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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외교관, 선교사
서구 한국학의 형성 주체와 문화적 토양
저자 홍옥숙,김낙현,이영미,이고은,이상현,홍미숙,김서연 역자/편자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편
발행일 2022.6.20
ISBN 9791159057069
쪽수 325
판형 152*223, 무선
가격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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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학계에 한국을 포함시킨 서양인들―탐험가, 외교관, 그리고 선교사

1787년 5월 브로튼(William R. Broughton, 1762~1821)의 팀을 위시한 여러 영국 탐험대가 한반도를 방문하였다. 이들은 모두 국가의 파견을 받은 해군 탐험대로, 국책에 따라 미지의 지역을 조사하여 세계 지도를 완성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통상을 개시하는 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기본적인 목표는 한반도와 인근 해안에 대한 지리적 탐사와 한국 및 한국인들에 대한 정보 습득이었다. 그들은 ‘지식의 추구’라는 차원에서 한국에 접근한 최초의 서양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1830년대부터 약 30년간 한반도에서는 소수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을 주제로 상당한 양의 기록을 생산하였다. 한국인들과 함께 길게는 10년 이상 한국에서 산 선교사들의 그것은 객관성과 정확성의 층위가 다양한 민족지학적 정보의 보고로, 한국을 깊이 알고자 하는 외부인들에게 오랫동안 필수적인 자료로 인정되었다. 그들이 탐험가들처럼 ‘지식의 추구’라는 차원에서 한국에 접근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한국에 대한 서구 세계의 지식과 정보가 그들에 의하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현저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조선 왕조가 일본 및 서양 국가들과 근대적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이후 한국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계승한 사람들은 외교관과 선교사였다. 특히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내내 한국 연구를 주도한 것은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인 교사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를 배우고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잡지에 발표하거나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성장하였으며, 나중에는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를 창립하여 연구발표회를 개최하고 학술지를 발행 및 보급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1930년 전후 독일과 미국에서 한국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 재직하면서 강의와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서구 제도권 한국학의 발판을 마련한 이 사람들은 거의 다 선교사 출신이었으며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


이 책은 18세기 말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집적하고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를 배우고 한국을 서구 학계의 연구 영역에 포함시킨 이 서양인들―탐험가, 외교관, 선교사―에 대한 연구 결과 7편을 모은 것이다.


서구 한국학의 과거와 현재를 잇다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소장 임학성)는 2019년 9월부터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2022년 8월 1단계 사업을 마치고 2단계 사업을 수주하여 2025년 8월까지 총 6년간 수행할 계획이다. 사업명은 ‘동아시아한국학의 심화와 확산을 위한 해외 한국학의 집단전기학’이다. <동아시아한국학 연구총서> 제32권으로서 발간된 이 책에는 18세기 말부터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집적하고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를 조사하고 나아가 한국을 서구 학계의 연구 영역에 포함시킨 서양인들이 소개되어 있다.


홍옥숙과 김낙현은 1797년 10월 부산 용당포에 정박한 영국 해군 브로튼(William R. Broughton, 1762-1821)의 탐사 항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한편, 1816년 한국의 서해안과 류큐 등을 돌아보고 간 홀(Bail Hall, 1788~1844), 1845년 제주도와 남해안을 탐사하고 간 벨처(Edward Belcher, 1799~1877) 등을 차례로 소개하였다. 이 글은 이 시기 한반도에 접근한 서양 선박들의 상당수가 탐사 항해를 통하여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려던 영국 군함이었음을 드러내고, 한국에 대한 탐험가들의 지식과 정보가 장기간에 걸쳐 축적 및 계승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라 페루즈(La Pérouse)’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프랑스 탐험대장 드 갈로(Jean-François de Galaup, 1741~1788)가 한반도에 상륙하지 못하고 바다만 돌다 간 것은 자신보다 130여 년 먼저 한국에 온 하멜(Hendrik Hamel, 1630~1692)의 기록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고은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가 내한 후 10여 년간 번역한 한문 기독교 문헌 15종의 종류와 성격, 번역 동기, 실제 번역 주체 등을 검토하였다. 그리하여 언더우드가 흥미로운 기독교 소설류 대신 실제 선교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논리정연한 교리서를 주로 번역한 것, 자신이 본격적인 번역자로 나서는 대신 감독만 하고 실제 번역 작업은 한국인들에게 맡겼던 것 등을 구명하였다. 이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언더우드는 한국어를 대단히 빨리 습득하고 일찍이 사전까지 편찬하였으나, 자신의 어학적 재능을 직접 선교에 필요한 만큼만 계발하였다.


