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Close

출간 도서

도서 상세보기

뒤로가기

2021 세종도서

소설과 삽화의 예술사
한국 근대소설의 형성과 소설 삽화 / 연세근대한국학총서 137 | L-111
저자 공성수 역자/편자
발행일 2020.4.5
ISBN 9791159054969
쪽수 394
판형 신국판 양장
가격 28,000원
서점 바로가기

1912년 최초의 신문연재소설 삽화에서부터 출발해 1940년대 탐정소설까지 다양하게 펼쳐져 있는 소설과 삽화의 관련성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한국 문학이나 미술에서는 없었던 차별화된 방법론과 도전적인 문제의식의 결과물이다. 소설과 삽화, 문학과 미술이 분리되어 서로 요원했던 학제적 고정관념을 허물고, 장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융합의 예술사를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례


제1장 서론    9


1. 소설과 삽화의 상호텍스트 시학    9

   소설, 삽화, 서사

   메타텍스트(metatext)로서의 삽화

   곁텍스트(paratext)로서의 삽화


2. 소설과 삽화의 예술사 시론    22

   근대소설의 타자로서 소설 삽화

   소설 삽화와 근대 독자의 재구성

   소설 삽화의 시대적 의미



제2장 1910년대 초반-신문연재소설의 탄생과 매체 교섭    33

   줄거리를 환기하는 삽화와 개화기 독자의 재구성

   근대를 반영하는 삽화와 서사적 사실감의 모색

   허구 서사의 리얼리티와 사건의 연출

   소설과 삽화의 상호텍스트성



제3장 1910년대 중반-번안소설·삽화의 유입과 신파의 감성    91

   메타텍스트로서의 소설 삽화 읽기

   장면의 극적 재현과 미장센의 강조

   풍경의 연출과 내면의 은유

   구성되는 풍경과 응시하는 주체의 등장

   은유의 삽화와 공감의 기획



제4장 1920년대 초중반-근대소설의 형성기 삽화 미술의 실험    157

   한국소설 삽화의 전개와 석영 안석주

   비구상의 그림과 비일상적 재현의 삽화

   분할되는 신체와 상징적 재현의 삽화

   투사되는 내면과 그림자의 발견

   위반하는 삽화와 누드화

   소설 삽화의 상호텍스트성



제5장 1920년대 후반-근대소설의 정착과 소설 삽화의 대유행    225

   문학사적 사건으로서 연작소설 「황원행」

   1920년대 소설과 삽화의 구성원리로서 사실주의

   현실 세계의 참조를 통한 사실감의 연출

   이미지의 축적과 서사적 일관성

   1920년, 시대의 담론으로서 리얼리티(즘)



제6장 1930년대 초반-모더니즘 소설과 삽화의 탈경계적 사유    269

   1930년대 혼종의 글쓰기와 소설가의 자작 삽화

   그림 공간에 틈입한 문자

   지표로서의 문자와 시공간의 근대적 재현

   유희의 대상으로서 문자와 개별적 독서 체험

   문자의 양면성과 근대적 독자의 재구



제7장 1930년대 후반-탐정소설과 삽화의 장르 미학과 서사 설계    311

   장르소설과 삽화의 형식적 미학

   곁텍스트로서의 표제화와 그로테스크 미학

   장르물로서의 소설 삽화와 화면 연출

   소설과 삽화의 협업, 그리고 탐정 서사의 설계



참고문헌    362

그림 출처    372

부록-신문연재소설 삽화연보    379

간행사    393

『소설과 삽화의 예술사』의 핵심을 쉽게 요약하면, 소설과 삽화를 함께 읽을 때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자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소설과 삽화를 함께 연구한 경우가 드물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건 근대 학문의 경계가 너무 높고 두터웠던 탓이다. 근대 학제의 체계에서, 소설과 삽화, 글과 그림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자는 도식적 장르론이나 고정관념에서 잠시 벗어나자고 말한다. 어떤 전공 연구자라는 답답한 옷을 벗고, 소설과 삽화를 함께 바라보자고 요구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처럼 열린 사유가 곧장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새로운 예술사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고 독자들을 꼬드긴다. 


독서 선생-삽화

한국의 근대 예술 공간에서, 소설과 삽화가 함께 등장한 것은 1912년 1월 1일, 이해조의 신소설 『춘외춘』에서였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유일한 일간지였던 『매일신보』는 구독자 수를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야심찬 기획 속에서 연재소설 삽화를 게재하기 시작한다. 

문맹률이 아직 높았던 시대,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신문을 함께 읽었던 시대, 그리고 아직 조선에 ‘소설’이라는 장르가 완성되지 못 했던 시대, 소설 삽화는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 시청각 극장 그 자체였다. 그 안에는, 계모에게 핍박받는 어린 여주인공이 있었고, 선한 이들을 괴롭히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악당들도 있었으며,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해주는 판관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삽화를 통해 묘사되는 근대의 신문물은 당대의 독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스펙터클처럼 다가왔다. 일본에서 수입되어 번안된 『장한몽』에서, 이수일과 심순애의 애절한 사랑을 대동강변의 사실적인 이미지로 바꿔 실감나게 재현한 것도 신문소설 삽화였다. 

