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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건의 역사드라마
국제 재판 기록 1907~1908 : 대한매일신보·배설과 양기탁·국채보상운동의 항일 현장 복원
저자 정진석 역자/편자
발행일 2022.01.10
ISBN 9791159056383
쪽수 580
판형 신국판 양장
가격 4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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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한국에서 열린 국제재판

대한매일신보는 국운이 걷잡을 수 없이 기울던 러일전쟁(1904)으로부터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1910년까지 발행된 항일 민족지였다.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된 을사늑약, 헤이그 밀사파견으로 인한 고종의 퇴위, 군대해산, 의병의 무장투쟁, 국채보상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랑기에 이 신문은 민족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일본의 한국 침략을 비판하고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이 신문을 둘러싸고 영국, 일본, 한국이 관련된 4건의 국제재판이 있었다.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국제관계 사법사, 외교사, 의병 투쟁사, 국채보상운동, 언론사가 관련된 이 역사적인 네 건의 재판 기록을 영국과 일본 외교 기밀문서와 통감부 비밀 기록, 당시의 신문기사와 상하이에서 발행 신문까지 탐색 발굴하여 날줄과 씨줄로 촘촘히 엮어 중량감 있는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대한매일신보는 러일전쟁 직후 영국인 배설(裴說, Ernest Thomas Bethell)이 창간한 신문이다. 통감부는 이 신문의 선동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소요를 일으킨다고 주장하면서 신문의 폐간과 배설의 추방을 영국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영국인은 한국에서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통감부는 영국인 소유인 신문을 직접 탄압할 수 없었다. 세계 최강국인 영국을 상대로 일본은 외교력과 갖가지 행정적 방법을 동원하여 통제를 시도하였지만 여의치 않았다.


재판정의 영국, 일본,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

복잡한 논의와 영-일 간의 외교 교섭의 결과, 통감부가 제출한 증거를 토대로 영국은 배설을 두 차례 재판에 회부했다. 상하이 주재 영국고등법원 검사와 판사가 서울에 와서 4일 동안 진행한 재판에는 피고 배설과 일본 고베에서 온 영국인 변호사,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위임을 받아 고소인 자격으로 참석한 통감부 제2인자 미우라 야고로(三浦彌五郞), 의병장 민종식(閔宗植), 평민 등 실로 당시 한반도의 정세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출두하여 일본의 한국 침략과 민족언론의 항일 기사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영어 통역은 미국 유학을 마친 김규식(金奎植)이 맡았는데, 후에 정치가로 널리 알려지는 인물이다. 한영 통역을 맡았던 일본인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는 『조선의 판본(板本)』이라는 책을 쓴 서지학자이자 중세국어학 연구자였다.

한국과 일본의 비상한 관심 속에 영국의 재판관들이 진행하였으므로 영·일·한 세 나라가 관련된 이 진귀한 재판은 영국과 일본이 한국의 독립과 일본의 침략정책에 어떤 방침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보여준 거대한 역사 드라마였다. 재판 3건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국채보상운동 재판은 일본어였다. 한국에서 진행된 국제재판의 특이한 풍경이었다.


국채보상운동 재판

통감부가 양기탁을 국채보상금 횡령혐의로 구속하여 영-일 두 나라의 외교 갈등이 고조되었던 재판사건은 일본이 한국의 사법권을 탈취한 다음에 진행했던 최초의 재판으로, 일본인 재판관 2명과 한국인 판사가 공동으로 진행하였다. 양기탁 재판은 신보와 배설 탄압의 연장이었지만 특히 당시 전국적인 프레스 캠페인으로 불붙었던 국채보상운동을 와해시키려는 통감부의 의도가 숨어 있었기에 항일 민족운동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인, 영국인, 일본인, 프랑스인과 미국인이 증인으로 나서 증거를 제출하는 등 다국적 재판이 되었다.


상하이에서 열린 명예훼손 재판

상하이에서 열린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재판이 있었다. 상하이 발행 영어신문 ‘노스 차이나 데일리 뉴스’가 배설의 명예를 훼손하여 피소된 손해배상 소송이다. 배설이 국채보상의연금을 횡령하였다는 일본 통신의 기사를 그대로 실었던 기사가 문제된 재판이다. 상하이 주재 영국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이지만 주요 쟁점은 국채보상운동이었다. 

네 건의 재판은 대한매일신보, 국채보상운동, 헤이그 밀사 파견에 따른 고종의 퇴위, 군대해산, 의병의 무장투쟁 등을 법정에서 생생하게 진술하고 있어서 당시의 긴박했던 한반도 정세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민족지와 일본 언론의 전쟁이자 영-일 두 나라의 법정 대결로 이어진 복잡한 네 건의 재판에 곁들여 배설이 3주일간의 금고형(禁錮刑)을 복역하기 위해 상하이에 가서 복역한 ‘옥중기’도 전문이 실려 있다.


