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능몽초 | 역자/편자 | 문성재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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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5-04-10 | ||
ISBN | 979-11-5905-964-3 (94820) | ||
쪽수 | 324 | ||
판형 | 152*223 양장 | ||
가격 | 25,000원 |
이야기꾼이 된 지식인, 능몽초의 소설집
송대에는 저잣거리 공연장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 행위를 ‘설화(說話)’라고 불렀다. 당시에 설화는 시각적인 효과도 중시되었지만 주로 청각에 호소하는 서사예술이었다. 명대의 경우 건국 초기에는 대부분 이른바 ‘정통문학’으로 일컬어지던 시가·산문을 다룬 도서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기인 가정(嘉靖) 연간부터 상업경제가 발전하면서 크고 작은 도시들이 도처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글자를 읽을 줄 알고 제법 구매력을 갖춘 도시인들이 유력한 사회계층으로 정착하게 된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희곡·민요 등의 통속 예술이 그 유례(類例)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번성기를 맞이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지식인은 지식인들대로 독서시장의 그 같은 추세에 발맞추어 당시 민간에 전해지던 화본을 수집해 소설집을 엮고 거기에 자신들의 의견이나 해설을 붙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도 많아졌다. 그 ‘고상한’ 화본소설집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풍몽룡(馮夢龍)이 엮은 『유세명언(喩世明言)』·『경세통언(警世通言)』·『성세항언(醒世恒言)』이다. 이 소설집들이 독자들에게서 큰 인기를 끌자 학식이 풍부한 지식인이 송·원대 화본의 틀을 모방하여 비슷한 성격의 소설을 짓는 풍조가 유행하게 되는데, 그 서막을 연 것이 바로 ‘즉공관주인(卽空觀主人)’ 능몽초였다.
능몽초(凌濛初, 1580~1644)는 생전에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여 역사서나 문학이론서는 물론이고 시문·산곡·희곡·소설 등의 방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송·원대 화본(話本)의 문체를 모방해 지은 이야기들(‘의화본’)을 모아 놓은 소설집 『박안경기』와 『이각 박안경기』가 가장 유명하다.
중국문학사에서 ‘이박’으로 일컬어지는 이 두 소설집은 서면체 중국어고문로 지어진 송·원·명대에 소설집들에서 참신하고 흥미로운 소재로 당시 독서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화본의 양식을 모방하여 구어체 중국어백화로 새로 지은 2차 창작의 결과물이다. 특히 『이각 박안경기』는 당·송·원·명 등 언어 층위가 서로 다른 역대 왕조의 서면체와 구어체의 표현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시대와 층위에서 상이한 표현들이 뒤섞여 있다 보니 언어적인 견지에서는 『박안경기』에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만, 문학적인 견지에서 이야기한다면 그 평가는 사뭇 달라진다. ‘설화’를 생업으로 하는 이야기꾼이 아닌 정통 지식인이 송·원대 화본을 모방해 창작한 최초의 의화본 소설집일 뿐만 아니라, 저잣거리의 공연예술에서 서재의 읽을거리로 이행하는 중국소설의 발전과정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산 증거이다.
“보고 듣는 범위 이내 및 일상에서 생활하는 영역”, 사실주의 창작의 시작
능몽초는 유가에서 금기시하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의 귀신 이야기와 지나친 음담패설을 다룬 책들이 당시의 독서시장에 범람하면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데에 상당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소설을 통해 어리석인 사람들을 계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박안경기 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사실 능몽초가 『박안경기』를 짓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당시 사람들의 땅에 떨어진 도덕관에 경종을 울리고, 나아가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잡는 데에 있었다.
능몽초가 ‘이박’을 선보이면서 사실주의를 창작의 대전제로 표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는 그 대안으로 기존의 퇴폐적인 창작 풍토와는 상반되는 접근방법, 즉 “보고 듣는 범위 이내 및 일상에서 생활하는 영역”, 즉 일상생활을 토대로 한 소설 창작을 제안하였다. 이같은 사실주의적 접근방법은 「이각 박안경기 서」에서 수향거사가 당시의 소설가들에게 눈앞에 펼쳐지는 ‘만물의 상태와 인간의 감정(物態人情)’에 주목하면서 사실주의(眞)의 예술적 경지를 지향할 것을 역설한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박안경기』의 서문·범례와 상우당의 패기(牌記) 등에 “교화의 죄인이 되지 않겠다”는 몇 번이나 다짐이 등장하는 것은 소설의 사회적 교화에 대한 그의 각성과 의지가 얼마나 확고했는지 잘 보여 준다. 능몽초의 이 같은 창작 원칙은 실제로 『박안경기』에 이어 『이각 박안경기』에서도 일관되게 고수되었다.
