혁, 『조선일보』, 1934.2.9
87 「(사외이문) 『승정원일기』」
-호암, 『조선일보』, 1934.2.10
88 「(Book Review) 김태준 편, 『조선가요집성 고가편』 제1집을 읽고」(전3회)
-이종수, 『조선일보』, 1934.2.16~18
89 「(일사일언) 원한경 박사와 『조선선박고』」
-장백산인, 『조선일보』, 1934.5.10
90 「(사외이문) 『조선소사』」
-호암, 『조선일보』, 1934.4.24
91 「(BOOK REVIEW) 『보전학회논집』에 대한 독후감」(전4회)
-백남운, 『동아일보』, 1934.5.1~4
92 「『진단학보』를 읽고」(전3회)
-무이생, 『동아일보』, 1934.12.22~27
93 「(작년도 학술계) 논저를 통해 본 조선학계의 수확」(전6회)
-황욱, 『동아일보』, 1935.1.1~6
94 「(북리뷰) 파리에서 출판된 서영해 씨의 『명경의 불행』」
-이헌구, 『조선중앙일보』, 1935.1.11
95 「고전섭렵 수감隨感」(1)~(5)
-천태산인, 『동아일보』, 1935.2.9~15
96 「진단학보를 읽고」(전5회)
-정학모, 『동아일보』, 1935.5.8~14
97 「이여성, 김세용 공저 『수자조선연구』 제5집에 대한 독후감」(전2회)
-백남운, 『동아일보』, 1935.5.28~29
98 「이훈구 교수의 신저 『조선농업론』을 독함」(전3회)
-노동규, 『동아일보』, 1935.9.3~5
99 「조선 고문헌의 섭렵」(전8회)
-최문진, 『조선중앙일보』, 1935.9.12~21
100 「『진단학보』 제3권을 읽고」(전4회)
-이청원, 『동아일보』, 1935.11.9~14
101 「『진단학보』 제3권을 읽고」(전4회)
-김태준, 『조선중앙일보』, 1935.11.15~19
102 「작년 중 일본학계에 나타난 조선에 관한 논저에 대하야」(전4회)
-이청원, 『동아일보』, 1936.1.1~6
103 「작년 조선학계의 수획과 추세 일고」(전11회)
-이청원, 『조선중앙일보』, 1936.1.1~25
104 「이청원 씨 저 『조선사회사독본』을 읽고」(전10회)
-호세이대학[法政大學] 김우헌, 『조선중앙일보』』1936.7.23~8.6
105 「(북리뷰) 최현배 씨 저 『우리말본』」(전2회)
-이희승, 『조선일보』, 1937.3.17~18
106 「(신간평) 조선시가의 정리 독 『조선시가사강』」
-이은상, 『조선일보』, 1937.5.29
107 「(북리뷰) 조윤제 씨 저 독 『조선시가사강』」
-서두수, 『동아일보』, 1937.6.25
108 「(독서여향, 신추등하에 읽히고 싶은 서적 1) 민속학도들에게」
-손진태, 『동아일보』, 1937.9.2
109 「(독서여향, 신추등하에 읽히고 싶은 서적 6) 최근세사 연구서」
-이선근, 『동아일보』, 1937.9.9
110 「(독서여향, 신추등하에 읽히고 싶은 서적 7) 독서근감 수칙數則」(전3회)
-양주동, 『동아일보』, 1937.9.10~12
111 「최근의 발견과 학계의 수확」
-『동아일보』, 1938.1.5
112 「(신간평) 김윤경 씨의 노작 『조선문자 급 어학사』」
-홍기문, 『조선일보』, 1938.1.27
113 「이희승 근저 『역대 조선문학 정화』」
-이극로, 『조선일보』, 1938.5.5
114 「이희승 편 『조선문학정화』」
-조윤제, 『동아일보』, 1938.5.6
115 「(신간평) 문세영 씨 역저 『조선어사전』 평」
-방종현, 『조선일보』, 1938.7.22
116 「(신간평) 『진단학보』 평, 그 9호 간행을 보고」
-노성석, 『조선일보』, 1938.8.14
117 「(신간평) 우리 문장 궤범인 『조선문학독본』」
-이헌구, 『조선일보』, 1938.10.23
118 「(북리뷰) 훌륭한 고전 『조선명보전도록』」
-이태준, 『동아일보』, 1938.12.13
119 「독 『조선무속연구』, 무속 수집의 효시본」
-방종현, 『조선일보』, 1939.2.2
120 「(북리뷰) 최초의 문화조감도 『조선문예연감』」
-이종수, 『동아일보』, 1939.4.12
121 「(북리뷰) 진귀한 수확 『조선민요선』을 읽고」
-여상현, 『동아일보』, 1939.5.24
122 「고문헌의 일 수난-김태준 씨의 근저 「여요주석」」(전5회)
-양주동, 『조선일보』, 1939.5.28~6.4
123 「역사 연구가에게 주는 각서, 특히 초학자의 색인을 위해서」(전7회)
-김상기, 『동아일보』, 1939.6.9~17
124 「찾아진 연극고전 『조선연극사』를 읽고」
-유치진, 『동아일보』, 1939.6.30
125 「조선말과 니시무라 씨-『보리와 병정』의 역저를 읽고」
-홍종인, 『조선일보』, 1939.7.22
126 「고 문일평 씨 유저 『호암사화집』」
-이병도, 『조선일보』, 1939.7.28
127 「(북리뷰) 문일평 씨의 유고 『호암사화집』」
-이윤재, 『동아일보』, 1939.7.28
128 「(신추 학술강좌) 상고사 연구의 근본사료」(전4회)
-황의돈, 『조선일보』, 1939.9.27~10.4
129 「(학생과 독서) 『호암전집』 제1권을 읽고」
-황의돈, 『조선일보』, 1939.10.30
130 「두어잡록, 엽서여담」(전7회)
-홍순혁, 『조선일보』, 1939.11.2~11
131 「학계 1년 보고, 조선학의 독무대」(전2회)
-박치우, 『조선일보』, 1939.12.15~16
132 「(학생과 독서) 『조선무속의 연구』 아카마쓰, 아키바 양씨의 저서를 읽고」
-방종현, 『조선일보』, 1940.2.12
133 「(북리뷰) 정광현 저, 『성씨논고』」(전2회)
-경성복심법원 판사 김준평, 『조선일보』, 1940.4.13~16
134 「고 문일평 선생 1주기 기념논문, 호암의 유저에 대하여」
-홍벽초, 『조선일보』, 1940.4.16
135 「(북리뷰) 자산 안확 저 『조선무사영웅전』」
-유자후, 『동아일보』, 1940.5.9
간행사
편자
조형열 趙亨烈, Cho Hyong-yerl
동아대학교 역사문화학부 사학전공 조교수.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백남운‧김태준‧이청원 등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의 학문론과 역사서술을 주제로 한 박사논문을 썼다. 고려대학교 BK21+한국사사업단과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사업단에서 연구교수로 일했다. 한국근현대 지식인의 의식과 생각을 다루는 사상사‧학문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의 학술문화기관 구상과 과학적 조선학 수립론」,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의 프롤레타리아문화운동과 ‘실천적 조선연구’론」, 「1930년대 조선 역사과학의 연구방법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20세기 전환기 동아시아 지식장과 근대한국학 탄생의 계보』, 『동아시아 혁명의 밤에 한국학의 현재를 묻다』, 『전통과 창조-조지훈 탄생 100주년 기념 논문집』 등 공저서 작업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