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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저자 김응교 역자/편자
발행일 2025-09-30
ISBN 979-11-7549-007-9 (03810)
쪽수 741
판형 140*210 각양
가격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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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실화소설 『조국』 살아있는 역사의 증언

이 책은 남파 공작원 김진계 옹이 구술한 이야기를 토대로, 젊은 시절 김응교 작가가 집필한 장편실화소설이다. 『조국』 속에는 한설야, 이기영, 이태준 같은 문인들부터, 독립투사 김두봉, 지리산 항미 빨치산 정순덕, 대전교도소 시절의 신영복까지, 20세기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저자의 문장은 이들을 단순한 인명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역사의 증언자로 불러낸다. 2025년 현대가 알 수 없는 치열한 투쟁의 시간을 저자의 생생한 문장으로 만나볼 수 있다. 

 

세 번의 전쟁을 건넌 사내, 김진계

-일제 27년, 해방 이후 남로당 활동 5년, 전쟁 3년을 포함한 북에서의 생활 20년-

흔히 ‘거제도 다대포 간첩’으로 알려진 그는 체포되어 18년 동안 옥고를 치른다. 이후 나이든 그가 석방되어 젊은 작가 김응교를 만나 나눈 대화가 이어졌고, 1991년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그의 극적인 삶이 『조국』에 담겼다. 『조국』은 개인의 파란만장한 운명을 통해, 이념과 분단, 전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 전체를 응축한 작품이다.

 

바로 오늘, 다시 읽는 이유

새로운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했다. 사라졌던 남북대화를 회복하고 새롭게 통일이 논의되어야 하는 시기다. 북한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한국전쟁 이후 북쪽의 동포들이 어떻게 지내왔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0년 초판 당시 이 책은 보안사·북한대학원에서 교재로 사용되었고, 동시에 평양과 조총련에서도 남북 상호 이해를 위한 책으로 추천된 바 있다. 남과 북, 좌와 우, 체제와 이념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드문 기록문학이자, 통일시대를 향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증언을 바탕으로 쓴 보고문학의 미덕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되었던 김응교는 29세에 석방되어, 도서출판 현장문학사의 박승옥 대표, 소민영 편집장의 소개로 장기수 김진계 옹을 만난다. 그 후 강원도 사천 이설당에서 함께 머물며 김 옹의 미리 써놓은 원고와 구술을 정리했고, 이를 소설적 구성과 결합해 『조국』이 탄생했다. 이 책은 증언 70%, 문학적 구성 30%의 비율로 이루어진 보고문학이다. 증언자의 말은 절대 수정하지 않고, 문학적 재미를 더하는 부분만 소설적 기법으로 채워졌다. 특히 저자가 김진계 옹과 함께 지낸 체험은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10부)에 기록되어, 증언자의 삶과 그 의미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인간병기, HID

 

프롤로그_ 이성당에서 

1부_ 좌절된 해방과 공산당

2부_ 인민군으로 한국전쟁에

3부_ 북조선에서 살다

4부_ 특수 공작원

5부_ 붉은 강, 푸른 산

6부_ 자모산성 호랑이

7부_ 공작원의 검붉은 바다

8부_ 우리하구 똑같이 생겼다 아이가

9부_ 팔공산의 새소리

10부_ 무정천리

 

작품론

해설

찾아보기

그때 그의 표정은 나와는 다른 표정이었다. 내가 생각한 바다의 색깔은 금빛 황혼에 젖은 아름다운 적색 바다였다만, 그가 생각하는 바다는, 그 표현이 달랐다. 

“누군가에게 지독하게 매를 맞고 나면 온몸에 저런 빛깔이 번지지. 아주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피멍이 저렇지.”

 

-

분주소 옆집에 살던 열다섯 된 여자애는 기총소사로 허벅지가 관통되어 피를 많이 흘리고 널부러져 있었다. 급히 지혈하려고 몸을 들어 보니 동맥이 끊어져서 지혈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아이의 얼굴은 벌써 창백해져 있었다. 최선을 다해 지혈했으나 의사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는 동이 틀 무렵 숨을 거두었다.

 

-

1950년 9월 15일, 미해군 제7함대가 마침내 인천에 상륙했다. 이어서 9월 16일부터 낙동강 전선에서 유엔군의 총반격이 개시되었고, 9월 28일에는 중앙청에 미군기가 펄럭였다. 단 열흘 사이에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어 인민군은 패퇴하기 시작했다. 분주소 창문 밖에는 팔다리 머리에 붕대를 싸매고 패잔병처럼 후송되어 오는 부상병들의 모습이 늘어 가기 시작했다.

 

-

결혼식이란 말을 듣고서야 왈현이는 움찔하더니, 볼우물에 엷은 웃음이 고인 눈가에 얼핏 물기가 반짝였다. 고운 뺨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한 장의 사진이 겹쳐져서 떠올랐다.

그것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고정된 모습이었다. 그 얼굴들, 그 얼굴은 늘 말이 없고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차려입은 정희의 얼굴이었다. 또 머리에 옥비녀를 꽂고 눈부시게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샛별이의 버들잎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눈을 감았다.