이영미는 한국 연구에 푹 빠진 선교사 4명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존스(Heber G. Jones, 1867~1919), 게일(James S. Gale, 1863~1937), 랜디스(Eli B. Landis, 1865~1898)에 대한 집단전기학 연구를 수행하였다. 네 사람은 출신 국가, 성장 배경, 교육 수준, 소속 교단 등이 달랐으나 모두 평신도 선교사 또는 평신도(헐버트)로 출발하였다. 이들은 평신도로서 학교와 병원 등지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영미의 또 다른 글은 이 ‘선교사 겸 학자’들 중 3인이 주축이 되어 창립한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를 다루었다.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는 한국 연구를 전담하는 최초의 정식 학술 단체로서 지난 2020년에 창립 12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 단체는 창립 초반에는 연구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의 부족으로 고전하였으나, 1910년대 초 게일을 중심으로 활동을 재개하여 한국 안팎의 전문가들을 아우르는 어엿한 연구 공간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도 한국 연구에 가장 앞장선 것은 평신도 선교사들이었다.


외교관으로서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를 연구한 인물로는 ‘프랑스 한국학의 선구자’ 쿠랑(Maurice Courant, 1865~1935)이 가장 유명하다. 이상현은 20세기 전후 서양인들의 한국 관련 학술 활동을 쿠랑을 중심에 놓고 검토하였다. 쿠랑은 일찍이 한국을 연구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으나 중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13년 리옹대학 중국어과에 자리를 잡은 후에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재한서양인들에게 계승되었다. 이상현은 그들이 쿠랑과 개인적 친분이 없었지만 그의 연구를 읽고 번역하고 참고하여 각자의 연구를 계속하였음을 보여 주었다.


이 책에는 한국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고 학계에 정착하여 제도권 서구 한국학의 출발선을 그은 사람들도 다루어지고 있다. 홍미숙(전남대학교, 미술사)은 천주교 선교사 출신으로 독일 한국학의 첫 번째 주자가 된 에카르트(Andreas Eckardt, 1884~1974)에 주목하였다. 에카르트는 1909년부터 1928년까지 한국에서 상트오틸리엔연합회(일명 분도회) 선교사로 활동하였고, 한국의 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수십 년간 한국 연구 및 교육에 종사한 인물이다. 자타 공인 ‘에카르트 전문가’ 홍미숙은 에카르트의 한국 연구를 분야별로 상세하게 소개하였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관련 자료도 풍부하게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서연은 미국 한국학의 초창기 멤버인 맥큔(George M. McCune, 1908~1948)을 검토하였다. 맥큔은 북장로교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조선의 외교 관계를 연구하여 UC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옥시덴탈대학교를 거쳐 UC 버클리 사학과 교수가 된 사람이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두 번째 사람으로, 1948년에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미국 한국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가 대학원 재학 시절에 고안한 맥큔라이샤워표기법은 지금까지도 미군을 비롯한 미국의 여러 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다.