그러나 저자는, 소설 삽화가 단순히 독자의 눈을 자극하는 흥밋거리로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령,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웃는 목소리를 삽입하거나,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에서 중간 중간 감격에 파묻힌 청중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는, 시청자들에게 바로 지금이 중요한 포인트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려는 친절한(?) 의도가 담겨있다. 바로 이런 역할을 이 시기의 소설 삽화가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독자들을 위해서, 소설 삽화는 이야기의 내용을 설명하는 ‘스토리-가이드라인’으로, 더 나아가 근대적 소설 장르를 읽는 법을 설명하는 ‘독서 선생’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근대 소설 삽화에 이르면 삽화 속의 그림은 단순한 줄거리의 전달자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충분히 미적인 텍스트로 변화한다. 낭독의 소설로부터 묵독의 소설로의 변화가 근대 소설의 탄생, 더 나아가 근대적 독자와 주체의 탄생이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할 때, 소설 삽화의 변화는 이와 같은 소설의 변화, 독자의 변모와 대단히 긴밀하게 조응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신문연재소설 삽화의 등장이 근대적 읽을거리에 대한 시대의 기획과 맞물려 있다는 것은, 그동안 간과되어 오기는 했지만 분명 매우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소설 삽화의 시작은 매체 성격의 변화에 따른 근대적 예술 장르의 기획, 독서 방식의 변화에 따른 근대 독자의 고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본과 산업, 인쇄 기술과 출판문화의 보급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술적 타자-삽화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소설 삽화로부터 영향 받은 사람들이 독자들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국 근대소설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서, 이 시기의 소설가들이 삽화에 영향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사실, 이 책의 미덕은 그처럼 소설과 삽화가 관련되어 있었다고 볼만한 증거들을 꼼꼼한 문헌 연구를 통해 하나하나 찾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책벌레처럼 자료를 뒤지고 있는 연구자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빛바랜 신문을 뒤져가면서, 여기저기 흩어진 단서들을 짜 맞추어, 소설과 삽화의 소통을 발견하고 있는 탐정 같은 모습 말이다. 

이를테면 이 책은 삽화가가 소설의 내용이나 형식을 어떻게 ‘선택’하거나 ‘배제’하는지 면밀히 관찰한다. 소설과 삽화 사이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오독의 결과인지 아니면 오히려 소설가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삽화가의 의도적인 결과인지도 추적한다. 삽화 속 시점의 변화가 공교롭게도 1인칭 서술자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밝히거나, 삽화가가 창조한 인물의 얼굴이 놀랍게도 얼마 뒤 소설의 다음 회에서 그대로 묘사된 부분을 발견해내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여전히 근대적 소설 장르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신소설’과 ‘번안소설’과 같은 다양한 이야기 형식이 함께 생산됐던 20세기 초반의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결국 삽화가 근대적 소설의 내용과 형식을 자각하게 만든 ‘예술적 타자’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게다가 사실, 이런 학문적 소통, 예술 사이의 교섭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실제로 텍스트 공간에서 이미지가 완전하게 사라진 적은 없었다. 그림이 문자인 시대가 있었고, 도상이 신성(神聖)을 대신한 사회가 있었으며, 또 시서화(詩書畵)를 굳이 분리할 필요가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지하철 안에서 웹소설을 즐기고,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너무도 자연스럽다. 이미지 중심의 세계와 문자 중심의 세계는 때로 대립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성공적으로 타협하면서 서로 공존해왔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동안의 주류 연구로부터 소외되어 왔던 ‘삽화’의 정당한 복권을, 혹은 이미지와 문자 사이의 건강한 공존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그간의 한국 예술사의 영역에서 소외되다시피 했던 소설 삽화가들을 발굴해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작사가 ‘안석주’가 당대의 최고 삽화가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식민지 조선 화단의 대가, 청전 이상범과 심산 노수현, 한국 삽화계의 대부 이승만의 작품들도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 박태원이 소설 삽화를 직접 그릴 만큼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박태원의 삽화를 절친 소설가 ‘이상’이 그려준 적이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사실이다. 이 책의 부록에서, 학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삽화가들을 발굴해 삽화 연보를 만든 것은, 그처럼 그동안 학계에서 거의 완전히 잊혔던 삽화의 역사를 재발굴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소설과 삽화의 예술사』는 그동안 한국 문학이나 미술에서는 없었던 차별화된 방법론과 도전적인 문제의식의 결과물이다. 소설과 삽화, 문학과 미술이 분리되어 서로 요원했던 학제적 고정관념을 허물고, 장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융합의 예술사를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과 삽화 사이에서 벌어지는 역동적인 상호 소통적 교섭이 독자에게는 분명 더 큰 독서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성수 孔聖秀 Kong, Soungsu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현대소설) 학위를 받았다. 근대 서사문학 형성기의 소설과 삽화의 소통에 관한 연구(「1920년대 후반 소설 삽화의 서사적 리얼리티 연구」)로 제16회 어문논문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연구주제로 학술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사업 지원을 받았다. 공역서로 H. 포터 애벗의 『서사학강의』가 있으며, 글쓰기와 서사로 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그래서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우교수와 글쓰기센터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