『이각 박안경기』 완역본 출판에 즈음하여
『이각 박안경기』 서
『이각 박안경기』 소인
제39권
신묘한 도둑이 흥 실어 매화를 한 줄기 그리고 의로운 도둑이 번번이 장난에 몰두하다
(神偷寄興一枝梅 俠盜慣行三昧戱)
제40권
송공명이 원소절에 소란을 일으키다(宋公明鬧元宵 雜劇)
『이각 박안경기』 해제
부록_ 능몽초 연보
『이각 박안경기』에 대한 번역작업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30여 년 전(1992)에 경관교육(警官敎育)출판사를 통하여 『백화 이각 박안경기 상석(白話二刻拍案驚奇賞析)』이라는 제목으로 현대중국어로의 완역이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10년 뒤(2003)에는 외문(外文) 출판사를 통하여 마문겸(馬文謙)이 『놀라운 이야기들(Amazing tales)』이라는 제목으로 영문판 번역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자에서는 장르가 다른 희곡인 제40권이 번역대상에서 제외되었고 후자에서는 수록 작품의 절반 수준인 19편만 번역되었다. 게다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 번역본 모두 작품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에 단서를 제공하는 시가나 은유적인 성 묘사가 등장하는 대목들이 맥락을 무시한 채 일률적으로 배제되었다. 번역의 수준이나 책의 완성도 등 여러 면에서 완역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 같은 기계적인 배제는 줄거리의 맥락과 스토리텔링의 리듬을 파괴하여 독자들이 능몽초가 제시한 메시지에 다가서는 것을 방해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역자가 이번에 선보이는 『이각 박안경기』는 능몽초 원작의 진면목(眞面目) 그대로 최대한 보전(保全)했으니 그야말로 명·실(名實)이 상부(相符)하는 최초의 완역본이라고 하겠다.
-「『이각 박안경기』 출판에 즈음하여」 중에서
저자
능몽초(凌濛初, 1580~1644)
명나라 말기 절강(浙江) 오정(烏程, 吳興) 사람. 생전에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여 역사서나 문학이론서는 물론이고 시문·산곡·희곡·소설 등의 방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송·원대 화본의 문체를 모방해 지은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소설집 『박안경기』와 『이각 박안경기』가 가장 유명하다.
역자
문성재 文盛哉, Moon Seong-jae
우리역사연구재단 책임연구원, 국제PEN 한국본부 번역원 중국어권 번역위원장.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비로 중국에 유학하여 남경대학교(중국)와 서울대학교에서 문학과 어학으로 각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옮기거나 지은 책으로는 『중국고전희곡 10선』·『고우영 일지매』(4권, 중역)·『도화선』(2권)·『간전노』·『회란기』·『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조선사연구』(2권)·『경본통속소설』·『한국의 전통연희』(중역)·『처음부터 새로 읽는 노자 도덕경』·『루쉰의 사람들』·『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한국고대사와 한중일의 역사왜곡』·『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 1~4·『격강투지』·『남채화』 등이 있다.
2012년에 케이블 T채널이 기획한 고대사 다큐멘터리 『북방대기행』(5부작)에 학술자문으로 출연했으며, 현대어로 쉽게 풀이한 정인보 『조선사연구』가 대한민국학술원 ‘2014년 우수학술도서’(한국학 부문 1위), 『루쉰의 사람들』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7년 세종도서’(교양 부문), 『한국고대사와 한중일의 역사왜곡』이 롯데장학재단의 ‘2019년도 롯데출판문화대상’(일반출판 부문 본상)을 수상했으며, 작년에는 『박안경기』가 대한민국 학술원 ‘2023년 우수학술도서’(인문학 부문)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금관총의 주인공 이사지왕은 누구인가』의 저술과 함께 『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 5(신당서권)의 역주작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