 

-

전쟁 전 남북을 왕래하며 공작을 진행하는 남로당원들을 많이 보아 왔었다. 그들은 공작 도중 사살되었거나, 체포되었어도 감옥에서 고생하다 전쟁 발발 직후 대부분 처형되었다. 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가 남한 경찰에 잡히면 일단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두려운 일이었다.

...

“그걸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가장 격자임네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척 더디고 추웠다. 어느새 붉게 물든 황혼도 지고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하늘 저 끝에서 북극성이 빛나고 있었다. 어둠을 밝히려면 누군가 저 별처럼 빛을 밝혀야 한다. 내가 그 일을 해야 한다. 이젠 완전히 딴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집으로 들어섰다.

 

-

우리는 어둠 속을 걸어서 정강이까지 잠기는 눈길을 통해 산을 올랐다. 미인의 미끈한 다리를 연상시키는 하얀 자작나무 숲길을 헤치고 한 시간 동안 올라갔다. 마침내 산정에 오르자 눈 앞에 펼쳐진 천지, 말없이 누운 ‘하늘의 연못’이다. 천지를 둘러싸고 톱날 같은 봉우리들이 어둠 가운데 치솟아 있다. 그 봉우리들은 하나하나 위엄 있고 강인한 전사들처럼 우뚝 버티고 서있었다. 백암봉·천문봉·용문봉·지반봉·백운봉·옥주봉……. 인간으로서 이런 광경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죽기 전에 여한이 남지 않을 정도였다. 수려한 산세에 눌려 감상에 빠질 즈음, 상상봉에는 거짓말처럼 구름이 바람에 씻겨 가고 있다.

 

-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인 생각하는 자유는 강제로 고쳐지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향을 강요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여 인간의 내면을 황폐하게 하고 패배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정말 자유 민주주의가 체제의 기본 원리인 사회라면 이런 ‘전향’이란 말 자체가 용납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은 바로 사상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전향 공작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남한 사회가 기형적인 군사 독재 체제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런 체제에서 사상적 지조를 지킨다는 것은 정말 초인적인 인내력과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

……그래, 가족들의 고초를 덜어 주기 위해서는 사실을 그대로 밝히는 게 현명하다. 나야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이지만, 가족들은 누구 하나 다치면 안 돼. 절대 안 돼! 이제까지 눈물 한 방울 없이 지내다가 고초를 겪고 있을 아내와 가족들의 얼굴을 생각하고는 그만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가슴이 터질 것 같고 하늘이 빙빙 돌도록 어지러웠다. 나는 책상 위에 엎드렸다.

 

-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만, 고등 법원은 내 사건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어서 1972년 11월 3일에 대법원에서 문건심의로서 기각되어 나는 무기 징역이 확정되었다.

나의 한평생이 징역 생활로 끝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어금니를 질근 깨물었다. 감방 들창은 마지막 석양빛을 받아 붉게 타오르고 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다대리 무장간첩’으로 인식되고 있는 김진계 선생은 이 글에서 맺힌 한을 풀면서도 못다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그간 많은 북한 문제 기록들을 봤지만 김진계 옹의 삶이 특히 새로운 감동을 일으키는 까닭은 스스로 열심히 살고자 하는 평범한 ‘인민’으로 존재했던 진실된 모습이 부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 임헌영, 문학평론가

 

‘남파 공작원’ 김진계 선생의 이야기를 김응교가 쓴 『조국』에는 한설야만 아니라 이기영·이태준 같은 작가며 김두봉 같은 독립투사, 그리고 정순덕 같은 지리산 항미빨치산들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국』은 남파공작원 김진계 선생이 체험한 8·15부터 70년대 첫무렵까지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채기들이 서리서리 담겨 있는 값진 적바림이다.

─ 김성동, 장편소설 『만다라』, 『국수』의 소설가

 

북한, 남북 관계에 대한 이해는 인식론적 도전이자 새로운 방법론을 요구한다. 『조국』은 남파된 지 일주일 만에 체포되어 18년 동안 수형 생활을 한 장기수 김진계의 이야기다. 세밀하고 ‘객관적인’ 묘사가 인상적인 소중한 현대사 자료이다. 읽은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자주 생각난다. 시비(是非)와 사실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은 상식적이다’라는 상식으로 사는 자세를 바로잡게 해준다.”

─ 정희진, 문학박사,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이 소설은 역사의 한 경계인이 들려주는 한국 근현대사의 외로된 기록이다. 특별히 해방직후 북한 사회를 구성했던 인적, 물적, 제도적 흐름을 손에 잡힐 듯한 낱낱 선명성으로 증언해주는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개인의 기억에 의존한 재현 방식의 일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실명소설은 여러 차원에서 근현대사의 공백지대를 채워주면서 한 인물의 생애가 어떻게 역사와 조우하고 역사에 갇히면서 또 역사를 넘어서는지를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인물들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남다른 구체성과 생동감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 이 소설은, 처음 공개되거나 낯설게 들릴 사실들을 경유하여, 문학을 통한 역사 해석의 풍요로움을 새롭게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분단문학의 예외적이고 문제적이고 중요한 결실로 남을 것이다.

─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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