간행사  3

서문    6


홍옥숙ㆍ김낙현|유럽인들의 조선 탐사 항해와 항해기-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까지

1. 유럽인들의 조선 탐사 항해와 선행연구 17

2. 19세기를 전후한 유럽인 항해자들의 북태평양 진출 22

3. 19세기 후반의 유럽인 방문자들과 조선의 개항 57


이영미|한국을 연구한 초기 개신교 ‘선교사 겸 학자(missionary and scholar)’들

1. 개인에 대한 연구에서 집단에 대한 연구로 67

2. 19세기 말 내한 개신교 선교사들의 구성과 특징 71

3. ‘선교사 겸 학자’들의 등장과 『리포지터리』 76

4. ‘선교사 겸 학자’들의 생애와 연구 활동 83

5. ‘선교사 겸 학자’들과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93


이고은|번역과 선교-H. G. 언더우드의 중문 기독교문헌 번역(1886~1896)

1. 내한 선교사들의 중문 기독교 문헌 번역 97

2. H. G. 언더우드의 번역서 목록과 번역 동기 102

3. 언더우드의 중문 전도문서 입수 경위 110

4. 언더우드와 번역자들, 그리고 번역서의 독자들 113

5. 언더우드의 번역서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 120

6. 향후 과제 124


이상현|프랑스 외교관이 남긴 한국학의 흔적-『한국서지』(1894~1896, 1901)의 출간과 그 이후

1. 서울의 추억과 『한국서지』 127

2. 『한국서지』의 출간과 유럽 동양학자의 한국학 132

3. 『한국서지』 출간 이후 한국 개신교선교사의 한국학 154

4. 『한국서지』와 서양인 한국학의 현장 195


이영미|1900~1940년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와 서양인들의 한국연구

1.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의 탄생 203

2. ‘선교사 겸 학자’들과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206

3. 트롤로프와 영국국교회 선교사들의 참여 215

4. 전문 연구자로서의 선교사 2세들 223

5. 서구 한국학과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231


홍미숙|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한국학 연구와 성과

1. 시작하며-에카르트가 심취하였던 한국학 연구 235

2.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생애와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의 활동 238

3. 에카르트가 펼친 한국학 연구와 성과 247

4. 마치며-에카르트의 한국학 연구를 탐구해야 하는 이유 278


김서연|미국 ‘제1세대 한국학자’의 해방 전후 한국인식-조지 맥아피 맥큔의 Korea Today

1. 태평양전쟁 전후 미국 한국학의 흐름과 맥큔 289

2. 전후 시기 맥큔의 한국 관련 활동 292

3. Korea Today에 나타난 맥큔의 한국인식 300

4. 미국 학계에서 Korea Today의 의의 314

5. Korea Today-‘제1세대 한국학자’의 첫 한국사 개설서 317

부록|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맥큔 가족 319

이 문제는 1903년부터 악화되었다. 존스가 안식년을 얻어 귀국하고 헐버트와 게일이 6개월간 휴가를 다녀오는 등, 그나마 있던 연구자 3명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기 시작한 것이다. 존스는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상태로 귀국하였다가 3년 만에 복귀하였으며, 복귀한 후에는 북감리교 한국선교부의 고참으로서 신학교 설립과 신학 저술 활동에 힘쓰다 1909년 여름 영구 귀국하였다. 헐버트는 을사조약 체결 직전 고종의 밀사로 변신하였다. 그는 1905년 10월 고종의 지시로 미국에 갔다가 이듬해 5월 돌아왔으며, 1907년 5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헤이그로 떠날 때 모든 한국 생활을 정리하였다.

홍옥숙(洪玉淑, Hong Ok-sook)한국해양대학교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김낙현(金洛賢, Kim Nak-hyeon)한국해양대학교 세계해양발전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이영미(李映美, Lee Yeong-mi)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이고은(李高恩, Lee Go-eun)한국학중앙연구원

이상현(李祥賢, Lee Sang-hyun)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부교수

홍미숙(洪美淑, Hong misuk)전남대학교 강사

김서연(金瑞淵, Kim Seo-yeon)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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