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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미디어로 보는 만주국
포스터·그림엽서·우표
저자 기시 도시히코 역자/편자 전경선
발행일 2019.3.30
ISBN 9791159053924
쪽수 306
판형 신국판 무선
가격 2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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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을 아십니까?

흔히 괴뢰국이라는 표현으로 더 익숙한 ‘만주국’이란 무엇인가? 그곳은 실재하는 국가였을까? 단순히 허상에 불과한 곳일까? 만약 허상이라면, 그 허상은 무엇을 근거로 만들어진 것일까? 일본의 동양사학자인 저자는 “황량한 대지, 마적, 붉은 석양, 아카시아 꽃, 수수밭, 아시아호, 야마토호텔”로 표상되는 일본인의 만주의 이미지를 지적하며 그렇게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포스터, 그림엽서, 우표, 사진, 영상, 만화 등 ‘비주얼 미디어’를 통해서 만주국사의 새로운 상을 조명함으로써 그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혹은 기존의 대답을 점검하고자 하는 책이다. ‘키메라’와 같은 만주를 다시금 해부하여 그 실상에 다가가기 위해서 만주국이 홍보정책을 통해서 묘사해 온 만주 이미지를 검토해 본다.


삐라가 보여주는 것, 삐라로써 보이려는 것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미디어는 만주국의 기념 행사나 축제 때 제작된 포스터나 전단(선전 삐라), 중일전쟁 이후 홍보활동에 이용한 기념 우표나 기념 그림엽서, 우편소인 등이다. 즉 예술작품보다는 ‘이페머럴 미디어’, 일시적이고 복제된, 종이 한 장짜리 인쇄물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저자는 객관적인 만주 이미지를 묘사하기보다는, “일본인의 만주 이미지”를 검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만주국이 국가를 홍보하고 각종 행사를 선전함으로써 일본이 만들고자 했던 만주국의 이미지, 뒤집어 말하자면 일본이 받아들이고 있던 만주국의 이미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결국, 일본과 만주국 사이의 ‘일덕일심’을 둘러싼 지배 도식은 명확히 일본 정부 혹은 일본인에 중심을 두었고, 이상으로 내세운 ‘오족공화(五族共和)’와는 거리가 먼 것을 간파해 낸다. 전황이 긴박해지면서 만주국에서 현지주민은 피지배자로서만이 아니라, 때로는 통치의 대상이라는 위치에서도 떨어져 나가 버렸다. 당시 일본인이 사용했던 ‘만인(滿人)’이라 함은 어디까지나 일본인 이미지 속의 허상에 지나지 않았고 ‘만인’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고찰은 필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만든, 일본인들을 위한, 때로는 중국어로 쓰여있지조차 않았던 홍보물들은 결국 일본에게 있어 만주, 만주인의 위치가 무엇이었는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일본인 저자가 쓰고 한국어로 번역된 ‘만주’에 대한 이 책은, 만주국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지평을 넓힘은 물론, ‘내선일체’, ‘천황의 적자’라는 프로파간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이해 역시 재고하도록 한다.

한국어판 서문


프롤로그 만주국의 미디어 전략과 홍보

제1장 ‘오족협화’와 국가의 상징

제2장 ‘커다란 부의 원천’과 ‘관광 만주’의 틈새에서

제3장 ‘건국’과 ‘승인’을 둘러싼 미디어·이벤트

제4장 ‘건국 1주년’을 둘러싼 공방

제5장 제정 체제로의 전환과 일본과 만주국의 관계

제6장 중일전쟁과 홍보일원화

제7장 국방체제의 강화와 ‘건강 만주’

제8장 결전체제에서의 홍보독점주의

제9장 건국 10년의 ‘성과’와 ‘과제’

에필로그 사람들은 만주 미디어를 어떻게 보았는가


저자 후기

참고문헌

도표 일람

인명 찾아보기

역자 후기 

만주국은 민족, 신분에 따른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일본인이 가진 만주의 이미지는 극히 간단했다. 인구가 희박하고 황량한 대지, 마적, 붉은 석양, 아카시아 꽃, 수수밭, 아시아호, 야마토호텔 등으로 그려졌다. 이런 이미지가 만들어진 근저에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후의 ‘전승붐’, ‘대륙붐’이 있었다. 만주 자체의 정치적 위치는 1910년대 청조의 붕괴,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연이은 시베리아 출병, 20년대는 장쭤린張作霖 폭살사건, 30년대는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40년대는 태평양전쟁의 발발과 패전, 이런 끊임없는 전쟁과 동란 속에서 변화했지만, 일본인의 만주 이미지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만주국에서는 관, 민, 군 각각의 의도하에 대규모 도시계획에 따라 수도 신징新京을 건설하였고 도시 내의 교통통신망을 정비하였다. 또한 산업개발을 진행하고 대량의 미디어를 발행하였는데, 동시에 각종 통제와 검열을 진행하였다. 이리하여 만주국은 국가로서의 허구성을 가진 채 만들어져 갔고, 푸이 등 일부 만주 기인旗人, 한인(漢民族과 거의 동의어) 관료, 새로 도래한 일본인은 자신들을 만주국이라는 ‘극장’에 선 축제의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의도적 혹은 잠재적으로 자신을 모종의 메시아로서 묘사하였다. 키메라와 같은 만주(山室, 2004)를 다시금 해부하여 그 실상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정책론과 더불어 시대의 붐과 미디어, 이벤트에 눈을 돌려, 만주국이 홍보정책을 통해서 묘사해 온 만주 이미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편 현지 주민의 입장에서 볼 경우, 포스터의 감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러허성 정부 총무과 고시考試 쟝상원姜尙文(25세)은 안도安藤의 감상과 같이, “신징에서 시내를 둘러 보면 중국어로 번역된 듯한 선전물은 보입니다. 언뜻 본 바로는 다소 중국어로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라고 하고 “일본어 문장과 중국어 문장은 쓰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번역할 경우는 일본어의 고유명사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중국어 문장방식을 쓸 것” 등을 제안하였다. 아마 일본인의 중국어 번역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포스터 선전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것을, 정말 깊이 헤아려 지적하고 있다. 필자조차도 만주국의 전단을 조사했을 때 때로는 심한 일본어 투의 중국어 삐라를 마주하게 되어 쓴웃음을 지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은이

기시 도시히코(貴志俊彦, Kishi Toshihiko)

1959년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히로시마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동양사학전공 박사후기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교토대학 동남아시아지역연구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공․편저서로는 『戰爭․ラジオ․記憶』(勉誠出版, 2006), 『資料で讀む世界の8月15日』(山川出版社, 2008), 『模索する近代日中關係-對話と競存の時代』(東京大學出版社, 2009), 『文化冷戰の時代-アメリカとアジア』(國際書院, 2009), 『中國․朝鮮における租界の歷史と建築遺産』(御茶の水書房, 2010) 등이 있다.


옮긴이

전경선(全京先, Jeon Kyoungsun)

부산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신라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태평양전쟁기 만주국의 선전정책」(『中國史硏究』 82, 2013), 「전시체제하 만주국의 국병법 선전」(『만주연구』 23, 2017) 등 만주국 프로파간다 관련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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