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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객잔
김명리 산문집
저자 김명리 역자/편자
발행일 2021.7.30
ISBN 9791159056246
쪽수 352
판형 140*190 무선제본
가격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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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일보 21.8.6 15면 지면기사


역사적 현실과 존재론적 삶 사이의 고뇌를 형상화하며 평단으로부터 극강의 생태적 서정시로 평가받아온 김명리 시인이 창고에 오래 감추었던 글, SNS에 간간히 올린 글, 네팔 기행의 자취들을 엮어 첫 산문집을 냈다. 서정적이면서도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영혼을 매만지는 김명리 시인의 일상적 글쓰기를 직접 찍은 사진들과 함께 만날 수 있다.


머리글 / 청렬淸冽과 낙조落照

제1부 / 달 속 계수나무 꺾으러 가세

적소謫所 | 뽕나무 한 그루 | 설해목雪害木 앞에서 | 종鐘 이야기 | 사샤의 집에는 봄이 왔을까? | 우리들의 봄 | 절기節氣의 힘 | 동백 꽃분에 되 핀 사랑 | 가파름이여, 돌아보지 말라 | 산골 민박집 방에 엎드려 | 기로전설棄老傳說 이야기 | 달 속 계수나무 꺾으러 가세 | 히말라야 등신불 | 북인도의 달 | 앰뷸런스 로마

제2부 / 쉿, 임종중입니다

울 엄마 오셨네! | 오는 벚꽃대선 무렵엔 | 사전투표 | 엄마의 생애 마지막 주권행사 | 서명하다 | 저 가을빛 | 쉿, 임종중입니다 | 하루 | 천변풍경 | 몽, 너마저 | 닥쳐올 이별 | 안녕, 몽 | 오늘도 무사히 |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는 곳 | 엄마를 떠나보내며 | 꽃밭의 시학 | 생일상 | 엄마 곁에 누울 때면 | 월색月色만 고요해 | 늦은 성묘 | 봐, 물 위의 새들을!

제3부 / 쇠망치를 삼켰으니 바늘을 꺼내야 한다

암보다 문학이 더 고통스러웠다 | 쇠망치를 삼켰으니 바늘을 | 꺼내야 한다 | 옛 수첩을 태우며 | 그림에 관한 짧은 노트 | 유머러스한 슬픔 속의 풍자 | 하품을 하면서 세계를 | 집어삼킨다? | 소리의 현絃 | 항주杭州, 그 물빛 기억들 | 흩날리는 시간의 뒤뜰에 | 도적의 발걸음 | 모과, 모과꽃 | 시무나무와 김삿갓의 시 131 | 장맛비 잦아들기 무섭게 | 시마詩魔 | 경자년庚子年을 보내며

제4부 / 곧 가을이 오리라

저 단풍 빛 | 가을 마당에 앉다 | 가을 대방출 | 처진 소나무 | 늦가을 묘적사에서 | 곧 가을이 오리라 | 능내 | 가을 수종사 | 파위교에서 | 사람의 저녁 | 나날들 |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달 | 자연사 할 뻔! | 날짜들

제5부 / 도스토예프스키의 홍차

도스토예프스키의 홍차 | 셜리에 관한 모든 것 | 무한으로 빚어낸 생명의 | 경이驚異 | 시인과 군인 | 못 생긴 사람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 | 비밀을 말하려는 순간 | 임을 위한 행진곡 | 청계천 복원에 대한 한 생각 | 시인은 이 땅의 우물물이 | 의심스럽다 | 누구나 기억처럼 왔다가 가지 | 샤머니즘을 돌아보며

제6부 / 개와 사람, 비의 저 백골들

하늬바람 사흘 |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밤 | 사랑이라는 의무 | 노래의 중성화시술 | 고양이 겨울나기 준비 | 산골집 새해 선물 | 비행 오류 참사 | 바보의 봄, 미친 봄을 | 애도하는 노래 | 풍요로워라, 이 추석 | 마리가 왔어요! | 나의 아름다운 고양이 | 오드아이 | 초롱이 생각 | 아아 개소주 | 어찌해야 하나 | 개와 사람, 비의 저 백골들

제7부 / 책으로 세운 청춘의 기념비

문학을 통해 | 책상을 줄 수야 없으니까 | 봄의 기미 | 책으로 세운 청춘의 기념비 | 밤 인사 | 검은 눈물의 의미 | 故 金明梨之墓 | 미라언니의 꽃밭 | 반얀나무 한 잎 | 한 권의 책이 | 개미와 나비와 분꽃송이들을

제8부 / 아름답고 강하고 빛나는 것들

앙큼한 봄 | 진주목걸이 | 해빙기의 저녁 | 지금! | 내 마음의 적폐쯤이야 | 애련설愛蓮說 | 아름답고 강하고 | 빛나는 것들 | 이월 블루스 | 인산후人散後 | 가평, 조르바, 일몰시각 | 슬픔의 맛

제9부 / 네팔에 오면 네팔리가 되어라!

네팔 대지진 | 네팔에 오면 네팔리가 되어라! | 카트만두 이야기 | 스와얌부나트 | 죽음의 축제 가이 | 자뜨라Gai jatra | 페와 호변의 오후 | 아아, 히말라야! | 마차푸차레 | 반디푸르 | 빈디야바시니 사원의 결혼식 | 물장구치는 마음 | 포카라의 반딧불이 준Jun | 담푸스 | 포카라 일주 | 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매 | 타멜에 내리는 비 | 킹스 로드 | 파탄 더르바르 | 쿠마리 | 바그룽의 소년 | 고통 | 죽음을 기다리는 집 | 모한 | 보우더나트 | 시낭독회와 아그리띠의 | 송별식 | 네팔 박테리아에 감염되다 | 바부스님 | 수나코티의 비 | 박타푸르 | 마야의 집 | 창구 나라연 사원 | 미소 | 소의 잔등에 올라앉은 새 그토록 오래 날아가지 않았으니

울 엄마 오셨네!