저자는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1904~1910)과 한글판(1907~1910)을 직접 조사하여 영인본으로 출판하였고, 영국의 국립문서보관소와 국사편찬위원회, 일본 외교사료관의 자료, 그리고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들을 세밀하게 대조하여 책을 썼다. 네 건의 재판 기록은 판사, 검사, 피고와 변호인의 문답 내용을 전문 그대로 번역하면서 친절한 각주와 해설을 곁들여서 이해를 돕고 있다. 1975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와 자료발굴에 매달렸던 저자의 거의 반세기에 걸친 연구의 결실이다.

서문

개관


제1부 영사재판(1907)

제1장 통감부의 배설 추방과 신문 폐간 요구

1. 처벌 증거 기사 3건 제시

2. 재판 소환장

3. 총영사 코번의 영사재판

4. 논설 영문 번역은 정확한가

제2장 6개월 근신형 판결

1. 의병의 무력 항쟁은 신보의 선동 탓

2. 반일감정이 신문 때문인가?

3. 배설의 신문은 공안을 해칠 우려

4. 신문지법 제정


제2부 상하이 고등법원 재판(1908)

제1장 영국과 통감부의 재판 준비

1. 상하이 고등법원 판사가 서울로

2. 일본은 정치적 · 행정적 처리요구

3. 서울프레스 배설 공격 캠페인

제2장 재판 제1일 : 6월 15일(월)

1. 재판 절차의 정당성 논쟁

2. 치외법권의 상황논리

3. 변호인의 법리논쟁

제3장 재판 제2일 : 6월 16일(화)

1. 배설의 증언–신보의 경영과 논조

2. 양기탁의 증언–논설의 취지 진술

3. 변호인의 무죄 주장

제4장 재판 제3일 : 6월 17일(수)

1. 신보를 구독하는 배설 측 증인들

2. 논설 세 건에 대한 논리적 변론

3. 변호인과 검사의 치열한 논쟁

4. 재판 제4일 : 6월 18일(목)


제3부 국채보상운동 양기탁 재판

제1장 프레스 캠페인 국채보상운동

1. 언론사, 민족운동사, 외교사와 총체적 연관

2. 국채보상운동의 전개와 언론

3. 언론의 반응

4. 모금액 총계

5. 일본의 탄압 영국과의 갈등

제2장 양기탁 재판

1. 사법권 탈취 이후 첫 재판

2. 재판 제1일 : 8월 31일(월)

3. 재판 제2일 : 9월 3일(목)

4. 재판 제3일 : 9월 15일(화)

5. 재판 제4일 : 9월 25일(금)

6. 재판 제5일 : 9월 29일(화)

7. 통감부 공판기록 요약 정리

제3장 국채보상운동의 결말

1. 애국심이 결집된 고혈

2. 의연금은 총독부가 몰수


제4부 배설의 N-C 데일리 뉴스 명예훼손 재판

제1장 일본 신문의 배설 공격

1. 배설의 신변 위협

2. N-C 데일리 뉴스의 오보

3. 영국총영사의 배설 옹호

4. N-C 데일리 뉴스의 위상

5. 배설의 세 번째 상하이행

제2장 배설의 N-C 데일리 뉴스 재판

1. 상하이 영국 고등법원 법정

2. 피고 변호인 필립스의 신문

3. 국채보상금의 투자

4. 명예훼손 대응조치

5. 피고와 원고 측 변론 종결

제3장 배설의 죽음

1. 서울로 돌아와서

2. 한국에서 생을 마치다


제5부 배설의 옥중기

수난의 현장, 옥중기에 관해서

나의 3주간의 옥중생활


배설·양기탁 연보

참고문헌

부록_상하이 고등법원 재판(1908년) 판결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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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鄭晉錫, Chong Chin-sok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문학(중앙대 대학원), 언론학(서울대 대학원), 역사학(런던대 정경대학 School of Economics & Political Science-LSE, Dept. of International History, 박사)을 공부했다. 1964년언론계에 입문하여 한국기자협회 편집실장, 관훈클럽 초대 사무국장 역임. 1980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학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사회과학대학장, 정책과학대학원장을 맡기도 했다. 언론중재위원, 방송위원, LG상남언론재단 이사, 장지연기념회 이사를 지냈다. 현재 서재필기념회 이사로 언론관련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8권의 저서와 언론관련 자료집, 문헌해제, 신문 잡지의 색인을 만들었고, 한말 이래 발행된 귀중한 신문 영인 작업을 주도했다. 2019년 한국언론학회 60주년에 회원들이 뽑은학술영예상에 저서 『역사와 언론인』이 선정되었다.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1904~1910)과 한글판(1907~1910) 영인본을 편찬 제작하였으며, 관련 저서는 『대한매일신보와 배설』(나남출판, 1987),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동포를 구하라』(기파랑, 2013), 『한국 독립운동을 도운 영국 언론인 배설』(역사공간, 2013), 『항일 민족 언론인 양기탁』(기파랑, 201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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