어버이날 저녁 대문간의 불두화 활짝 피어난 때에 엄마가 돌아오셨다. 산골집 적막해서 못 살겠다며 서울 사는 동생네 다니러 가셔서는 거기 눌러앉으신 지 얼마 만인가.

그 사이 지병은 더 깊어져서 지팡이 짚고 부축해 드려도 기우뚱 진동걸음. 여기가 어디냐고 자꾸만 물어보시는 여든넷, 살아온 기억의 거개가 유실되었지만 꽃과 나무와 새와 구름, 해와 달과 바람의 기억만은 유현(幽顯)해서 불두화 꽃그늘에 기대앉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시기도 한다.

그러니 “노인들이 본질적이지 않은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는 사실은 생의 승리”라는 마르케스의 말은 옳다. 여덟 해째 진행성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지만 아직은 당신의 자식들, 손주들 또렷이 알아보시고 사계(四季)의 저마다 다른 바람소리, 봄 나비 떼 같은 심금心琴의 기억들만은 금강석만큼이나 단단해 보인다.

맞다, 자기 보물을 어디에 숨겼는지 잊어버리는 노인은 없다. 놀라워라, 치매에 드신 우리 엄마, 즐겨 부르시던 노랫말만큼은 한 소절도 잊지 않으셨구나!



꽃밭의 시학

아침놀이 번지는 꽃밭

봄 마당의 꽃들 중에는

분통을 터뜨리듯이 피는 꽃


참았던 울음을

끝내 터뜨리듯이 피는 꽃도 있다


꽃샘바람 잎샘바람

이제는 다 물러난 것 같은

오월 해당화 붉은 꽃등 곁에


팔순의 어머니

주름진 눈가에

가물가물 분홍 물살 이는데


울지 말아라 아프지 말아라


오래오래 허공을 쓸어내리다가


잠잠히

어둠을 열고 들어오는 것처럼

피는 꽃도 있다


시마(詩魔)

시마(詩魔)에 들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첫 시집 『물 속의 아틀라스』(1988년)를 내던 무렵의 몇 달 동안과 세 번째 시집 『적멸의 즐거움』(1999년)을 출간하기 전의 한두 계절 동안을 누군가가 불러주는 듯이, 마치 안에서 뿜어져 나오듯이 하루에도 예닐곱 편 이상의 시를 내리닫이로 썼었던 것 같다.

출판사에 시집 원고를 넘기고 공판인쇄에 들어간 중에도 수십 편의 시를 교체하는 극성을 떨기도 했으니, 이제 와 돌아보면 썩 변변치도 않은 시들을 두고 시마니 뭐니 입설에 올린 일이 스스로 부끄럽기만 하다.

하기사 시마도 늙어 사람의 집 문간에 걸터앉아 숨 고르기만을 하고 있는지 요사이는 그때의 신열 오르던 순간들, 한 구절, 한 구절 받아 적기에도 벅찼던 순간들이 매오로시 그립기만 한 것을.



곧 가을이 오리라


양광(陽光)은 등에 따갑고 그늘 쪽은 어느새 스산하다. 햇빛과 그늘의 스미고 흩어지는 경계,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좀 더 오래 머뭇거려도 좋을 시기가 이즈음인 듯하다.

여름내 재재발랐던 빛의 걸음걸이가 슬슬 굼떠지기 시작하고 큼큼거리면 코끝에 바짝 당겨올 햇빛, 그늘, 가을꽃 향기.

해묵은 노트를 열고 「오늘 밤에 만난 가을」을 다시 읽는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찍이 가을을 두고 “여름이 타고 남은 것”,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燈籠), 그리고 코스모스 무참”이라고 썼다.

심은 적 없는 마당가 쑥부쟁이 보랏빛 꽃들 아래 한 마리 새의 주검…… 적막한 천지간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실려 왔나, 꽃들아, 새야, 문상 온 나비야.



담푸스

해발 1,650m 담푸스Dampus에 올랐다.

날씨 흐린 탓에 마차푸차레며 안나푸르나 1봉(峰)의 선명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깎아지른 바위 벼랑에 초막(草幕)을 짓고 사는 이들의 풀잎 닮은 웃음, 굵게 팬 주름고랑마다 햇빛이 물살처럼 반짝이며 흘러가는 것을 본다.

도시가 세워지고 교역이 오가고 문명이 꽃피고 큰 바람에 업혀온 작은 바람이 눈앞에 가득한가 했더니 멀리 아득히 어느새 흩어지고 없다.

산이 그곳에 있으니 시절 인연을 옮겨 다니며 사람이, 바위가, 초목이, 하늬바람이 거기에 포자처럼 깃들여 살았으리라.



김명리

대구에서 태어났다. 1983년과 84년 「탈춤」 외 4편의 시를 추천 받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저서로는 시집 『물 속의 아틀라스』(1988), 『물보다 낮은 집』(1991), 『적멸의 즐거움』(1999),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2002), 『제비꽃 꽃잎 속』(2016), 『김치박국 끓이는 봄 저녁』(근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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